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프간 전쟁 '거액 분담금' 비상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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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페르시아만 전쟁 때 5억 달러 '바가지',
남긴 돈 주한미군이 전용…이번엔 15억 달러 요구할 듯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테러 보복 전쟁은 한국에도 발등의 불이다. 막대한 전쟁 수행 분담금 때문이다. 미국은 벌써부터 길고 지루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국제 테러 조직을 뿌리 뽑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전쟁에 대한 막대한 분담금 부담을 요구받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낼 준비를 하라는 통고로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은 최근 이번 테러 전쟁에 대한 한국의 전비 분담액이 과거 페르시아 만 전쟁 때 냈던 분담금의 3배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때 분담금이 5억 달러였으므로 이번에는 15억 달러 정도를 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면 페르시아 만 전쟁 때 한국이 분담한 5억 달러를 기준으로 이번 전쟁 분담금을 설정하는 것이 타당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르시아 만 전쟁 때 한국은 엄청난 '바가지'를 썼다. 1990년과 1991년 두 해에 걸쳐 미국과 중동 동맹국들이 이라크를 상대로 치른 전쟁은 6개월 간의 준비를 마치고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한국 정부와 분담금 협상을 벌여 5억 달러 지원 약속을 따냈다. 이 중 현금이 3억8천만 달러였고, 물자 수송 등 현물 지원분이 1억2천만 달러였다.


전쟁 일찍 끝나 1억4백만 달러 남겨


한국은 의무부대 파병을 시작으로 분담금 집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페르시아 만 전쟁은 47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전쟁이 빨리 끝나 한국은 약속한 현금 분담금 중 1억4백만 달러를 미처 지급하지 못했다. 상식으로는 남은 분담금은 집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나머지 돈을 다 내놓으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바람에 당시 외무부는 미국과 쓰지 않은 전쟁 분담금을 처리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결국 한국과 미국은 이 돈을 주한미군이 전용하기로 합의하고 구체적인 사용은 한국 국방부에 위임했다. 이 돈은 국방부 예산으로 매년 주한미군에 지원하는 방위비 분담금 3억 달러와는 별도인 지원금이었다.


이에 따라 남은 1억4백만 달러는 진해 미군 탄약부두 건설 공사, 오산 공군기지 사업, 주한미군 군수물자 운반 철도 화차 구입 등에 쓰였다. 이 가운데 진해 주한미군 군수물자 탄약부두 건설에 가장 많은 4천만 달러가 들어갔다.


페르시아 만 전쟁 분담금 미집행분을 미국에 털린 한국 정부의 '봉' 노릇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군은 진해 주한미군 탄약부두 공사를 벌이면서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아 주변 양식 어민에게 7백억원대의 피해를 입혔다. 결국 어민들이 미군 당국과 국방부를 상대로 연일 시위를 벌이고 진정을 내자 당황한 국방부가 주한미군측에 어민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협상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협상 자체를 아예 거부했다. 한·미 행정협정에 따라 주한미군 시설 공사로 인한 한국인 피해는 한국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다급해진 정부는 1991년 추가경정 예산에 어민피해보상비를 집어넣어 피해자들에게 2백40억원을 물어 주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같은 페르시아 만 전쟁 때의 경험을 들어 이번 전쟁 분담금 지원 과정에서도 정부가 미리 대비하지 않아 크게 바가지를 쓸까 봐 우려하고 있다. 국방연구원이 이번 전쟁에서 분담금 요구액이 막대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전쟁 수행 주체가 페르시아 만 전쟁 때와는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페르시아 만 전쟁 때 미국은 총전비 6백10억 달러 가운데 10%도 안되는 80억 달러만 쓰고, 90%를 우방국의 지원에 의존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는 이라크와 전쟁 당사국이라는 이유로 3백50억 달러를 부담했다.


한국국방연구원은 이번 전쟁 수행 비용이 최소한 페르시아 만 전쟁과 맞먹는 6백억 달러가 되리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4백억 달러를 테러 복구 및 대 테러 군사 작전에 배정했고, 단기 제한전으로 끝날 경우 2백억 달러가 추가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앞으로 지상군이 투입되는 등 장기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체니 미국 부통령이 표현한 대로 2∼3년에 걸친 장기전으로 가면 전비는 약 천억 달러로 늘어나리라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미국, CIA 등 앞세워 한국 압박


이번 반테러 전쟁은 과거 페르시아 만 전쟁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우방인 일부 중동 국가들조차 전비를 부담하는 대신 오히려 전비를 미국으로부터 받아내려 하고 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는 미군에 기지를 제공하는 대가를 요구하고 있으며, 파키스탄은 수십억 달러 경제 원조를 받는 대가로 미국을 지원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은 유럽 일본 한국 등 전통 우방국에 부담을 지우려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수면 아래에서 압박하고 있다. 국내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 CIA 요원들이 최근 한국에 자주 출입하며 확인할 수 없는 악성 정보를 흘리고 다녀 국내 정보기관이 바짝 긴장해 있다"라고 전했다. 미확인 악성 정보란, 미국 테러 수사 과정에서 체포된 테러범으로부터 다음 목표가 파주와 오산에 있는 주요 미군기지라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따위이다. 또 미국이 테러 조직의 자금을 추적한 결과 한국계 은행에 대한 계좌 추적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확보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미국 정보기관은 중동 테러 조직과 국내 반미운동 단체가 연계한다는 정보가 있다며, 한국 정보기관에 국내 반미 인사들에 대한 사찰 활동을 강화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정보기관을 필두로 한 미국의 이같은 한국 압박 작전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전쟁 분담금을 많이 받아내려는 데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국방연구원도 최근 펴낸 반테러 전쟁과 한국 분담금 관련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미군 기지 관련 지원금액 분담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국내 미군 기지 시설 100여개에 대한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한국이 방호벽을 시설해 주고, 오산기지의 항공 감시장비 시설을 보강할 때도 한국이 방위비용(CDIP)을 분담하라고 요구할 조짐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이 파키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와 아프가니스탄 인접 국가의 협조를 얻는 대가로 경제 원조를 할 때 한국에게 국제 기구를 통하거나 직접 돈을 내라고 요구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의 분담금 예상액은 15억 달러에 이르리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 반테러 전쟁은 끌면 끌수록 한국에 불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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