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싸움에 ‘왕따’까지 시름 겹친 민노당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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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지부장 선거·폭행 사건 싸고 ‘잡음’정기국회에서는 양당 대결에 눌려 소외감
지난 9월8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야당 의원석 끝에 앉은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은 섬과 같았다.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이 이 날 회의의 쟁점이었는데. 개정안을 안건으로 상정하자는 열린우리당과 개정안을 상정하지 말고 미루자는 한나라당이 팽팽히 맞섰다. 동어반복식 논란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과 공동으로 친일진상규명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상태.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논란이 치열해지면서 이의원은 발언 기회를 얻기조차 쉽지 않았다. 회의 도중 이의원이 “정쟁으로 흐르면 안 된다”라고 말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나라당 의원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표결로 개정안이 상정되었다. 이영순 의원은 “비교섭 단체에 대한 교섭 단체의 태도가 비신사적이다. 야당석에 앉아 있지만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 언론을 보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논란만 나온다.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국보법 폐지’ 큰소리 한번 못쳐보고…

원내 제3당 민주노동당에 이번 정기국회는 ‘소외의 계절’이다. 친일진상규명법과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벌이는 논란이 격렬해질수록 민주노동당의 목소리가 신문과 방송에서 ‘실종’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논란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민주노동당으로서는 특히 고민스러운 일이다.

최근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각 방송사와 언론노조를 잇달아 방문했다. 국가보안법을 다룬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잇달아 민주노동당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으로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가장 분명한 정책(완전 폐지)을 갖고 있으면서도 양당 틈에 끼여 제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형국이다.

당 내부 상황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두 당 사이에 끼여 차별화한 의견이 드러나지 않는 마당에 당 안에서는 정파들 사이에서 잡음까지 나는 실정이다. 지난 8월27일 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7월15일 치른 경기도 지부장 선거를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하라고 결정한 것은 복잡한 내부 사정을 드러내고 있다.

논란은 경기도 지부장 선거의 후보 등록 서류 접수 시한인 7월1일 오후 5시로 거슬러올라간다. 문제는 팩스였다. 당시 노세극 후보(안산 단원 지구당위원장)측은 팩스로 후보 등록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후 4시40분께부터 경기도 당 선관위로 팩스 전송을 하려 했으나 계속 에러가 발생했다. 서류가 접수되기 시작한 것은 등록 마감 시간에서 10분이 지난 17시10분께. 팩스 전송이 안 된다고 경기도 당 선관위와 통화한 이후였다.

팩스 문제로 접수가 늦어진 후 노후보측은 경기도 당 선관위에 중앙당에 유권 해석을 의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선관위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노후보가 등록하지 못하자 부지부장 후보 5인과 사무처장 후보 1인이 이같은 선관위의 결정에 항의해 사퇴했고, 경기도 당 선관위는 투표를 강행했다. 뒤늦게 중앙당 선관위는 한국통신으로부터 통신내역서까지 확인하고 지부장 재선거를 결정했다. 일부에서는 정책연구소장 임명이 늦어지는 것도 노선 갈등 때문이라고 본다(위 상자 기사 참조).

폭행 사건 징계 놓고 정파간 티격태격

최근에 발생한 당내 성폭력 사건도 당원 게시판에서 정파간 논란으로 비화했다. 지난 8월20일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이 주관한 수련회에서 민주노동당 여성 당직자 ㄱ씨가 호칭을 생략하고 민주노총의 간부를 부르자 민주노동당 당직자 ㄴ씨가 ㄱ씨를 폭행한 일이 벌어졌다. ‘운동 선배’에게 버릇없이 군다는 이유였다. ㄴ씨가 주변의 만류로 물러나 있는 사이 이번에는 다른 당직자 ㄷ씨가 ㄱ씨의 멱살과 머리채를 잡고, 이를 말리는 민주노총 관계자와 드잡이한 일까지 발생했다.

남성 2명이 여성 1명을 폭행한 폭력 사건이 분명한데도 이 사건은 정파간 싸움으로 번졌다. 징계 수위와 최고위원회의 대처 방식을 두고 당원 게시판에서 논쟁이 번진 것이다.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진성 당원 중심의 정당임을 자부했다. 실제로 다른 정당에 비해 진성 당원들이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각 정파가 당내 의견 그룹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당내 활동을 상호 감시하는 긍정적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생산적 노선 갈등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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