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무한 상술’ ‘마술 경지’에 오르다
  • 안은주 기자 (asisapress.comco.kr)
  • 승인 2004.12.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악의 불황에도 편의점은 하루 평균 3개씩 늘어나고 있다. 매출도 크게 줄지 않았다. 최근에는 독자 브랜드를 개발해 고객을 끌어들이고 유행도 창조한다. 소비자를 24시간 유혹하는 편의점의 마케팅 비법은 무엇일
24시간, 1년 365일 늘 열려 있는 이곳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이곳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부터 할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면봉까지 일상 용품을 거의 다 갖춘 ‘작은 백화점’이다. 게다가 푸드코트처럼 삼각김밥·샌드위치·어묵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패스트푸드는 또 얼마나 많은가. 25평 공간에 3천여 가지 상품을 들여놓고도 비좁거나 복잡하지 않다. 소비자들을 쉼없이 끌어들이고, 일단 안에 들어서면 세련된 상품 진열에 혹해서 뭐라도 하나 사게끔 만드는 이곳은 바로 24시간 편의점이다. 편의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25평에 숨은 수천 가지 마케팅 노하우

25평의 이 작은 공간에는 수백, 수천 가지 마케팅 노하우가 집약되어 있다. 업계에서는 편의점을 ‘1mm의 비즈니스’라고 부른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 효과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1주일 동안 서른 가지가 넘는 신제품이 편의점에 새로 진열된다. 반대로 성적이 시원치 않은 제품 서른 가지는 1주일 단위로 편의점 매대에서 쫓겨난다.

신제품과 퇴출 제품의 희비가 엇갈리는 편의점, 그곳에 담긴 디스플레이 상술은 과학이자 마술이다. LG유통 편의점사업부 정찬간 과장은 “고객의 눈에는 똑같은 제품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편의점의 디스플레이는 계절마다 날씨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라고 설명했다. 여름에는 탄산 음료나 이온 음료가 냉장고 진열대 맨 앞으로 전진 배치된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숙취 해소 음료나 주스 같은 건강 음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겨울에는 탄산 음료 매출이 뚝 떨어지는 대신 건강 음료 매출이 상승한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는 콘류가 왕좌를 차지하고, 여름철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빙과류는 찬밥 신세가 된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찬 음료들은 뒤로 밀리고, 커피와 차 같은 따뜻한 음료와 국물이 있는 어묵이 ‘로열석’에 배치된다.

물론 계절이나 기온과 상관없는 디스플레이 원칙도 있다. 음료와 같은 목적 구매 상품은 가급적 출입구에서 먼 곳에 배치한다. 고객이 그 제품을 가지러 가는 동안 많은 상품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음료수 냉장고 안에서도 자리다툼은 치열하다. 고객의 눈이 가장 먼저 가닿는 손잡이 근처 공간이 일등석이다. 이 자리는 그 시기 최고 히트 상품들의 몫이다. 요즘 맥주 냉장고 손잡이 근처에는 하이트가, 음료 냉장고 로열석에는 비타500과 같은 건강 음료들이 버티고 있다.

밀가루와 설탕 같은 제품들은 가급적 구석에 진열한다. 그런 제품은 아무리 ‘처박혀 있어도’ 고객이 반드시 찾아내는 목적 구매 상품이다. 그러나 과자나 초콜릿처럼 눈에 띌 때 팔리는 ‘충동 구매 상품’은 판매대 근처에 배치한다. 고객이 다른 상품을 찾거나 계산대에서 기다리는 동안 눈에 들어가 ‘자석처럼 끌려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과 바늘처럼 따라 다니게 만드는 연계 상품 진열도 편의점 디스플레이의 기본 원칙이다. 예컨대 시식대 뒤에는 반드시 컵라면을 놓는다거나, 주류 코너 옆에 안주류,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 옆에 우유를 배치하는 식이다. 김밥만 사러 왔다가도 우유를 보는 순간 함께 집어들게 만드는 것이다.

같은 제품을 몇 개 배열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기도 한다. 같은 제품의 진열 폭이 넓을수록 매출은 올라간다. 보통 똑같은 제품이 가로로 나란히 세 줄 이상 진열되었다면 그 제품은 점주로부터 ‘칙사 대접’을 받는 효자 상품이다.

편의점이 고객을 유인하는 또 다른 마술은 ‘미끼 상품’에 숨어 있다. 구멍가게나 할인점에는 없는 편의점만의 미끼 상품, 그것은 삼각김밥이나 어묵과 같은 패스트푸드이다. 편의점 매출의 10분의 1은 삼각김밥이나 어묵과 같은 패스트푸드가 차지한다. 편의점 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경우, 패스트푸드가 점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다.

그래서 국내 편의점 업체들도 패스트푸드를 강화하는 데 적극적이다. 요즘 편의점 패스트푸드 코너는 산해진미로 가득한 잔칫상과 다름없다.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 종류만 해도 열 가지 이상이고, 케이크·떡·제육볶음과 같은 일품 요리까지 다양한 메뉴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에는 유기농 쌀을 이용한 삼각김밥까지 나올 만큼 품질도 높아졌다.
NPB 상품 개발해 가격 경쟁력 크게 높여

고객을 유인하는 편의점의 마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편의점 업체들은 이제 편의점에서만 살 수 있는 독자 브랜드를 개발해, 소비자로 하여금 편의점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려 하고 있다. LG25 홍보팀 김일진 대리는 “어느 편의점을 가나 특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편의점은 경쟁사가 벤치마킹하기 쉽다. 그래서 요즘 편의점 업계에서는 자기 점포에만 있는 고유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편의점 업체가 제조사와 공동 기획하고 개발해서 자사 점포에만 출시하는 상품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품을 ‘NPB(National Private Brand)’라고 부른다. 예컨대, 훼미리마트에 가면 ‘포너스’라는 색다른 브랜드의 제품들이 코너 별로 눈에 띈다. 포너스라는 이름을 붙인 아이스크림·빵·김치·휴지·칫솔 등 수십 가지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 LG25에서는 ‘함박웃음’이라는 이름으로 종이컵·휴지·우유·요구르트·맛살 같은 제품과 ‘Have a nice day’라는 이름으로 묶인 생활용품류, ‘징검다리’라는 쌀과자류를 판매한다.

NPB를 만들 때 한 제조업체와만 손잡는 것이 아니라 팀머천다이징 형태도 시도된다. (주)코리아세븐 기획팀 홍 준 매니저는 “브랜드 파워가 약한 제품의 경우, 비슷한 제품을 내는 여러 중소기업을 모아 하나의 브랜드로 통일한다”라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안주류. 정화식품·한양식품 등 안주류를 제조해 판매하는 중소기업들은 훼미리마트·LG25·세븐일레븐 등 대부분의 편의점에 제품을 따로따로 납품해 왔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다 보니 브랜드나 디자인 개발 여력이 부족해 경쟁력이 떨어졌다. 편의점 업체들은 이들 회사를 하나로 모아 단일 브랜드를 만들고 포장지를 통일했다. 한양식품이나 정화식품이나 어느 기업에서 납품하는 안주든지 일단 편의점에서는 같은 이름표를 달게 한 것이다. 훼미리마트에서는 ‘포너스’라는 이름으로, LG25에서는 ‘참 맛나는 세상’, 세븐일레븐에서는 ‘자연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포장지와 브랜드를 통일한 뒤 이 제품들은 이름 없는 중소기업 제품에서 유통업체가 보증하는 고급 제품으로 거듭났고,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런 NPB 상품 가운데는 비싼 프리미엄급 제품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통 마진이나 광고비 등을 대폭 줄여 오히려 할인점이나 구멍가게에서 팔리는 경쟁 제품보다 훨씬 싼 것들도 있다(위 상자 기사 참조).

점포당 하루 평균 매출액 1백60만원

편의점이 제공하는 각종 생활 편의 서비스 역시 고객을 끌어들이는 주요 무기 가운데 하나이다. 택배 서비스, 소포나 세탁물 등을 무인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라커 대여 서비스, 무선 인터넷 서비스, 공과금 수납 대행 서비스, 디지털 사진 인화 서비스 등 편의점들이 제공하는 편의 서비스는 수없이 많다. 훼미리마트 기획실 이건준 실장은 “생활 편의 서비스는 편의점이 물건을 파는 가게만이 아니라 친구처럼 고객을 돕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줌과 동시에 사람들을 편의점 안으로 끌어모으는 효과를 발휘한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마술의 힘을 빌려 편의점 업계는 꾸준하게 성장해, 현재 점포 수가 8천개를 넘어섰다. 1989년 서울 잠실에 세븐일레븐 1호점이 문을 연 이래 15년 만의 일이다. 점포 수로 치면 훼미리마트가 선두로 2천8백여 개, LG25 1천8백여 개, 세븐일레븐 1천1백81개 등이다. 올 한 해만 보더라도 10월까지 9백26개가 새로 문을 열어, 하루 3개꼴로 늘어났다. 점포 수 10만 개를 자랑하는 구멍가게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적지만 편의점이 유통 시장에서 미치는 힘은 구멍가게를 능가한다.

편의점당 매출액이 구멍가게의 그것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누구나 장사 안 된다고 아우성치는 요즘에도 편의점 매출만큼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어느 점포라고 할 것 없이 모든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인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각 편의점에서 매일 14개 이상씩 팔린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점포당 하루 매출액 평균이 1백60만원, 훼미리마트·LG25 등 주요 편의점 업체는 연 매출액이 1조원대를 넘어섰다. 점포당 객단가(고객 한 사람의 평균 구매 금액)가 3천원이 채 안된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하루 평균 5백30명이 한 편의점에 드나드는 셈이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 보니 편의점은 새로운 제품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험대이자 유행을 창조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기업들은 신제품을 내면 편의점을 통해 소비자의 반응을 테스트하고, 여기서 통과된 제품을 다른 유통 채널로 확산한다. 빙그레는 편의점 고객을 겨냥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인 ‘요맘때’를 지난 여름 출시했는데, 대박이 났다. 빙그레 이성현 홍보팀장은 “편의점 고객으로부터 호응이 높아 다른 유통 채널로도 확산했는데, 여름에 3백억원어치나 팔았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제조업체들이 직접 나서서 아예 편의점 전용 브랜드 제품까지 내놓고 있다. 태평양은 ‘미래파 액티오’를 편의점 전용 브랜드로 최근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은 편이다. 태평양 관계자는 “스킨과 로션의 기능을 하나로 합하고, 용기를 줄여 간편성을 높인 이 제품은 편의점 주고객층인 젊은 남성들에게 딱 맞춘 화장품이다”라고 설명했다.

테스트 마켓이자 광고 매체 노릇

편의점은 테스트 마켓이자 광고 매체 역할도 한다. 제조업체들은 출입구 또는 벽면에 포스터나 POP를 걸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편의점에 포스터 한 장을 1주일 동안 붙이는 데 적어도 5천~만 원꼴이다. 체인점 천 개를 가진 편의점에 포스터를 붙인다면 광고비가 적어도 5백만원 이상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제품 진열대나 천장에 붙이는 스티커나 각종 POP도 다 돈이다. 신제품을 출시한 제조업체는 자사 제품이 고객 눈에 더 잘 띄게 하기 위해서 이런 광고 수단들을 이용하는데, 여기에 수천만원 이상을 투자한다. 기업들은 이미 편의점을 주요 유통 채널이자 테스트 마켓으로 여기는 것이다. 중소기업 가운데는 판매처를 찾지 못해 경영난을 겪다가 편의점 마케팅을 발판 삼아 성공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문화 비평가 황동일씨는 ‘24시간 영업은 ‘따스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가 베푸는 미덕이 아니다. 단지 무제한의 이윤을 확보하려는 독점 자본의 욕망을 은폐하기 위한 세련된 화장술에 불과하다’(논문 <24시간 편의점, 25시의 지배전술>)라고 편의점을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편의점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마술가루’를 뿌리며 우리들의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