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단칼’ 빼들고 돌격 앞으로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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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처럼 失機 않겠다” YS 비판·주한미군 방문 등 대권 행보 ‘성큼’
신한국당 이한동 고문의 별명은 ‘단칼’이다. 호방한 성격만큼이나 매사에 맺고 끊는 것이 칼과 같다고 해서, 유신 시절 후배 검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러나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이고문이 얻은 별명은 영판 다르다. ‘놀프(No Help)’.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좀체 드러내지 않아서, 기자들이‘도움이 안되는 인물’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그만큼 언행이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그런 이고문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예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대권 주자 이한동’의 정치적 견해를 분명하게 밝힌다는 내부 방침까지 정했다. 이고문 측근들은 “그동안 대권 논의 자제 요청 때문에 조심해 왔는데 이제 할 말은 할 것이다. 이고문 스스로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여야 영수회담이 열린 1월21일 아침, 이홍구 대표는 당내 의견을 수렴하려는 차원에서 상임고문단 회의를 열었다. 불참자는 이한동·황낙주 고문. 바로 그 시각 이고문은 서울 정동 로타리클럽 초청 조찬 강연에 참석해, ‘이례적으로’ 현정권의 통치 행위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정치는 그만둬야 한다. 투명한 정치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라며 YS의 깜짝쇼 정치를 비판했다. 또한 그는 노동법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파업 지도부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철회하고 모든 문제를 국회에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표 노동법 무원칙 대응’ 강력 비판

이번 노동법 사태에 대한 이고문의 대응도, 그의 보수적인 이미지나 평소 스타일로 볼 때 ‘튀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는 1월18일 명동성당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발 빠르기로 유명한 박찬종 고문보다 앞선 행보였다. 이 날 김추기경은 권영길 위원장을 범법자로 몰면서 토론은 왜 제안했느냐며, 바로 전날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느낀 불쾌감을 이고문에게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김추기경의 진노는 이고문을 통해 즉각 청와대로 전해지기도 했다.

이고문의 이러한 행보는, 언론 및 대중과의 접촉을 강화함으로써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낮은 지지도를 최소한 ‘커트라인’까지 끌어올리고, 당내 경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1월15일 주한미군 2사단을 방문했을 당시 앞뒤 과정을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우선 미국대사관측이 이고문을 특별 예우한 배경에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쏠렸다. 이번 방문은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가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미국대사관측은 이고문을 시종 국가 원수급으로 대우했다. ‘투 스타’가 헬기로 이고문을 직접 모신 것도 그렇고, 레이니 대사가 5시간 동안 이고문과 동행하며 비공개 시설인 지하 벙커내 작전상황실과 최첨단 군사 시설을 안내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본래 미국대사관측은 이고문을 지난 가을 한미연합사에 초청하려고 했으나, 이고문의 요청에 따라 1월로 미루었다. 이고문 핵심 측근인 현경대 의원은 “방문 시점을 굳이 1월이라고 못박은 점을 가볍게 보아 넘기지 말라”고 귀띔했다. 이고문측이 당내 대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시기를 1월로 잡았고, 주한미군 방문은 ‘시동 걸기’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고문이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그가 ‘92년의 교훈’을 얼마나 뼈저리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당시 그는 대권 도전 의사를 피력했지만 이종찬 의원에게 선수를 빼앗겼고, 결국 YS를 지원했다.

이고문은 최근 사석에서 ‘내가 대표였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동법 사태에 대응하는 이홍구 대표의 무원칙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그 참석자는 이고문이‘이홍구 대표 흔들기’에 나선 듯한 감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 참모진을 보강하는 등 경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고문 진영에 결전을 앞둔 비장한 공기가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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