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3총사, 공산주의 멍에 벗고 시장 경제 '씽씽'
  • 동유럽·朴在權 기자 ()
  • 승인 1998.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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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3총사’ 체코·헝가리·폴란드, 시장 경제 체제 전환 성공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는 ‘잿빛’ 도시이다. 공산주의 시절의 때를 완전히벗지 못해 초라하다. 이런 모습은 바르샤바 역에서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더라도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체코 수도 프라하나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사정이 다르다. 바로크·로마네스크 등 유럽 전통 건축 양식이 망라된 화려한 도시가 프라하라면, 다뉴브 강이 유유히 흘러 푸근함을 안겨 주는 곳이 부다페스트이다.

폴란드·체코·헝가리는 89년 이후 시장 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데 가장 성공한 동유럽 3총사다. 그 나라 수도가 풍기는 이미지는 그 나라 발전 수준과밀접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이 폴란드라면, 체코는 공산주의의 때를 말끔히 벗고 시장 경제 체제를 안착시킨 상태이다. 헝가리는 그 중간에 속한다.

먼저 폴란드를 보자. 동유럽에서 가장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는 3천9백만명으로 체코·헝가리·루마니아를 합친 것보다 많다.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3천8백 달러이고, 노동자 월급은 4백 달러 정도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얕잡아 보면 안된다. 정부가 보조해 주는 각종 사회 보장 혜택과 암시장을 감안해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산정한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 총생산은 7천 달러를 넘는다.

지난 8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동유럽 경제는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고, 폴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10억 달러 가량의 단기 자금이 빠져 나가자 환율이 뛰었다. 그렇지만 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이유는 두 가지. 우선 러시아와의 교역 비중이 작았다. 폴란드 무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한 반면, 유럽연합(EU)은 64%, 동유럽 국가는 16%나 되었다.

폴란드의 성공 비결 ‘충격 요법’

또 하나 들 수 있는 것이 외국인 투자 자금 유입이다. 러시아 사태로 말미암아 러시아 지하 자금이 유입되었고, 이 때문에 한달 만에 자본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다. 게다가 폴란드로 흘러드는 외국인 투자 자금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직접 투자 금액은 66억 달러였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50
억 달러를 넘어섰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폴란드를 거점으로 우선 동유럽 시장을 석권하고, 훗날 폴란드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 이곳을 전초 기지로 삼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폴란드가 체제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충격 요법’이다. 당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의 이름을 따서 ‘발체로비츠 충격 요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정책은, 그동안 여덟 번이나 정권이 바뀌었지만 한 번도 흔들리거나 후퇴하지 않았다.

당면 과제는 과다한 무역 적자를 줄이는 것. 올해 무역 적자가 1백39억 달러로 예상되는데, 이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폴란드의 수입 가운데 81%가 자본재이기 때문에, 수출이 늘면 수입도 늘 수밖에 없다. 폴란드 정부는 이자율을 인상해서 과잉 투자를 막고, 수출을 촉진해 적자를 줄일
계획이다.

폴란드를 봉오리를 막 틔운 꽃에 비유한다면, 체코는 ‘활짝 핀 꽃’에 가깝다. 체코 인구는 천만명, 1인당 국내 총생산은 5천6백 달러 가량이다. 하지만 EIU가 구매력을 기준으로 산정한 1인당 국내 총생산은 만 달러가 넘는다. 시민들은 대부분 교외에 별장을 가지고, 주말이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내국인들이 빠져나간 도시를 채우는 것은 외국 관광객들. 한 해 1억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30억 달러 이상을 뿌리고 간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항공기를 만들었던 체코는, 공산주의 시절에도 기계 공업만큼은 세계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빨리 시장 경제 체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체코는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체코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을 가한 것은 지난해 8월 유럽의 대홍수. 엘베 강이 범람하면서 체코와 독일 북부 지역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그 여파가 올해까지
체코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수출은 여전히 활기를 띠지만, 내수 침체로 올해 체코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프라하 무역관 김상욱 관장은 “그렇다고 체코의 잠재력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체코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 있고, 독일과 일본
자본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동유럽 3국, 21세기 초 EU 가입 노려

헝가리는 인구가 천만명이고, 1인당 국민 소득이 4천6백 달러 정도이다. 구매력에 기초한 1인당 국내 총생산은 7천9백 달러로 체코와 폴란드의 중간이다. 헝가리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고 금융 지원을 받기 시작한 때는 82년. 그로부터 16년 만에 헝가리는 국제통화기금을 졸업했다. 지난 2
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진 빚을 모두 갚고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헝가리가 빨리 안정을 되찾은 것은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대형 국영 기업은 95년에 민영화했고, 금융기관도 96년에 대부분 민영화했다. 헝가리 정부는 올해 말까지 민영화 사업을 끝낼 계획이다. 시장 경제 체제 이전만 해도 헝가리의 주력 수출품은 육류·정유였는데, 최근에는 전자 제품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동유럽 3국은 이처럼 발전 단계에 따라 조금씩 빛깔을 달리하지만, 이들이 꾸는 꿈은 똑같다. 2000년대 초에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 그래서 ‘동유럽’ 국가라는 딱지를 영원히 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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