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미주 법인 '돈세탁' 사건 진상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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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핵심, 비자금 밀반출?/
미국에 연고 있는 인사 관련설 확산
'혹시 정치자금 아닐까?' 지난 10월26일 외환은행 미국 현지 법인인 퍼시픽 유니언 은행(PUB)이 지점장 등 행원 8명을 해고한 사실이 알려지자 금융권에서 나온 첫 번째 반응은 이랬다. 증권가와 정부기관도 집단 해고라는 전례 없는 조처가 취해진 이번 사건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관계 쪽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은행이 대규모 해고를 한 것은 행원들이 '현금 및 외국과의 거래 규정'(BSA)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9·11 테러 이후 테러 자금 유입과 관련해 외국계 은행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연방 예금보험공사(FDIC)는 특히 행원들이 돈세탁 과정에 직접 관련되었다는 점을 중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 올리기 경쟁이 낳은 사건"




현지 언론은 한국에서 들어간 20만 달러(약 2억6천만원) 상당의 돈을 행원들이 자신들의 계좌에 분산 입금받는 수법으로 돈을 세탁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은행법은 만 달러 이상을 입·출금할 경우 연방 국세청에 보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은행측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20만 달러보다는 적은 금액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방 예금보험공사의 조사 결과가 12월 중순쯤 되어야 나올 예정이어서 아직 사건의 진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외환은행 국제부 권오훈 차장은 "우리도 보도된 것 이상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1974년 외환은행이 100% 출자해 설립한 뒤로 미국 11개 도시에서 영업하고 있는 퍼시픽 유니언 은행이 외환은행 법인이기는 하지만 미국법을 적용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금감원 담당자도 사건 내용을 파악 중이지만 현재로서는 외환은행을 상대로 특별한 조처를 취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다. 해고된 행원은 대부분 현지 교포로 알려졌다.


미국 현지에서는 고객 확보와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은행들의 과열 경쟁이 낳은 사건이라며 한국계 은행들의 신용 추락을 걱정하는 분위기이다. 한인 1만∼2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에 은행 지점이 3∼4개나 있을 정도여서 실적을 올리려면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현지에서는 돈세탁이 관행처럼 이루어져 왔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고 전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묘한 소문이 돌고 있다. 미국에 연고를 갖고 있는 현정권 고위 인사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퍼시픽 유니언 은행의 한 지점이 현정권 핵심 인사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소문이 한때 증권가에 나돌았던 터라 이런 소문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외화 밀반출로 곤욕을 치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의 경우처럼 돈을 나누어 입금했다는 점도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은행측은 음성적인 자금이 아니고 가족 간의 송금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유학생에게 부모가 송금한 돈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화 밀반출 사건을 수사한 경험이 있는 이 관계자는 금액이 만 달러가 넘을 경우는 100%가 재산 도피라고 단언하면서, 사건이 확대된다면 의외의 파장이 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방 예금보험공사가 구체적인 조사 결과를 넘겨줄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측의 관심사는 법을 위반한 부분이지 '돈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아니기에 전주가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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