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글…'제2차 도메인 전쟁' 예고
  • 이문환 기자 ()
  • 승인 2000.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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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한글 도메인 서비스 실시 임박… 기업들 ‘방어 비용’ 늘어날 듯
이름을 지켜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될 한글 인터넷 도메인 서비스가 영문 도메인에 이어 ‘제2의 인터넷 도메인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한글 도메인 서비스는 영어를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생·노년층이 쉽고 편하게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제공하는 서비스. 중국·일본이 자체적으로 한자 및 일본어로 도메인 서비스를 하고 있을 정도로, ‘자국어 도메인’은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확장자 ‘.kr’로 끝나는 인터넷 도메인을 관리하는 한국 인터넷 정보센터는 이런 추세를 감안해 내년 1월부터 ‘.kr’ 도메인에 한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com’ 등의 확장자를 관리하고 있는 미국 네트워크솔루션 사 역시 ‘.com’ 도메인에 한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시기는 ‘kr’보다 2개월 빠른 10월 말.

그러나 인터넷 도메인에 대한 권리를 누가 갖게 되는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교통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한글 도메인 서비스가 시작되면 컴퓨터·섹스 등 보편적인 단어를 먼저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질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나 유명인의 이름을 선점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사이버 스쿼팅’ 또한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가 많다.

인터넷 도메인의 소유권자를 가리는 기본 원칙은 먼저 등록한 자가 우선권을 갖는다는 ‘선등록·선소유’ 개념. 그러나 저명 인사나 유명 기업에 대해서는 이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 지적 재산권 기구(WIPO)는 사이버 스쿼터가 선점하고 있던 ‘줄리아로버츠닷컴’을 미국 영화 배우 줄리아 로버츠에게 돌려주었고, ‘캠프야후닷컴’ 같은 야후 유사품을 야후에게 돌려주었다.

국내 법원은 아직까지 저명한 인물·유명 기업의 ‘저명성’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19일 인천지방법원이 내린 판결이 바로 그 예. (주)주연테크가 자사 상호와 동일한 ‘www.jooyontech.com’을 차지하고 있는 한 아무개씨를 상대로 도메인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영문 도메인에 비해 한글 도메인의 경우는 분쟁 사례가 더욱 늘어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 한국인터넷정보센터 산하 도메인분쟁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홍준형 교수(서울대·행정대학원)는, 기업·상표 이름에서도 분쟁 가능성이 있지만 ‘동명이인’이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인명에서는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일련 번호로 동명이인 문제 해결하자

이런 경우에 대비해 홍교수는 인터넷 도메인 등록 과정에서 분쟁 소지를 없애자고 제안한다. 이름의 경우 애초부터 일련 번호를 부여함으로써 동명이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kr’로 등록된 인터넷 도메인만 50만개가 넘는 상황인데, 등록 과정에서 얼마나 분쟁의 싹을 솎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이므로 사이버 공간에서 ‘내 이름’을 지키고 싶다면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기회가 있을 때 재빨리 인터넷 도메인을 확보해 ‘방어’하는 길이 최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n016 등 유명 브랜드를 만들어 온 ‘브랜드메이져’의 서상희 실장은, 한글 도메인 서비스 때문에 기업들의 ‘방어 비용’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한, ‘.shop’, ‘.web’ 등 새로운 도메인 확장자들이 등장할수록, 도메인 방어 비용은 그만큼 늘어나게 되리라는 것이 서실장의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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