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코리아' 일등공신 삼성영상사업단 인맥
  • 소종섭·고재열·이문환·신호철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11.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계 누비는 삼성영상사업단 인맥
삼성영상사업단(사업단)은 죽지 않았다. 사라졌을 뿐이다. 1996년 삼성그룹이 계열사들의 영화·애니메이션·음반·게임 사업 등을 통합했다가 고작 3년 뒤인 1999년 구조 조정 명목으로 해체한 사업단.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사업단 출신들은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할 대상이다.




최근 이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이는 IM픽쳐스의 최 완 대표·김윤수 상무·김만기 이사다. 전국에 '엽기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5백만 관객을 동원한 〈엽기적인 그녀〉가 그들의 작품이다. 1년에 한국 영화 10∼15편에 투자하는 '큰손'인 KTB네트워크 엔터테인먼트팀에는 하성근 팀장을 비롯해 사업단 출신이 3명이나 있다. 그밖에 강제규 필름 최진화 대표·싸이더스 노종윤 기획이사·시네마서비스 권병균·정명수 실장 등 제작·기획·배급·투자 분야의 대표 격인 업체에 사업단 출신 20여 명이 포진해 있다.


정예 요원 키워내는 '영화사관학교'


삼성이라는 막강한 울타리가 사라졌는데도 사업단 출신들이 맹활약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영화 사업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철저하게 훈련받은 정예 요원들이다. 충무로에서는 이미 사라진 이 사업단을 '영화사관학교'라고 부른다.


삼성은 한국 영화계에서 투자와 제작이 분리되는 현대적인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마케팅·배급·회계를 체계화하는 데 기여한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삼성이 벤치마킹한 것이 할리우드 시스템인 만큼 사업단 출신들은 '본고장'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할리우드 제작사인 뉴 리전시에서 제작을 배우고 워너브러더스·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에서는 영화 배급과 회계를 배웠다. 게다가 사업단의 인력 운용 방식은 한 부서에서 인력 부족을 호소하면 다른 부서에서 인원을 차출해 충원하는 식이어서, 사업단에서 일하다 보면 제작에서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부서의 일을 두루 배우게 되었다. 사업단을 가리켜 '피도 눈물도 없다' '돈만 안다' 등 온갖 비난을 퍼부었던 충무로 영화사들은 정작 사업단 직원들이 실업자가 되자 스카우트에 열을 올렸다.


사업단 출신들은 보수적인 삼성 문화에서 자율성과 개성을 추구했던 독특한 부류의 조직원들이었다. 당시 사업단 문화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캐주얼 복장을 하며, 직급에 관계없이 형·동생처럼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삼성그룹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7/4제(아침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도 그리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철저한 자료 수집과 보고 체계는 삼성 문화의 전형이었다.


사업단 출신들은 지금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단에서 영상사업을 총괄하는 이사였던 IM픽쳐스 최 완 대표는 지금도 '큰형님'이다. 사업단 출신들은 업무로 마주치는 일도 잦고, 지나가는 길에 사무실에 들러 환담을 나누거나 때때로 안부 전화를 걸기 때문에 1주일에 1∼2회 정도는 직·간접으로 소식을 전하게 된다. 연말에는 망년회도 함께 연다.


이처럼 인연을 계속 유지하면서 사업단 출신들 간에는 정보 교환도 이루어진다. 같은 식구들끼리는 경쟁 업체에서 일하더라도 '맞대결'을 되도록 피하는 편이어서 영화 개봉 일정을 조정하는 일도 종종 있다.


〈쉬리〉가 대성공한 이후 급성장하려는 순간 회사가 해체되었기 때문에 사업단 출신들은 아쉬움이 많다. 개중에는 술자리에서 사업단을 재건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도 있다. 현재 영화계에서 일하는 20여 명을 모으면 대형 영화사 하나는 충분히 차릴 수 있다. 과연 사업단 재건의 꿈은 몽상일까, 아니면 곧 실현될 미래의 일일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