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느닷없이 주한미군 성격 트집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7.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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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표들 미국측에 요구…유엔사령부 해체 노린 듯
지난 3월7일 뉴욕에서 열린 미·북한 준고위급 회담에서 북한 대표들은 ‘엉뚱한’ 주문을 했다. 주한미군의 성격을 분명히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주한미군이 유엔군으로 계속 남게 되면 현재 유엔 회원국인 북한이 유엔의 ‘적’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면서, 그럴 경우 앞으로 평화협정도 유엔과 체결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서방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북한이 이번에는 유엔사령부 해체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북한측의 전술 변화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4월24일과 6월25일 평양방송 보도에서 유엔사를 해체하라고 거듭 요구하면서, 유엔사가 존재하는 한 북한 역시 정전협정을 파기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은 또한 지난번 미·북한 간 실무 협상에서 미국측이 미국 은행에 동결되어 있는 북한 자산에 대한 동결 해제를 알려왔다고 주장했다. 한·미 양측은 즉각 이를 부인했으나, 외교 소식통들은 당시 협상 내용 중에 북한측이 그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동결 자산 해제도 거론

당시 북한측이 미국에 요구한 것은 △미·북한 관계 정상화 △주한미군의 성격을 분명히할 것 △ 카길사의 쌀 50만t 지원 문제를 빨리 해결할 것 세 가지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미국의 처지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미국 역시 경제 제재를 완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 조건으로 보아 미국이 이를 약속했다고 북한이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느닷없이 동결 자산 해제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앞으로 있을 협상과 관련해 어떤 양보안을 내놓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북측의 태도 변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4자 회담 문제이다. 이미 북한은 비공식 경로를 통해 ‘백만~1백50만t 쌀 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4자 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관계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 4자 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선회하게 된 것은, 황장엽 사건 이후 진행되어온 국제적 쌀 지원 계획에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황장엽 사건 직후 미국은 북한에 대해 황의 망명을 허용하는 대신 식량 지원을 받으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북한이 이런 조건을 수락함에 따라 미국이 카길사 쌀 50만t, 중국이 올해 이미 예정한 50만t, 그리고 일본 30만t, 한국 20만t으로 대북 지원 할당량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결정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상관 없으나, 한국과 일본은 황장엽 망명만으로는 쌀 지원 명분이 약했고 이에 대한 플러스 알파로 북한의 4자 회담 참석 약속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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