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 각본대로 간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press.com)
  • 승인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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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 ‘신국방 정책’ 일환…핵 선제 공격 가정한 ‘반확산 방위 구상’과 관련도
'주한미군 철수’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미국대사관이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대사관이 최근 <시사저널>이 보낸 질문서에 보내온 답변에서는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 국방부가 그동안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을 검토해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허바드 대사가 검토해 모린 코맥 대변인이 전해준 답변 내용은 지난해 12월 워싱턴에서 있었던 제34차 한·미 연례안보회의(SCM) 합의 사항의 한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의 군사력 수준을 개선된 군사 능력과 군사 기술 정교화 증대에 맞춘다(Our forces level matches our improved capability and growing sophistication of our respective military)’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주한미군 지상군의 부분 철수를 검토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더라도 첨단화한 군사 기술로써 그 공백을 메울 예정이기 때문에 주한미군 전체의 전력이 약해지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 비켜간 ‘주한미군 철수’ 논란


만약 미군이 실제로 철수한다면 그 첫째 이유는 ‘군사 기술이 현대화하고 정교화하는 데 맞추기 위해서’라는 얘기이다. 따라서 워싱턴을 다녀온 일부 정치인들의 전언이나 각 일간지 워싱턴 특파원들의 보도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 듀크 대학에서 객원연구위원으로 열심히 ‘공부’ 중인 장성민 전 의원 같은 사람이 “정치인들하고 언론이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푸념할 만하다.


장의원 얘기처럼 ‘공부’를 하고 나서 이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면 진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의원들이 최근에 만든 ‘주한미군 철수를 걱정하는 모임’처럼 해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대사관이 애매하게 표현한 ‘현대화한 군사 기술’을 연구해야 하는지.


사실 지상군 감축과 군사 기술 현대화는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계속 진행되어 온 화두이다. 미국 역대 정권에서 주한미군 지상군 전력은 애물이었다. 멀리는 1969년 닉슨 독트린과 1970년대 말 카터 정권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냉전 직후인 1989년 넌-워너 수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하고 1990년 4월 당시 부시 행정부가 3단계 감축안을 의회에 제출해 감축이 본격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1년 북한 핵 문제로 인해 1단계 감축에서 더 진전하지 못했다.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이다. 당시 서울을 찾은 미국 군사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펜타곤(미국 국방부)에서 미군 지상군 감축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라고 귀띔한 바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미군 철수 압력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의 비슷한 시점에 클린턴 정부 시절 아태담당 국방 차관보를 지낸 커트 캠벨과 군사 전문 기자인 리처드 할로란은 아시아 주둔 미군 및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논문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켐벨은 ‘중요한 것은 병력 수가 아니라 군사 능력’이라며 아시아 지역에 10만 미군을 주둔시켜온 관행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주한미군 지상군과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 지역과 호주로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할로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미 ‘워싱턴의 군 수뇌부와 미군 태평양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와 주일미군사령부’ 등에서 주한미군 육군의 제2보병사단 약 2만7천명은 알래스카나 괌·하와이, 미국의 서해안 지역 등으로 철수하고, 오키나와 주둔 제3해병 원정군 1만8천명은 호주 북부 등으로 이전할 것을 검토중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2000년 10월 아미티지 현 국무부 부장관이 주도해 초당파적으로 작성한 <아미티지 보고서>에서는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으로 인해 발생할 동북아의 안보 공백을 일본 자위대 군사력으로 메운다는 구상이 들어 있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전에 이미 미국 군사 전략가들 사이에 주한미군 지상군의 운명에 대한 합의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이 문제에 총대를 멘 사람이 바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다. 그는 2001년 2월6일 국방부 최종평가국 평가분석관이자 전략가인 앤드류 마셜에게 미군 쇄신에 대한 검토에 착수하라고 명령했다. 그 뒤 그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마셜플랜’으로 인해 미국 군부가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탈냉전 시대 미국의 전략 중점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여야 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과 인도가 가장 강력한 위협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장거리 수송 능력 증가로 인해 미군 지상군을 구태여 해외 기지에 둘 필요가 없다는 점, 따라서 해공군력과 첨단 무기 체계로 지상군 병력을 대체해 나가야 한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2001년 5월에 발표된 랜드 연구소 보고서 <미국과 아시아>는 이같은 흐름을 반영해 주한미군 중 보병 사단인 제 2사단 병력의 일부 철수를 제안하기도 했다.
해외 주둔 미군 감축은 부시 행정부 신국방정책의 한 축이다. 그것은 또 다른 축과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다. 이름하여 ‘반확산’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2001년 5월9∼10일 한국을 방문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부시 행정부의 ‘신국방 정책 4원칙과 신안보 개념’을 우리 정부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그는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전략적 틀’로서 △ 비확산 △ 반확산 △미사일방어(MD) △전략 핵 감축 등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비확산 분야에서는 한국에 요구할 게 없으나 반확산 분야에서는 한국이 관심을 가질 것이 있다”라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반확산이란 제3 세계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외교적으로 저지(비확산 단계)하기 어려울 경우 군사력으로 저지한다는 전략 개념이다. 그 뿌리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3년의 ‘반확산 방위 구상(DCI=Defence Counter Proliferation Initiative)’과 닿아 있다.
당시 소련과의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의 군수산업체와 군사과학자, 국방부와 국무부의 해당분야 전문 부서들(국방부의 탄도미사일방어국과 국무부 비확산국)은 군비 증강을 위한 새로운 명분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이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제3 세계 불량 국가들과 테러 집단에 의해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새로운 위협’이 냉전 시대 소련의 위협보다도 훨씬 위험하다는 전제 하에 군사 전략을 세웠다. 과거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의도를 알 수 있었고, 또 상대방에 대한 공격은 치명적 반격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억지 위주의 전략이 가능했다. 그러나 제3 세계 ‘불량 국가’나 테러 집단의 대량살상무기는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알 수가 없고 대부분 지하 벙커 등에 은폐되어 있어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험한 징후가 포착될 경우 공격받기 전에 선제 공격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지하 벙커 등을 뚫고 들어가 파괴하기 위해서는 소형 핵무기를 중심으로 한 첨단 무기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지만 당시 유럽은 이 위험한 전략을 채택하기를 거부했다. 그 와중에 한반도에서 1994년 핵 위기가 터졌다. 당시 미국 국방 당국이 북한 폭격을 검토했다는 얘기가 나중에 알려졌는데, 그 북폭이 바로 반확산 방위구상 전략 개념에 의한 것이라는 ‘오싹한’ 얘기가 있다.
2001년 집권한 부시 행정부는 국무부 지역 파트가 중심이 된 ‘대북 정책 위원회’와 국무부 비확산국, 국방부 탄도미사일 방위국 등이 중심이 된 ‘비확산 위원회’양축을 가동해 대북 정책을 재검토했다.
대략 2001년 5월까지 부시 행정부는 해외 주둔 미군 감축 작업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지상군을 감축하고, 그 공백을 반확산 방위 구상으로 메운다는 전략 구상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전략 구상은 그 이후 한 단계 한 단계씩 현실화해 왔다.


우선 지상군 병력 감축부터 살펴보자. 2001년 9월30일로 예정되었던 QDR(미국 국방부가 4년에 한번씩 의회에 제출하는 국방 전략 재검토 보고서)가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당시 QDR의 주 내용은 주한미군을 포함한 아태 주둔 미군 감축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9·11 테러가 발생해 오히려 ‘아시아 주둔 군사력 강화’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했다.


럼스펠드 장관이 ‘2사단 후방 배치’ 거론한 까닭


그러나 그 다음해 상반기에 미국 군사 당국은 매우 중요한 일보를 내딛게 된다. 바로 3월19일 한·미 양국이 서명하고 그 해 10월31일 국회 비준이 이루어진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다. 이 계획은 그동안 미군측이 방만하게 소유해온 한국 내의 광범위한 토지를 반환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용산을 거점으로 전방 배치된 미 2사단 병력을 후방으로 이동시킬 길을 터놓은 것이기도 하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이번에 정대철 특사에게 이 문제를 언급할 정도로 미국측의 관심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재래식 군사력 감축 및 후방 이동을 집요하게 요구해온 것도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3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당시 방북을 검토하던 제임스 켈리 특사의 보따리에는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문제가 들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북한 재래식 무기 후방 배치와 미 2사단 감축 및 후방 배치를 동시 타결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반확산 방위구상 실전화 움직임 역시 똑같은 무게로 진행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다. 이 발언은 유사시 핵 선제 공격 대상, 즉 반확산 방위 대상으로 이란·이라크·북한 세 나라를 공식 지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내용은 그 두 달 뒤인 지난해 3월 가 폭로한 ‘핵 태세 보고서(NPR)’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란·이라크·북한·러시아·중국 등 일곱 나라를 유사시 미국의 핵 공격 대상으로 규정한 이 보고서는 △선제 핵 공격 △지하 벙커 공격용 무기 및 소형 핵탄두 개발 등 반확산 방위 구상의 교리를 충실하게 담은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지상군 병력 이동과 반확산 방위 실전화 움직임이 거의 비슷한 시점에 나타나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지난해 3월의 연합토지관리계획 체결과 ‘핵 태세 보고서’ 추진, 그리고 지난해 12월5일 한·미 양국의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내용과 최근 럼스펠드 장관이 ‘한강 이남 지역’으로 2사단 병력을 옮기고 싶다고 한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핵 선제 공격까지 가정하는 반확산 방위 구상은 아군 병력이 상대의 반격권 바깥에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상되는 타격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달리 북한의 반격 능력을 감안할 경우 2사단 병력을 전방에 계속 둔다는 것은 자멸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바야흐로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반확산 교리를 실전에 적용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이 시점에 지상군 후방 배치 얘기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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