수출 실적, 반도체 앞질렀다
  • 장영희전문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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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휴대전화, 성공 질주…세계 시장 석권하기까지는 ‘산 넘어 산’
휴대전화가 한국 수출에서 왕좌를 차지했다. 지난 11월 한달간 휴대전화 단말기(부분품 포함) 수출 실적(24억5천만달러)이 반도체(24억2천만달러)보다 많아 사상 최초로 반도체를 앞지른 것이다. 휴대전화가 반도체, 특히 D램 반도체를 대체할 만한 차세대 주력 품목이 되리라는 2002년 예측이 적중한 셈이다. 이미 휴대전화는 올 들어 11월까지 수출 실적이 2백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1997년 9억 달러였던 것과 견주면 상전벽해라 할 만한 변화다.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팔린 휴대전화의 25%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 계열(주식회사 팬택과 팬택앤큐리텔) 등 한국기업 삼총사가 만든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애니콜 브랜드는 중국인에게는 ‘부의 상징’으로, 미국인에게는 ‘가장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식될 만큼 호평을 받고 있다.

물론 한국 휴대전화가 아직 세계를 제패한 것은 아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 강자 지위는 핀란드의 노키아가 움겨쥐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30%가 넘는다. 비록 한국 시장에서는 몰락이라고 할 만큼 약해졌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미국 모토로라도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독일 지멘스와 일본·스웨덴 합작 기업인 소니에릭슨도 절대 얕볼 수 없는 경쟁자다. 하지만 한국 휴대전화 회사들이 이들을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IT 제품 조사 기관인 데이터 퀘스트에 따르면, 판매 기준으로 지난 3/4분기 삼성전자가 한번도 2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던 모토로라를 처음으로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CDMA 상용화 성공이 급성장 계기

이처럼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 휴대전화 단말기의 약진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모토로라와 노키아가 만든 단말기와 이동통신 시스템이 국내 시장을 휩쓸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한국 휴대전화는 어떻게 국내 시장에서 외국산을 완전히 몰아냈을 뿐더러 세계 강자들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발돋움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휴대전화 산업이 드라마틱하게 발전한 가장 큰 원천을 1996년 세계 최초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성공에서 찾는다. 부호분할다중접속 통신 방식 원천 기술은 미국 퀄컴 사가 갖고 있지만, 이를 상용화해 성공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다. 세계 최초의 부호분할다중접속 상용화 과제는 정부와 민간 기업이 함께 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가 프로젝트였다.

여기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세 신규 사업자를 허가한 휴대전화 경쟁 정책이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가입자 증가를 가져왔고, 이것이 짧은 기간에 한국을 휴대전화 수출국으로 만든 동력이 되었다. 1984년 ‘카폰’으로 시작한 한국의 휴대전화 서비스는 가입자가 2천명 수준에서 20년이 흐른 지금 3천만명을 훨씬 넘어섰다. 올 11월말 현재 가입자 수는 3천6백44만명으로 보급률이 75%나 된다. 사실상 전국민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한 계획적인 통신 인프라 구축과 부호분할다중접속 상용화 성공, 통신 경쟁 정책이 한국에서 이동통신이 발흥할 토대가 되었지만, 정작 이것을 꽃피우게 한 주체는 이동통신 소비자였다. 남보다 다른 것,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열정적인 소비자들이 이동통신 회사로 하여금 경쟁적으로 서비스와 기기를 개발할 토양을 제공했던 것이다.

통화 음질은 기본이고, 더 빠르고 기능이 다양한 단말기를 원하는 소비자의 존재는 단말기뿐만 아니라 콘텐츠 등 관련 산업의 기술 진화를 앞당기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었다. 1984년 1세대 아날로그 통신 서비스를 시작으로 12년 후인 1996년 2세대인 디지털 이동전화가 선보인 후 이 분야의 기술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 2000년 2.5세 격인 CDMA 2000 1x가 서비스되면서 데이터 수신 및 멀티 미디어 구현이 가능해졌다. 그로부터 불과 2년 뒤인 2002년 3세대 기술인 IMT2000이 서비스되었다.

한국산 이동전화 단말기가 제품 개발력과 생산 기술 측면에서 상당한 역량을 축적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세계를 제패할 길은 아직 험난해 보인다. 좋은 예가, 한국 기업에는 왜 모토로라의 스타텍이나 노키아의 시리즈물 같은 스테디 셀러가 없느냐는 의문이다.

요금 체계 등 개선해야 지속 성장 가능

LG경제연구원 조준일 연구위원은 노키아의 예를 들며 디자인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키아의 경우 엔지니어와 그래픽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심지어 영화 감독까지 연구팀에 참여시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단말기를 원하는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의 시험대인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도 위기 요인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수요가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 이동통신 관련 회사들로서는 최대 위협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카메라폰·모바일 뱅킹폰·PDA폰·MP3폰·DMB폰 같은 복합·융합화한 기기를 내놓으면서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있지만, 시장은 포화 상태다. 결국 가입자 확대가 아니라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을 늘리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휴대전화 서비스 회사들이 목을 매고 있는 데이터와 멀티 미디어 서비스 매출 증가는 더디기만 하다. 이용 요금이 비싸고 전문가들도 해독이 어려울 만큼 요금 체계가 복잡한 것이 최대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펴낸 <뉴미디어 기술 발전과 수용 행태 변화에 관한 연구>는 요금 관련 문제가 개선된다면 데이터 이용률이 크게 높아지리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속도’라는 위협 요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한국 이동통신 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까지의 약진이 국내외에서 격화하고 있는 속도 경쟁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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