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미사일 미·러 대결, 한국의 선택은?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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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제, 북한 레이더와 주파수 비슷해 오작동 가능성
최근 한국 공군의 방공 미사일 도입 사업(SAM-X)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 레이디온사의 패트리어트와 러시아 국영무기수출회사가 판매하는 S300이 경쟁하는 이 사업은, 지난해 결정된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금강 사업’과 더불어 문민 정부 최대 무기 도입 사업이 될 전망이다.

미국 레이디온사는 지난해 호커 800XP 정찰기를 제시해 한국 공군의 백두·금강 사업을 따낸 바 있는데, 이번에는 방공 미사일까지 따내 ‘연타석 홈런’을 치겠다는 계획이다. 레이디온사는 94년 주한 미8군이 패트리어트 PAC2를 도입했으므로, 한국 공군 관계자들에게 실물을 보여줄 수 있어 유리한 입장이다. 서울 용산구 국제빌딩에 한국 지사(지사장 이명진)를 설립했고, 최근에는 회사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물량의 광고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레이디온사의 드럼굴 사장이 한국을 방문해 패트리어트가 한국의 산악 지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러시아 국영무기수출회사는 서울 동빙고동에 한국지사(지사장 레베드)를 설립해 맞서고 있다. 러시아의 전략은 6공 시절 한국이 옛 소련에 제공한 12억달러 차관을 S300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또 성능에 비해 값이 싸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미국 무기의 비싼 가격에 질려버린 한국인의 반미 감정을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측은 서울 에어쇼 때 수호이 37기 판매에만 주력해, S300을 전시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때문에 레베드 지사장 등은 자료만 들고 뛰어다니고 있어, ‘뭔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TMD 구축 일환으로 미사일 도입

방공 미사일 판매전은 미국과 러시아 정부 간의 대립으로 비화하고 있다. 4월5일 미국의 코언 국방장관은 하와이에서 한국군과 미국군이 연합군임을 강조하면서 “한국 공군이 러시아제 S300을 도입하면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지 못해 미군기를 오인 격추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쿠나제 주한 러시아대사는 ‘미국 무기를 강매하려는 후안무치한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최근 러시아도 국영무기수출회사의 S300 실무진을 비밀리에 한국에 파견해 한국 국방 관계자와 접촉케 한 바 있다.

왜 한국은 방공 미사일을 도입하게 된 것인가. 미국은 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패트리어트 도입을 강요하는 것일까. 미국과 러시아가 벌이는 방공 미사일 판매전에서 최종 승리자는 누구일까.

한국이 방공 미사일을 도입하게 된 것은 ‘세계 경찰’ 미국이 동아시아에 건설하려는 ‘전역 미사일 방어체계(TMD)’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 공군은 북한이 노동1호를 시험 발사한 93년 이전부터 미국과 전역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논의해 왔다. 전역 미사일 방어체계는 고층 방어와 저층 방어로 나뉜다. 고층 방어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나 북한의 대포동 1호와 같은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 등을 요격하는 것으로, THAAD(고고도 미사일 요격 시스템)라고 한다. THAAD는 미국이 담당하는데, 현재 레이디온사가 레이더를, 록히드마틴사가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저층 방어란 노동1호와 같은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MRBM)과 스커드B와 같은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 그리고 순항 미사일(크루즈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노동1호의 사정권에 들어 있는 일본이 이미 패트리어트를 도입했고, 중국으로부터 미사일 위협을 받고 있는 대만이 올해 말 패트리어트 도입을 완료한다. 또 북한의 스커드B 위협권에 들어 있는 주한미군도 94년에 패트리어트를 도입했다.

한국은 전역 미사일 방어체계 협상국 중 가장 늦게 방공 미사일을 도입하는 국가이다. 늦은 만큼 몇 가지 매우 유리한 점이 있다. 첫째는, 그동안의 기술 발전으로 최신 방공 미사일을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패트리어트를 예로 들면, 패트리어트는 PAC 1,2,3으로 발전해 왔다. 일본과 대만·주한미군에 제공된 패트리어트는 PAC2이지만, 한국에 제시된 것은 최신형인 PAC3이다. 둘째는 러시아의 S300까지 뛰어들면서 한국이 가격과 기술 전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PAC3은 1개 대대를 직도입하는 비용이 약 8억달러로 고가지만, 레이더의 성능이 가공할 만큼 뛰어나다고 한다. 전방과 해안 지역에 배치한 한국 공군의 레이더가 잡아낸 항공 정보는 공군 작전사령부 내의 중앙방공통제소(MCRC) 컴퓨터로 입력된다. 그러나 PAC3에 배치된 위상 배열 레이더는 매우 예민해, 중앙방공통제소 컴퓨터 용량을 초과하는 항공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S300에는 S300PMU1과 S300V 두 종류가 있다. 위상 배열 레이더와 유사한 IG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으나 성능은 PAC3만큼 뛰어나지 못하다고 한다. 러시아는 미국보다 한 발짝 늦은 94년 서울군수산업전에서 S300 설명회를 가지면서 한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값은 패트리어트의 절반 정도로 싸고 파격적인 기술 이전을 제시하면서 한국을 유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과 3월 아랍에미리트와 키프로스가 S300 도입을 결정한 것도 러시아에게는 유리하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방공 미사일에 관한 상식 중에는 잘못된 것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이 방공 미사일이 적 미사일을 정확히 맞추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요격 미사일은 적 미사일과 마주치는 지점에 이르면 스스로 터져 화망(火網)을 형성한다. 이때 생기는 파편으로 적 미사일을 때려 폭파시키는 것이다. 적 미사일이 화망을 무사히 통과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요격 미사일은 연속적으로 2발 발사된다.

PAC3은 현재 미국에서 개발 중인 에린트(ERINT) 미사일을 장착할 수도 있다. 에린트는 핵이나 생화학 무기를 장착한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으로, 화망을 형성하지 않고 적 미사일과 그대로 부딪치는 것이 특징이다. 미사일이 서로 충돌할 때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로 적 미사일 탄두에 들어 있던 방사능과 생화학 성분을 최대한 넓은 지역에 확산시켜 아군 피해를 줄이자는 것이 에린트를 개발한 동기이다. 한국 공군은 북한이 핵과 생화확 무기를 보유한 만큼 에린트급을 장착할 수 있는 방공 미사일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에린트급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종 결정은 다음 정권에 넘길 수도

레이디온사는 PAC3 1개 대대가 S300 1개 여단(4개 대대)이 담당하는 공역을 방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대대당 가격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동일한 성능을 발휘했을 때의 가격을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초기 구입 비용은 S300이 싸지만 25년간 사용했을 때의 총 유지 비용은 S300이 두 배 이상 더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방공 미사일 도입 사업은 한국 업계에서도 관심 사항이다. 미사일 관련 부품과 레이더를 조립 생산하는 L정밀은 패트리어트의 위상 배열 레이더 기술을 도입한다는 계획으로 레이디온사와 의향서를 교환했다. 반면 라이벌 관계인 S전자는 러시아와 손잡고 S300을 지원하고 있다.

S300이 도입되면 유사시에 과연 미군기를 적기로 오인 격추할 것인가. 적잖은 전문가는 별도의 피아 식별 장치를 달면 되므로 오인 격추는 있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유사시 한국군은 북한의 레이더를 무력화하기 위해 전자교란전을 펼치는데, 이때 북한의 레이더와 유사한 주파수를 사용하는 S300의 레이더가 전자 교란에 걸려 오작동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따라서 S300이 한국군의 전자교란전에 말려드는가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방공 미사일 도입과 같은 큰 사업은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문민 정부가 권력 누수에 시달리는 만큼 기종 결정을 미루고 최종 결정권을 차기 정권에 넘길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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