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씻고 또 씻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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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형수의 구치소 생활 밀착 취재
지난 10월19일 대법원은 영웅파 두목 이순철 피고인(33)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형제도가 위헌이라는 이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 판결은 사형제도 존폐 논란을 가속시켰다. 이런 가운데 <시사저널>은 사형 제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실제 사형수가 구치소 내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를 알아보았다.

10년 넘게 사형수를 교화하고 있는 조성애 수녀(70·살트르 살바도르 수녀원)는 자주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교화를 맡았던 사형수들은 새로운 사람이 되었지만,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1997년 12월30일에는 그녀가 상담을 맡았던 사형수 6명에게 동시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상실감에 그녀는 그들과 주고받은 편지 2천 통을 모두 불태웠다. 그녀는 ‘내 역할이 단지 그들을 얌전히 죽게 만드는 것이었나’ 하고 깊은 회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조수녀는 사형수 상담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녀를 기다리는 사형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그녀는 경기도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를 찾았다(조수녀와 구치소의 양해를 얻어 그녀가 사형수와 상담하는 것을 참관했다. 이 자리에는 사형수 출신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던 양동화씨도 함께 참석했다).
서울구치소는 우리나라에서 사형수가 가장 많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형수가 40여명 있는데, 그 중 절반 정도가 서울구치소에 있다. 구치소 정문을 통과하고 문을 10여 개 더 지나면 사형수와 종교위원이 만나는 상담실에 갈 수 있다. 상담실은 일반 면회실과 달리 가운데에 유리벽이나 창살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조그만 휴게실처럼 소파와 탁자가 놓여 있다. 잠시 후 구치소 교무담당 직원이 한 사형수를 ‘연출해 왔다’(감방에서 데려왔다).

세례명이 라파엘인 그는 1996년 동두천시에서 있었던 공기총 강도 사건의 범인 김 아무개씨(37)였다. 손에 성경과 찬송가 한 권을 들고 들어온 그는 조수녀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환한 얼굴에 맑은 눈빛을 한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얼굴만 본다면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라기보다는 출소를 목전에 둔 만기수로 착각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라파엘의 죄수복에는 십자가와 다윗의 별이 곳곳에 수놓아져 있었다. 그가 직접 수놓은 것이었다. 그의 죄수복은 다른 재소자의 것에 비해 눈에 띄게 깔끔했다. 때가 잘 끼는 목 칼라에는 흰 천을 덧대어, 더러워지면 그 천만 떼어내 빨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도 깨끗이 면도되어 있었다.
사형수들이 유난히 깔끔한 까닭

그가 깔끔한 이유는 단지 오늘 조수녀와 상담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매일 죽음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늘 단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수에게 집행 날짜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사형수는 집행 당일 자신을 불러낼 때야 비로소 그 날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면회라고 해서 따라 나섰다가 바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수들은 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 다른 사람에게 단정한 모습을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어서 사형수들은 모두 몸을 깨끗이 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요즘처럼 낙엽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 때면 사형수들은 더욱 긴장한다. 왜냐하면 1990년대 사형 집행은 모두 10월, 11월, 12월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1991년 12월18일, 1992년 12월29일, 1994년 10월6일, 1995년 11월2일, 1997년 12월30일). 사형수가 편안히 눈을 뜰 수 있는 날은 일요일과 공휴일뿐이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사형 집행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형 며칠 전에 본인에게 알려서 자신의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주고 가족에게도 알려서 마지막 만남의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사형수는 보통 다른 재소자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잔다. 매일매일이 마지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재소자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밤 8시에 자는 것에 비해 사형수는 이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4시간 정도 늦게 잠든다. 사형수는 이 시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조수녀가 라파엘에게 근황을 묻자, 그는 새로 옮긴 방의 재소자들과 어떻게 친해지고 있는지 얘기했다. 대부분 구치소에 이제 막 들어온 미결수인 그들은 사형수를 처음 보았을 때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사형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3개월에 한 번씩 방을 옮기기 때문에 그런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아내는 일에 이미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일반 재소자들이 사형수에게 거부감을 갖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형수의 가슴에 빨간색 번호표가 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 재소자와 달리 빨간색 번호표를 달고 있는 사형수는 멀리서도 쉽게 구분된다. 몇 년 전까지 사형수는 항상 수갑을 차고 있었다(요즘은 확정 선고 후 1년 정도까지만 수갑을 차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수갑뿐만 아니라 혁수정(손을 허리에 고정시키는 기구)까지 차고 있어서 개처럼 엎드려서 밥을 먹어야 했다.

초기에는 다른 재소자들이 사형수에게 거부감을 느끼지만 금세 친해지게 되는 것은, 구치소 토박이인 사형수가 여러 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형수는 구치소 사정에 밝고 교도관들과도 잘 알고 지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여러 재판의 진행 과정을 보아왔기 때문에 재소자들에게 조언해 줄 수 있고, 호소력 있는 탄원서를 작성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몇 년씩 수감 생활을 한 사형수는 구치소 생활에 노하우를 많이 가지고 있다. 구치소 안에 구전되는 비법을 익혀 그들은 몇 가지 안 되는 보급품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마치 요술쟁이처럼 사탕·땅콩·식빵으로 생크림 케익을, 마른 오징어·사과즙·고추장으로 오징어 회를, 달걀과 라면 봉지로 계란찜을 만들어 낸다. 심지어 식빵 가루와 요구르트를 가지고 술을 만들기도 한다.
다른 재소자에게 힘이 되어 주는 최고수

가끔은 사형수라는 존재 자체가 때로는 재소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보통 초범인 재소자의 경우 자신이 전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사형수를 보고서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죽음 앞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형수를 보면서 뭔가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난 8월10일 재소자를 대상으로 치러진 영어능력평가시험(TEPS)에서 881점(990점 만점)을 받은 황용필씨(29)가 그런 경우이다. 강도짓을 하다 잡혀 구치소에서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던 그는 매일 성경을 읽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한 사형수를 보고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영어 공부를 해서 고득점을 올렸다.

사형수는 구치소에서 최고수라고 불린다. 형량이 최고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재소자가 사형수를 최고로 치기 때문에도 사용된다. 교도관들은 구치소 내에서 일반 미결수가 부모나 종교위원보다 더 따르는 사람이 바로 사형수라고 말한다. 얼마 전 대전교도소에서 윤 아무개씨(33)가 탈옥하자 경찰은 한 사형수 출신 출소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윤씨가 남긴 일기에서 자신에게 사랑을 준 유일한 사람으로 그 출소자를 꼽았기 때문이다.

사형수가 이처럼 다른 재소자로부터 깊은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종교 생활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었기 때문이다. 사형수는 대부분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구치소의 경우 사형수 20여명 중 종교를 갖지 않은 사형수는 한 사람도 없다. 라파엘 다음에 상담실에 온 프란치스꼬(폭력 조직에 속해 있었던 그는 1995년 자신이 저지른 청부 폭력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고 협박한 조직원과 그의 애인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의 손에도 성경과 찬송가가 들려 있었다.

사형수에게 종교의 힘은 절대적이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그래서 끝없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사형수에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해주는 종교는 큰 도움이 된다.

사형수가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대체로 형 확정 후 6개월 정도가 지나서이다. 그전까지는 계속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사회와 가정의 탓으로 돌리려 하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러나 6개월 정도 지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되면 종교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장 선하게 되었을 때 사형당해

종교 생활을 통해서 사형수는 급격히 변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끝까지 반성하기를 거부하고 ‘나는 죄가 없다’고 버텼던 지존파 두목 김기환도 결국 신자가 되어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 형 집행 날 유언으로 “동생들을 용서해 달라. 그들은 잘못이 없다”라고 선처를 부탁했던 그는 자신의 시신도 기증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확실한 종교적 신념을 얻게 되면 사형수의 생활은 수도자적인 면모를 띠게 된다. 집착을 버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형수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밝아진다. 기자가 만난 라파엘과 프란치스꼬도 이런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사형수로 이미 4∼5년을 보냈다.

종교 생활을 통해 사형수는 새로운 인간 관계도 맺게 된다. 보통 각 종교마다 담당 목사·신부·주지 외에 알음알음으로 일반 신도들도 사형수와 연결이 된다. 사형수는 이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교류하게 된다. 이때쯤 되면 사형수는 자신이 더 이상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많은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만족하게 된다. 지금의 생활에 대해 라파엘과 프란치스꼬는 “교도소에 와서야 비로소 인간 대접을 받았다” “삶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사형수가 새로운 세상에 눈 뜨고 기쁨으로 충만해질 때가 되면 드디어 형이 집행된다. 가장 악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가장 선한 상태에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형수가 정말 변했을 때, 가장 아름다워졌을 때, 흉악범 정 아무개·김 아무개가 독실한 신자 프란치스꼬·라파엘이 되었을 때 죽게 되는 것이다.

사형수를 접하는 종교인들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 덤덤하게 사형대에 올라서는 사형수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사형폐지론자가 된다. 사형수들이 자라온 불우한 환경과 재판에서 제대로 변론조차 받지 못해 사형에 처해진 사정, 그리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지만 허망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본 이들은 사형 제도가 유지되어야 할 어떠한 이유도 발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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