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내는 집에 있습니까?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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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전화방 ‘유부녀 도우미’ 탈선 르포/ 노골적으로 ‘매춘’ 제의하기도
지난 7월1일 오후 6시. 서울 수유동 ㅊ노래방. 종업원에게 ‘도우미 아줌마’ 2명을 부탁했다. 업소 주인은 1시간 노래방 비용으로 1만5천원, 도우미 한 사람과 어울리는 값으로는 시간당 2만원을 요구했다.

10여 분 뒤 각각 30대 후반과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이 나타났다. 도우미 한 사람은 함께 간 일행에게 부탁하고,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과 커피숍을 찾았다. 160cm 정도의 키에 퍼머 머리, 아이보리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주름 스커트를 입은 이 여성은 자기 이름이 김미영(가명)이라고 말했다. “쇼핑하러 나선 가정 주부 같다. 노래방 도우미들의 세계를 알고 싶다”라며 용건을 꺼냈다.

“일한 지 두 달 됐어요. 아는 언니 소개로. 저요, 화장해서 그렇지 사실 마흔하나에요. 손님들한테는 서른다섯이라고 말해요. 애들은 중학교 3학년 딸, 1학년 아들 하나.” 아내가 마이크를 들고 탬버린을 흔들며 밤마다 낯선 남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김씨의 남편도 알고 있을까.



“남편요? 몰라요…. 뭐 알아도 상관없어요. 남편이 운전하는데. 지금은 내가 더 벌어요. 부업으로 조그만 옷가게 하면서 진 빚이 있는데, 한 천만원 정도. 그것만 갚으면 이혼할 거예요. 애들은 엄마가 식당 다니는 줄 알아요. 이혼하면 내가 키울 거예요. 어떡해요. 내가 낳은 애들인데.” 김씨가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면서 겪는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이것도 직업이죠. 뽕짝은 기본이고, 신곡도 한두 곡 해야 되고. 목 쉬지 않게 관리도 잘해야 되고. 아침엔 자고, 낮에 찜찔방 가요. 손님들, 짖궂은 정도가 아녜요. 아저씨들이 더해요. 드러내놓고 막 더듬는데 그걸 막으려고 꼭 스타킹과 속옷을 껴입어요.”

경기 불황 때문에 30∼40대 직장인들이 유흥주점보다는 노래방 도우미들과 어울려 ‘2차’까지 간다는 소문에 대해 물어보았다.

“2차요? 여기가 뭐 룸살롱인가요. 아저씨들이 술 취하면 우리를 술집 여자 취급하는데, 요즘은 그러면 노래방에서 쫓겨나요. 서로 매너를 지켜야지…. 꼭 돈이 문젠가요. 느낌이 좋으면 되는 거지. 돈 받고 하면 유흥업소 여자 같고, 여자는 무드에 약하잖아요. 우리 남편도 아마 노래방 가면 도우미 부를 걸요.”
7월2일 밤 12시. 미시촌과 노래방 등 유흥업소가 몰려 있는 화양동 근처의 ㅎ노래방. 계산대 앞에 서 있던 20대 아르바이트 청년은 “도우미들을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게 손님 취향대로 부를 수 있다”라며 노골적으로 호객 행위를 했다. ㅎ노래방은 손님들의 호출을 받고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다 전화를 받고 나가는 여성들의 발길로 어수선했다. 30대 중반인 한 여성은 “못해도 하루에 4∼5시간 뛰면 8만∼10만원, 소개업소에 2만원 주고 나머지는 다 내 돈이다. 하루 수입이 6만∼8만 원은 된다”라고 말했다. 회식할 때 노래방 도우미를 자주 부른다는 회사원 ㄱ씨는 “부르스 곡이 나오면 땡기고 ‘아이스께끼’ 놀이도 한다. 가벼운 스킨십은 기본이다. 아줌마들이어서 부끄러운 것도 없더라”고 말했다.

이른바 노래방 도우미는 서울과 전국 대도시 유흥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사단법인 남성의 전화 상담소’(소장 이 옥)에는 남편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가출한 아내를 찾았더니 노래방 도우미를 하고 있더라”고 하소연하거나, 아내의 휴대폰에 저장된 낯선 전화번호에 속을 태우는 남성들의 전화가 한 달에 수십 통씩 걸려온다. 노래방 도우미들은 이혼 또는 별거 상태인 여성이 많다. 하지만 일탈을 꿈꾸는 평범한 가정 주부들도 전화 대화방을 통해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난 7월1일 오후 2시. 서울 마포의 한 인터넷 전화 대화방. 업소 주인이 안내하는 대로 한 방으로 들어가자 텔레비전과 개인용 컴퓨터가 놓인 작은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텔레비전에서는 케이블 방송이 내보내는 자극적인 성인 영화 장면이 흘러나왔다. 안내문에 붙어 있는 대로 인사말을 녹음하자 5분도 지나지 않아 낯선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첫 번째 여성은 자신을 이주희(가명)라는 서른 여섯 살 직장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30대 중반이구요, 남편은 유통업 하는데 밤에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요. 저도 충무로 광고 계통에서 일한 지 7년째고, 오늘은 쉬는 날이에요…. 전화(데이트)는 가끔 해요. 남편이 늦을 때 막간을 이용하거나 (웃음) 오늘처럼 쉬는 때. 애들은 초등학교 3학년하고 1학년.” 이주희씨는 2주일 전에 전화 대화방에서 만난 30대 초반 남성과 ‘찐한’ 데이트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날 비가 왔는데, 왠지 마음이 울적하더라고요. 전화를 했더니 마침 드라이브를 하자는 거예요. 경기도 장흥으로 드라이브 갔는데 느낌이 괜찮았어요. 밥 먹고 카페에서 한잔 하며 스킨십도 하고…. 남편한테는 물론 미안하죠. 알면 (나를) 가만두지 않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남편도 아마 한두 번 바람을 피웠을 거예요. 밖에서 모르게 즐기고, 집에 와서는 서로 가정에 충실하면 되죠…. 결혼 생활 11년째인데, 연애할 땐 서로 죽고 못살았어요. 결혼한 지 7년 지나니까 남편에게 별 느낌이 없어지더라고요. 우린 섹스리스 부부에요.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가끔씩 낯선 사람 만나 데이트하는 게 지금 내 삶의 활력소예요.”

두 번째 전화는 ‘조건 만남’을 원한다는 30대 중반 여성이었다.
딸 하나를 키우고 있다는 이 여성은 1시간 뒤에 서울 광화문 근처 ㅅ은행 앞에서 보자며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프로’였다.

“사실 지금까지 두 번 만났는데, 만난 분들이 용돈을 주더라구요, 저는 한번 만나 모텔 가고 헤어지는 그런 여자는 아니예요, 먼저 만나 데이트하고, 서로 술도 한잔 하고, 그러다가 마음이 맞으면 모텔도 가고. 용돈요? 10만원 정도는 주시던데….” 이 날 전화 대화방에 걸려온 전화 4통은 모두 기혼 여성이었고, 그 중 2명이 용돈만 주면 데이트를 하겠다는 ‘조건 만남’이었다. 전화 대화방이 30∼40대 주부들의 매춘 창구로 이용되는 셈이다.

전화 대화방 매매춘은 서울 인근 도시에까지 파급되어 있었다. 지난 7월3일,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 ㄱ시 유흥가. 노래방과 단란주점, 미시촌과 식당가가 즐비한 유흥가에는 전화방 세 곳이 성업 중이었다. 전화방 소파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방 업주와 미리 연결이 된 듯했다. 자신을 30대 후반이라고 밝힌 이 여성은 “데이트하면 10만원이구요. 6시까지만 시간 돼요. 남편 오기 전에 밥 해 놔야죠.”

두 번째 걸어온 여성도 노골적으로 조건 만남을 원했다. 실제 가정 주부인지 기혼 여성을 빙자한 전문 매춘부인지 면담 취재를 시도하기로 했다. 전화방 근처 지하철 출구 앞에서 만난 32세 박진숙씨(가명)는 연분홍 투피스를 입은 평범한 외모였다.


“두 번 만나봤어요. 남자들이 신사적이고 좋더라구요, 남편은 몰라요, 알면 살인 나죠. 데이트하는 이유요? 서로 즐기고, 돈도 벌고 둘다죠.” 취재 도중 박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태권도장에 다닌다는 다섯살배기 딸이 엄마를 찾는 전화였다. “엄마 시장 왔거든. 곧 갈께. 조금만 기다려.” 불황 시대, 노래방과 전화 대화방은 기혼 여성들을 유혹하는 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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