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위장 계열사 경영"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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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한 달 째 조사, 발표만 남아…
'비자금 창구' 의혹, 여권 실세 개입설도
지난 10월 중순, 제주도 제주시에 있는 골프장 개발업체 ㅍ개발에 낯선 사람 2명이 찾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독점국 소속인 이들은 ㅍ개발이 만든 골프장 개발과 관련한 서류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들이 찾아온 것은 대우건설과 이 업체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서이다.




대우건설은 ㅍ개발이 추진하는 골프장 공사와 회원권 분양을 책임진 뒤 사후에 공사 비용을 받기로 이 업체와 협약을 맺은 상태였다. 물론 대우건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기 전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유로 ㅍ개발은 대우건설의 위장 계열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직원 3명을 둔 ㅍ개발 홍 아무개 사장은, 인허가를 받았는데 왜 공사를 하지 않는지, 어디서 차용을 했고 어떻게 썼는지를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공정위측은 이틀 동안 이 업체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워크아웃 상태인 대우건설의 위장 계열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19개 업체를 상대로 전면 조사에 들어간 것은 지난 10월8일이다. 공사 전 설비 임대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ㅅ회사, 건설업체인 ㅅ·ㅇ개발, 하수처리 운영 및 관리를 맡고 있는 ㅁ사, 온천을 운영하는 ㅌ사, 쓰레기 소각로를 운영하는 ㅇ사, 설계를 맡고 있는 ㅎ사 등이 대상이었다.


공정위는 11월8∼17일은 이들 업체를, 18∼19일은 대우건설 본사 경영혁신본부와 외주구매본부를 조사했다. 투서가 접수되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조사에는 조사 인력이 10여명 투입되어 위장 계열사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들의 주주 현황과 임원 겸임 여부, 자금 거래 상황 등을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비자금 조성 관련 '일지' 확보


대우건설·공정위·위장 계열사 의혹을 받고 있는 업체들을 두루 취재한 결과, 공정위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큰 파문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정통한 소식통은 불법 내부 거래 금액이 1조원이 넘고, 수백억원이 근거도 없이 빠져나간 사례가 발견되었으며, 5∼6개 업체가 명백한 위장 계열사로 확인되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조사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일지가 확보되었고, 충격을 받은 한 관계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부분 대우건설 출신들이 대표를 맡고 있는 이들 업체의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결과 중복으로 임원을 맡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ㅅ사 이사를 맡고 있는 인사가 ㅁ사 감사를 맡는다든지, ㅅ사 대표를 맡고 있는 인사가 ㅌ사 이사를 맡는 식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지분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우건설 퇴직자가 곧바로 회사 사장에 취임하는 등 인사권을 대우건설 쪽이 행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이들 기업이 '대우건설'을 매개로 해 하나의 '그룹'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경영관리부에서 24년간 근무했고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낸 김우일 전 대우그룹 상무는 〈월간조선〉 11월호에서 대우건설 위장 계열사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위장 계열사 수십 개를 설립한 후 여기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대우그룹이 해체되어 채권단에 넘어간 지금도 이 위장 회사들을 비자금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완곡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대우그룹 사정에 누구보다도 밝은 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대우건설이 위장 계열사들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대우그룹에서 고위 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일부러 위장 계열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부실 업체를 대우가 인수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거나, 경영에 실패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가 되어버린 업체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원래 임직원 사후 보장이라는 좋은 취지에서 만들었으나 IMF 사태 이후 비자금을 만드는 창구로 변질되었다는 것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위장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알려진다. 우선 실제 공사 금액보다 부풀려 발주해 차액을 비자금으로 빼돌리는 '오버 발주' 수법. 1백50억원이면 할 공사를 2백억원에 주어 50억원을 빼돌리는 식이다. 설계 분야에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 대우건설 이름으로 공공기관으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뒤 전량을 위장 계열사에 넘겨주고 돈을 상납받는 방법도 있다. 위장 계열사 의혹을 받고 있는 ㅁ사와 대우건설의 관계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발표, 왜 미루어지나


업체들에 대한 현장 조사가 끝난 지 20일이 넘었지만 공정위측은 아직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실무 차원에서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얘기할 만한 것이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어서 조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에 대한 공정위 발표가 늦어지자 대우건설 주변에서는 '여권 실세 개입설'이 퍼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증권가 주변에서는 현 대우건설 경영진과 그동안 여러 의혹 사건에 빠지지 않고 이름이 오르내린 여권 실세 ㄱ씨와의 유착설이 분분했었다. 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들 위장 계열사에서 조성된 비자금과 이 인사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주인이 없는 워크아웃 상태여서 상대적으로 권력의 입김이 세게 작용할 여지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발표를 미루는 것이 아니라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이 위장 계열사를 운영해 온 사실을 공정위가 밝혀내면 워크아웃 기업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 책임자는 공정거래법에 의해 허위 자료 제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다. 이미 대검 중수부도 이와 관련한 조사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오성전자 등 6개 위장 계열사를 운영한 혐의로 지난 4월 김우중 전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11월8일 예금보험공사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국내외에 숨겨둔 1천4백억원대 재산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이런 마당에 공정위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김우중씨는 또 한번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경질설이 돌기 시작한 남상국 사장도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여권 실세'에게까지 불똥이 튈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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