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마당]김덕룡 김수한 한영애 정몽준
  • ()
  • 승인 1997.01.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관직 족쇄 푼 김덕룡“대권 향해 훨훨 날자”

신한국당 차기 주자 김덕룡 의원에게 정무장관 직은 족쇄였던 모양이다. ‘뭐가 보이나’하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자유가 보인다’라고 대답한 광고가 있다. 12·20 개각 때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김의원도 자유가 보인다고 대답하고 싶었을 것 같다.

김의원의 장관 퇴임 첫마디도 ‘무거운 옷을 벗은 느낌’이다. 그는 개각 당일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 각료이면서 당직자인 정무1장관 자리는 정치 현안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밝히는 데 속박이 된 게 사실이다. 이제는 활동 공간이 넓어진 만큼 내 나름의 목소리를 내겠다”라고 밝혔다.

개각 발표가 나자마자 청와대 비서실에서 ‘김장관 교체는 경질이 아니라 소원 수리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 것도 이번 인사 배경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본격적으로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라는 김대통령의 배려가 정무1장관 교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의원 진영에서도 이번 인사를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의 한 측근은 여론조사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던 현상도 서서히 만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가 낼 목소리가 어느 만큼 독자적이고 어느 만큼 클지 정가의 관심이 쏠린다.날치기 저지하던 ‘야당 김수한’어느새 날치기 선봉에 서다

김수한 국회의장은 정계에서 ‘처세술의 교과서’로 통한다. 그만큼 대세를 정확하게 읽고 변화에 빨리 적응한다. 덕분에 그는 30년 넘는 정치 생활 동안 언제나 조직의 주류에 속했다. ‘당권 있는 곳에 김수한이 있다’ ‘양지만 찾아다닌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그 나름의 처세술이 없었다면 13·14대 때 거푸 낙선한 처지로 국회의장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난 12월18일 그는 또 한 차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진통을 겪었다. 여당 소속 국회의장으로서 안기부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려다가 야당 의원들에 의해 하루 종일 의장실에 갇힌 것이다. 야당 후배 의원들은 ‘여당의 강행 처리를 항상 앞장서 저지해 오던 김선배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다그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0년 가깝게 야당 대변인을 지내며 독설과 풍자로 여당을 질타해온 전력이 있다. 12대 국회 때는 여당의 조세감면법 날치기에 맞서 이재형 국회의장실 봉쇄 조장을 맡기도 했다. 시세에 따라 옷을 잘 갈아입는 그지만 이번만큼은 곤혹스러운 듯, 그는 후배들의 야유가 쏟아지는 동안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안기부 수사권 막는다면‘마녀’가 된들 어떠리

마녀. 신한국당 의원들이 국민회의 한영애 의원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안기부법 개정을 놓고 벌어진 여야 몸싸움에서 한의원은 ‘잡아먹을 듯이’ 여당 의원들을 공격했다.

의장 저지조에 편성된 한의원은 기세등등하게 의장실에 들어서던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을 ‘가서 골프나 치시오’라는 말 한마디로 물리쳤다. 밤늦게 의장실로 몰려들던 여당 의원들에게는 ‘피 보고 싶은 악마 있으면 다 나와’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한의원이 섬뜩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자 주위에서는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그가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데는 사정이 있다. 한의원 자신이 안기부의 모진 수사에 숱하게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20년 넘게 야당 민권국장을 맡아 오면서 북한 찬양·고무죄에 걸려 소리 소문 없이 안기부에 끌려가 치도곤을 맞는 민주 인사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한의원은 이를 막기 위해서라면 마녀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정몽준을 대통령으로 모시자” 난데없는 ‘봉기’에 정계 들썩

아마 96년 한 해 여야 대권 주자를 제외하고 언론 조명을 가장 많이 받은 정치인은 정몽준 의원(무소속)일 것이다. 일부 언론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아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한·일 공동 유치를 따낸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을 정도다.

얼마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정의원을 내년 대통령 후보로 밀자는 추대 모임이 열렸다. 모임을 주도한 사람은 박상천 21세기문화센터 원장. 박원장을 포함해 주로 요가와 선도 관계자인 백여 명이 12월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몽준 의원을 97년 대선 후보로 추대하자’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정몽준 추대 모임을 가진 것이다. 여권 핵심부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대권의 한을 품고 있는 정주영씨가 아들 정의원을 지원할 경우 97년 대선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사 결과 정의원과 이 모임은 전혀 무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모임을 주선한 박원장측은, 정의원 같은 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판단해 자기네끼리 추대 모임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의원측은 구설에 오를까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추대한다는 데야 그리 기분 나쁠 일도 아닐 성싶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