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파괴로 쑥쑥 크는 벤처 기업들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7.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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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 人事·연봉·포상 제도 도입… 창의성·자발성·능력 개발 큰 효과
인터넷 사업자 넥스텔에서 일하는 이재준씨(27)는 사원 16명을 총괄·관리하는 사업부 과장이다. 그의 전직은 카센터 수리공. 학력은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가 총괄하는 사업부에는 포항공대나 서울대를 졸업한 인재가 수두룩하다. 이채로운 인사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넥스텔 김성현 사장(45) 생각은 다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못했으나 어느 명문대 출신 못지 않은 능력을 가진 인재가 많다. 넥스텔은 능력과 열정만 있으면 학력과 관계없이 주요 사업을 맡긴다.”

현재 김사장은 넥스텔 중요 직책 가운데 세 자리를 고졸 출신에게 맡겼다. 연봉을 두 배로 올려주겠다는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한 이재준 과장은 “회사와 사장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밤잠을 줄이며 연구해 맡은 직책에 어울리는 자격을 갖추려 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파격적인 인사 기법 덕분인지 넥스텔은 창립한 지 3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흑자를 기록했다.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자본과 조직이 취약한 벤처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어떻게 관리하여 그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따라서 성공한 벤처 기업일수록 인사나 인력 운용이 독특하다. 90년 창립한 그룹웨어 사업자 나눔기술(대표 장영홍)은 창립 당시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던 스톡옵션제(우리사주제)를 처음 실시한 업체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스톡옵션을 실시하지 않는 벤처 기업이 거의 없을 정도다. 나눔기술 주식 2천4백 주를 가진 기획관리부 우미영 과장은, 회사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서 회사가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경영의 민주화는 인사·업무 평가·주식 배분에 완벽히 반영되었다.

나눔기술이 채택한 이사 선임 제도는 독특하다. 새 이사를 선임할 때 이사회는 임명하기 6개월 전에 이사 후보를 추천한다. 그후 임직원은 이사 후보의 업무 행태와 능력을 예의 주시한다. 6개월 뒤에 열리는 주주총회에 전직원이 참가해 이사 후보에 대해 투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사 선임 여부를 결정한다. 업무 평가 방법도 특이하다. 사원들은 1년 전에 자기 업무 목표를 제출하면서 그것을 달성할 경우 바라는 대가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97년 영업 목표 5억원을 달성하면 연봉을 3천만원으로 올리고 대리로 승진시켜 달라는 식이다.
노래방서 마이크 놓지 않는 열정에 포상

이 회사에서 과장이 되려면 업무 실적도 좋아야 하지만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더 있다. 과장 후보는 직무와 관련한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제출한 논문은 이사회가 평가해 해당 사원의 진급 여부를 결정하고 게시판에 공개한다. 시스템통합사업부 서민성 과장은 ‘현단계 나눔기술의 시스템통합 사업의 문제점과 새로운 방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논문 내용이 좋아 과장 진급은 물론 포상까지 받았다. 이 논문은 나눔기술이 올해 펼칠 새로운 투자 사업에 응용된다.

통신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고구려멀티미디어통신도 종업원의 창의성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종업원 평가 제도를 가지고 있다. 매년 우수 직원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고구려멀티미디어통신 계두원 사장(31)은 “능력·업적·태도가 회사 이념에 맞으면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개발하는 사원은 기사로 뽑히고 그의 사진을 회사 안에 건다”라고 말했다.

선발 인원은 모두 3명이다. 영업 부문 최고 사원은 청기사, 기술·디자인·제안 부문은 백기사, 지원 부문은 적기사로 분류해 따로 선정한다. 선발된 기사들은 해외에 파견되고 포상금과 유급 휴가를 받는다. 이 기사들은 다음해에도 선발될 수 있으며, 선발된 횟수에 비례해 포상 내용이 커진다. 총 5회 선발되면 ‘전설의 기사’라는 명예를 얻고 종신 사원이 된다. 이와 함께 본인이 원하는 분야에서 1년간 해외 연수를 할 수 있고 포상금 3천만원도 받는다. 계두원 사장은 “가진 것은 인력밖에 없다. 조금은 유치해 보일 수 있는 보상 제도지만,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직장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고구려멀티미디어통신이 사장이 기사를 선정하는 반면, 비슷한 제도를 가진 아이네트(대표 허진호)는 사원 직접 투표로 결정한다. 아이네트는 해마다 창립 기념일에 전사원이 모여 아이네트인(I-net 人)을 선발한다. 직원 가운데 아이네트 문화와 업무 방식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 선발 대상이다. 아이네트인으로 뽑힌 직원에게는 항공권과 숙박권이 포함된 해외 여행권을 준다.

명석하고 일 처리가 깔끔한 직원이 뽑히기도 하지만 회사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우선 대상이다. 지난해 아이네트인으로 선정된 접속사업부 박종필씨가 대표 사례이다. 그가 영업 실적이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뽑힌 것은 아니다. 동료 직원인 기획관리실 이은수 대리는 “그는 일도 열심히 하지만 놀 때도 화끈하다. 발냄새가 지독하고 노래방 가면 마이크 놓을 줄을 모르지만 그의 열정이 보기 좋아 그에게 표를 던졌다”라고 말했다.

넥스텔 김성현 사장은 상식 수준의 발상으로는 벤처 기업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막가파 두령’이라고 자처하는 김사장은, 직원의 창의성을 제약하는 경영 방식과 제도는 철저히 파괴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정보통신업체인 퓨처시스템(사장 김광태)에는 사장실이나 임원실이 따로 없다. 사장실이 따로 있으면 사장과 직원과의 대화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퓨처시스템 남기득 과장은, 지휘 관리 체계인 두뇌와 일을 처리하는 팔 다리를 잇는 신경이 끊어지면 신체 곳곳에 이상이 생기듯, 임원과 사원 사이에 의사 소통이 활발하지 못하면 사원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떨어지고 기업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젊은 기업, 끊임없는 변신이 살 길

벤처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영 혁신에 앞장서는 최고 경영자가 있어야 한다. 종업원이 업무 수행에 흥이 나지 않고 불만이 많은 기업은 대부분 최고 경영자가 타성에 젖어 있거나 소심하다. 이런 회사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창업 초기 획기적인 경영 방식을 도입해 성공한 기업가도, 일단 성공 궤도에 진입하면 대기업에서 볼 수 있는 안일하고 평범한 경영 방식을 도입하려 한다. 촉망되던 많은 젊은 기업이 초창기 반짝한 뒤 곧 사라지는 것이 그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국내 주력 산업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지만 정보통신업체는 해마다 2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 자체가 신규 수요가 계속 창출되는 성장 산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경영 기법을 도입해 끊임없이 변신하는 기업 분위기가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배는 항구에 정착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정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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