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평]대북 원조의 전략적 의미
  •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 승인 1997.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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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6백만달러 상당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키로 결정한 사실을 환영해 마지 않는다. 특히 황장엽 비서의 망명 요청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혼란한 상태에서 정부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점을 더욱 평가하고 싶다.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은 단순히 북한 동포의 식량난을 도와준다는 점 이상으로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서방 언론은 우리가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주저하고 있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에 대해 국제 사회에서는 식량을 원조할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도 같은 동포인 한국이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한국 제품의 이미지도 덩달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88년 올림픽 개최, 2002년 월드컵 유치 등 많은 돈을 들여 쌓아올린 이미지가 손상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서방의 일반인들은 인도적 문제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가 북한 식량 지원에 소극적일수록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이미지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받게 되는 충격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만회하기 힘든 타격이 될 것이다.

식량 지원할수록 체제 변화 압력 커져

둘째는,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97년 공동 사설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는 국가의 분배 기능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폐쇄된 사회에서 식량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암시장이 형성되고 수급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미 북한의 암시장에서 쌀이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식량을 공급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사기 위해 다른 물자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농민층이 식량을 공급한다면 도시 거주자는 생필품을 제공하고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생필품도 부족하다. 결국 식량 배급 시스템뿐 아니라 생필품 배급 시스템에서도 누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 현상이 90년대 초반부터 증가했기 때문에 북한 사회는 이미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의 배급 시스템을 정상 가동할 수 있을 정도로 식량이 안정적으로 지원되지 않는 한, 배급 시스템의 누수 현상은 계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또 흘러나온 식량과 생필품의 양이 증가하면서 북한의 암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결국 북한의 계획경제 체제는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국제적인 식량 지원이다.

셋째는, 북한과의 연결 고리를 확장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산악 지대가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지형적 특성상 식량 자급이 불가능하다. 식량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에도 연간 백만t 가량을 외부에서 조달해 왔다. 지난 1월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식량이 2백만t 부족하다고 한다. 특히 지난 시절의 백만t 부족은 주민 배급량이 정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추산된 것인 반면, 지금의 2백만t 부족은 최저 배급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이상 부족함을 의미한다. 북한은 그동안의 부족분을 중국으로부터 주로 조달해 왔고, 이로 인해 중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식량 부족분을 국제 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쌀이라고 할 정도로 식량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북한이 국제 사회에 식량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직·간접으로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확대하면 그만큼 북한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증대되는 것이고,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할 기회도 커지는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중요성은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이 단기적 협상용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며, 전략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장기적으로 일관된 정책틀 안에서 북한 식량 지원 문제가 운영될 때, 다방면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6백만달러어치 지원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한 정부가 당연히 이 효과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더욱이 인도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지원도 감안했을 것이라는 점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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