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버티니 세계식량계획 사무국장 인터뷰
  • 金鎭華 편집위원 ()
  • 승인 1999.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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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북한이 심각한 식량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비료 생산 증가, 농업 기계화 등을 역설한다. 그러나 북한이 식량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외국과의 교역량을 늘리고,무역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인구 7명 중 1명꼴로 굶주리는 지구촌 곳곳을 찾아다니며 구호 식량을 전달하는 유엔 기구이다.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은 당연히 세계식량계획의 중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국제 기구로는 유일하게 북한에 상주 사무소를 개설한 세계식량계획의 총책임자 캐서린 버티니 국장은 97년부터 매년 북한을 방문해 왔다. 미국인으로는 자그마한 체구인 버티니 국장은 올해도 8월5∼10일에 평양과 평안북도·함경북도의 7개 군(郡)을 자동차와 경비행기 편으로 구호 실태를 점검한 뒤, 베이징과 도쿄를 거쳐 광복절 전날 밤 서울에 도착했다. 세계식량계획 사상 첫 여성 사무국장으로 5천여 직원을 지휘하는 그는, 94년 <런던 타임스>가 발행하는 <타임스 매거진>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중의 1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고된 북한 방문 일정의 여독 때문인지 광복절 오후 신라호텔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편집자>

북한의 어느 곳을 둘러보았는가?

신의주와 인근 농장을 방문한 뒤 열차편으로 평양으로 가는 도중에 홍수 피해 지역(평안북도 박천)을 들렀다. 평양에서 특별기 편으로 청진과, 중국 국경 근처 함경도의 무산군과 명천군의 배급 실태를 돌아본 뒤 평양으로 돌아왔다.

홍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과거의 대홍수와 달리 이번에는 일부 지역에만 홍수가 있었다.

이번 방문에서 전과 상황이 달라진 것을 목격했는가?

분명히 변화가 있었다. 특히 97년과 비교해서 큰 변화가 있었는데, 97년에는 어린이들이 영양 실조로 머리가 노랗게 변하고 배가 불쑥 튀어나오거나 팔다리가 앙상했으나, 이번 방문에서는 영양 상태가 나아진 것을 목격했다. 아직도 굶는 사람이 많지만, 최악의 영양 실조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중국 국경을 취재한 <시사저널> 기자에 따르면 장거리를 걸을 수 있는 7∼12세 아이들의 탈북 현상이 늘어나고 있으며, 4세 이하 어린이들이 많이 죽어간다는데….

식량이 부족해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것은 북한 정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북측 통계로는 22만명이, 각국 비정부기구(NGO)들은 3백만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세계식량계획 모니터 요원들이 출입 가능한 지역의 유치원 아이들은 모두 하루 두 끼와 간식을 먹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집에 가서도 굶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모니터 요원을 몇 명이나 북한에 상주시키고 있는가?

46명이다. 36명은 평양에, 나머지 10명은 5개 지방 사무소에 각각 2명씩 상주하고 있다. 북한인 직원도 56명 채용했다.

구호 식량이 실수요자에게 확실히 배달되는지 어떻게 확인하는가?

모니터 요원들이 일부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구호 식량 선박이 항구에 도착하면 그 종류와 양을 확인하고, 할당 지역에 지정된 양이 도착되는지 확인한다. 또 수시로 지방을 방문해 확인한다. 우리는 전국 2백11개 군(郡) 중 1백62개 군 출입을 허락 받았다.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 지방에는 식량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곳의 식량 사정은 알 수 없다.

아무때고 제약 없이 자유 방문이 가능한가?

지방에 따라 다르다. 어떤 도(道) 당국은 사전 통보하면 아무 곳이건 방문하라고 허락하지만, 일부 지방에서는 방문지와 방문자 명단 사전 제출을 요구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허락한다.

북한 당국은 식량을 직접 중국 등지에서 사는 것이 가격과 운송 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이유로 현금을 요구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97년 북한이 태국에서 직접 쌀을 사겠다고 제의했으나 거부했다. 우리는 국제 입찰을 통해 가장 싸고 좋은 조건으로 구입한다는 입장을 분명히했고, 그 뒤로 북한은 더 이상 현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최근 북한이 대당 백만 달러씩 4천만 달러에 달하는 미그 21 전투기를 구입했다. 그 문제와 관련해 북한 당국자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가?

그 얘기는 어제 서울에 도착해서 처음 들었다.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도주의 사업에 종사하는 세계식량계획은 돕는 나라에 대해 어디에 예산을 많이 책정하고 어디에 돈을 적게 쓰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 예산 우선 순위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그러는 동안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이 죽어갈 것이다. 우리의 제1 관심사는 어린이들의 건강이다.

단둥에 갔을 때 탈북자들을 만나 보았는가? 그들을 도울 계획은 없는가?

만나지 못했다. 중국 당국과 중국 문제에 관해 논의하면서 탈북자 문제를 얘기한 적은 있으나, 현재 구체적 구호 계획은 없다.

천문학적 액수가 소요되는 구호 식량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지 않은가? (농업 생산성을 높일) 기술 원조가 필요하지 않은가?

북한이 해야 할 일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식량 증산이나, 아니면 무역을 통한 식량 수입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하다. 외국 전문가들은 비료 생산 증가, 농업 기계화, 지방별 수확물 이용 방법 개선 등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같은 개선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식량은 여전히 모자랄 것이다. 북한이 심각한 식량 부족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외국과의 교역량을 늘리고, 무역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금년 상반기에 한국 정부·적십자·민간단체들이 북한에 보낸 구호품은 4천만 달러 선이며 1년이면 1억 달러에 가깝다. 이를 모니터할 수 있는가?

북한과 직접 거래를 통해 전달되는 구호품에 대해서 우리는 관여할 수 없다. 우리는 세계식량계획를 통해 전달되는 구호품만을 모니터한다. 때문에 우리를 통해 구호품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 계획, 전투기 구입 등으로 인해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정가, 특히 공화당 인사들은 북한 식량 문제에 관해 적극적이 아닌 것 같다. 미국의 북한 원조에 실망하는가?

전혀 실망하지 않는다. 미국은 작년에 필요한 식량 60만t 중 50만t을 원조했다. 나 자신 공화당원이지만, 공화당은 구호 식량 제공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 일부 의회 의원들이 미·북한 합의문에 관해 이견이 있으나 구호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민주·공화 양당과 행정부, 비정부기구 등 누구나 굶는 자에 대한 식량 원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북한 당국에 요구하고 싶은 사항은?

우리 요원들이 사전 허락 없이 수시로 지방에 출장해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과, 요원들이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위성 통신 장비 반입을 허락하는 것이다.

당신이 경험한 세계의 빈국 중 북한이 가장 열악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가?

소말리아와 코소보처럼 한발과 내전으로 어느날 갑작스럽게 식량 공급이 끊기거나 먹을 것이 없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북한에서는 오랫동안 식량 사정이 조금씩 악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같은 상황은 처음 겪어 보는 일이다.

코소보 사태가 진정된 뒤 세계의 관심이 북한에 쏠릴 것으로 보는가?

벌써 그런 기미가 보인다. 지난 5월 북한 원조국들의 기자와 작가 들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코소보 사태로 인해 언론에 크게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북한 방문에서 돌아오니 (베이징·도쿄·서울) 언론의 관심이 훨씬 커졌다.

개인적으로 북한을 위해 구호금을 낸 적이 있는가?

(머뭇거리다가)현금 같은 것 말인가? 낸 적 없다. 그러나 ‘WFP의 친구들’이란 단체나 ‘WFP를 위한 일본협회’의 자선 활동에 참여해 도운 적은 있다. 또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남편이 세계식량계획에 많은 사진 자료를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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