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정책 받쳐 줄 단기 전술 필요하다
  • 권오흥 (장한신식 대표·북한 문제 전문가) ()
  • 승인 1999.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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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처럼 북한정책조정관 임명 바람직… 남북 경협, 차원 높여 지속해야
99년에도 ‘밀월(蜜月)’은 계속될 것인가. 햇볕론이 햇볕 정책으로 힘을 얻은 지 1년이 채 못된다. 그러므로 아직 그 공과를 단정적으로 말할 때는 아니다. 온고지신으로 지금까지의 오류들을 밝히고, 이를 수정하면서 당면한 상황들에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전략적 목표에만 치중해 진술적 대응, 즉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을 보자. 아무리 명분으로 포장한다 해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한·미 쌍방이 전향적으로 움직이는 데 가장 큰 변수이다. 98년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북한 정책 조정관’이라는 묘한 설관(設官)에서 찾아야 한다. 이 직책을 맡은 윌리엄 페리는 94년 미국 국방장관으로 있으면서 북폭(北爆)을 기획했던 사람이다. 미국이 북한 정책 조정관으로 그를 임명한 후 ‘왜 페리인지 생각해 보라’며 북한에 으름장을 놓았다는 후문도 들린다. 즉 미국이 북한 문제에 국무부라는 차원 외에 다중적 방식의 접근을 공식화했다는 것이 초점이다.

한국 정부도 좀더 포괄적으로 대북 정책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즉 각계의 의견과 각국의 입장을 청취한 뒤 이를 우리의 정책과 우방 및 관련 국가들과 조정하는 작업이 긴요하다. 북한문제조정관·특별대사 등 명칭이야 어떻든 한국도 ‘듣는 귀’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의는 이런 배경을 가진다.

한국의 가칭 ‘조정관’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선 미국을 포함한 우방이 앞으로 북한 정책을 어떻게 펴갈 것인지를 ‘듣고’ 우리가 설정한 ‘원칙’을 그들 정책 속에 용해시키는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다.

농업 협력·유휴 설비 이전도 추진하자

국내에서는 화해를 위해 ‘금강산을 넘어서’라는 정도의 구호를 내거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비록 북한이 남북한 관계를 ‘적당한 교류와 평화 체제 유지’라는 제한된 범위에서 보고 있지만, 그들이 설정한 부분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햇볕 정책이 단기 목표가 아니라는 현정부의 입장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제재보다 협력이 더 어렵다는 측면에서 보면 햇볕 정책은 분명 장기 전략이다.

금강산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경협이라는 남북 교류가 진행하기에 따라 지금보다 훨씬 잘 구현될 수 있다는 자신감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에 요구되는 것은 한 단계 더 승화한 남북 경협이다. 금강산 관광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오히려 중소 규모의 대북 경협을 어렵게 한다는 소리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차분하고 지속성 있는 일정 규모의 프로젝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대북 경협 중 단기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분야를 취합해야 한다.

농업 협력도 그 중 하나다. 농업은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 문제와 직결된다. 농업은 아무런 조건 없이 북한과 폭넓게 협력할 수 있는 분야로 보인다. 농업대표단 파견, 농기구 지원, 종자 개량 공동 작업, 구황작물 종자 보급, 한약재 등 고부가가치 농작물 계약 재배 등이 이에 속한다. 이는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두고 벌어지는 찬반 양론을 상당 부분 희석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유휴 설비의 대북 이전을 통한 경협 확대는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 체제 이후 계속 거론되었다. 그러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산발적인 접촉보다는 종합 시스템을 갖추고 진행해야 한다. 부득이 정부가 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지만 이미 추진된 계획, 예컨대 토지개발공사의 나진·선봉 공단 개발이나 상당 수준의 협의가 이루어진 남포 공단을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러한 대책들은 정책 입안자들이 면밀히 검토할 것이므로 구체적인 언급을 생략하겠지만, 한가지 반드시 유의할 점은, 과거 정부에서 흔히 나타났던 정책 집행의 ‘유야무야’ 국면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난 1년간 성취한 것과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한 자성이 요구된다.

햇볕이 구름에 약간 가려도 그 빛을 잃지 않게 할 방법을 과감하게 구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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