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통령 위해 가지만 쳤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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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앤문 수사 시기·내용·결과에 의문 제기돼…“감세 청탁 수사도 부실”
대통령 측근을 향한 검찰의 칼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검찰은 거침없이 대통령을 공격하기도 했다. 썬앤문 문병욱 회장이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여택수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에게 돈을 건넬 때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었다며 측근 비리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을 조사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아슬아슬한 내용이었다.

검찰의 칼날이 대통령을 직접 겨누자 청와대는 펄쩍 뛰었다. 이병완 홍보수석은 “프로크루스테스(그리스 신화에서, 침대 크기에 맞추어서 사람의 사지를 자르거나 늘려 죽이는 인물)의 침대에 누워 사지를 맡기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라며 검찰의 수사에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 수사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던 문재인 민정수석도 “검찰이 여론을 의식해 억지로 형평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수사한 의혹이 있다. 사법적 판단을 거쳐야 할 피의 사실을 검찰이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발표하는 잘못이 되풀이된 부분은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억지 형평을 맞추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만을 노린 무리한 수사’라는 주장에 검찰은 즉각 반박했다. 검찰뿐만이 아니라 썬앤문에서도 반박이 나왔다. 썬앤문의 한 핵심 관계자는 “검찰이 특검을 대비해 노무현 대통령과 문씨를 위한 가지치기를 했을 뿐 정작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특검이 없었다면 검찰은 이 문제를 덮고 넘어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지부진하던 썬앤문 사건 수사가 특검법안 재의결에 맞추어 속도를 냈고, 언론에 제기된 최소한의 내용에 대해서만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주목했다.

실제로 검찰 수사 과정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썬앤문 로비의 꼬리가 잡힌 것은 2003년 3월. 농협 사기 대출 사건이 터지면서였다. 김성래 전 썬앤문 부회장이 검찰에서 국세청에 감세 청탁을 하고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대선 자금을 건넸다고 모두 털어놓은 때는 5월20일이다. 하지만 수사는 별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가 수사가 재개된 것은 2003년 12월3일 측근 비리 특검법이 국회에서 재의결되고 나서부터였다. 12월3일 검찰은 썬앤문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고, 다음날 문병욱씨를 구속했다. 김성래씨는 기자에게 “대통령 후배가 고소한 사건은 하루 만에 수사해 주고 내가 고소한 것은 증거가 명백해도 몇 달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검과 법무부에 수 차례 진정했으나 검찰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입을 닫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썬앤문의 다른 관계자는 검찰이 문병욱씨에게 지극히 호의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서울지검 조사부와 대검 수사진은 문씨에게 ‘회장님’이라는 존칭을 깍듯이 썼고, 문씨 측근들은 수사 상황에 대해 수사진이 문씨와 상의하고 있어 걱정할 것 없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라고 말했다. 그는 “식사 시간에는 호텔 요리사가 버너 등 조리기구를 가져와 요리를 해주는 등 문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특급 대우를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 수사 관계자는 “수사할 때는 온갖 말이 나돌기 마련이다. 휴일에 한해 청사 주변 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해 먹기도 한다. 햄버거나 피자를 시켜 먹었을 뿐 호텔 조리사가 와서 음식을 만들어 줬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가 ‘특검을 대비한 가지치기’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의혹들을 전혀 파헤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썬앤문 관련 의혹 가운데에서도 가장 뜨거운 부분은 김성래 탄원서에 등장한 ‘95억원 노후보 지원설’이다. 대검 수사 관계자는 “이 정도 회사에서 95억원이 나가면 회사는 당장 망한다”라며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김성래씨조차 “95억원 모두가 노캠프로 건너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김씨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노무현 후보와 정치권에 전해졌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고 있다. 김씨의 한 측근은 “검찰 조사 결과보다 훨씬 자주 노대통령과 문씨가 만났고, 그때마다 돈도 건네졌다. 문씨가 소심하고 치밀한 성격이어서 반드시 당사자에게 돈을 전달했다. 문씨가 큰돈을 줄 때마다 그 자리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 노대통령과 문씨가 만난 것은 모두 세 차례. 노후보와 문씨는 2002년 11월9일 서울 강남에 있는 리츠칼튼호텔 일식당에서 아침을 함께 먹었다. 이 자리에는 문씨의 막역한 친구이자 대통령의 후배인 국민은행 지점장 김 아무개씨와 이광재씨가 참석했다. 그 날 이광재씨는 문씨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 당시 노후보는 단일화 협상을 진행하며 부산·경남 지역 표밭을 다지던 시기였다.

한 달 뒤인 12월7일. 문씨는 김해관광호텔에서 아침 식사 중인 노후보에게 인사를 하고 3천만원이 든 쇼핑백을 옆에 있던 수행비서 여택수씨에게 건넸다. 이때 노후보는 ‘초 단위 일정’을 소화하던 상황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 문씨를 만난 것이다. 노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에도 문씨를 청와대로 불러 식사했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둘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후견인 관계를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대선에서 승리한 뒤인 2003년 1월4일 노대통령은 문씨를 명륜동 집으로 불러 점심을 먹고 4시간을 함께 보냈다. 대선 당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문씨의 한 측근은 “대통령 선거일 저녁 문씨에게 전화했더니 문씨가 노후보·안희정 씨 등과 함께 호텔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고 해서 축하한다고 전했다. 문씨는 대선 때 캠프에 수시로 들러 노후보와 측근들을 챙겼다. 대선 기간에 문씨가 노후보와 만난 것은 내가 아는 것만 서너 차례는 된다”라고 말했다. 대선 승리 후 공직자와 사업가는 물론 대통령 측근들까지도 문씨와 만나기 위해 줄을 댔다고 한다. 문씨는 이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 이 또한 김진흥 특검의 숙제로 남겨져 있다.

국세청 감세 청탁 수사 역시 부실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손영래 전 국세청장과 박종일 세무사를 구속하기는 했지만 사건의 본질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의혹의 핵심은 당시 노무현 후보가 손영래 국세청장에게 전화로 부탁한 사실이 있는가이다. 김성래씨는 검찰에서 “문병욱 회장이 안희정씨에게 ‘노대통령에게 감세 청탁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박종이 경감으로부터 ‘노후보가 국세청장에게 전화한 사실을 손청장에게서 확인했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손영래 전 청장은 아직 입을 다물고 있다. 박종일 세무사와 김성래씨가 사무실에 한 번 찾아온 것이 전부이며, 감세를 청탁받은 적도 지시한 사실도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감세 담당자였던 홍성근 감사관이 구속되었을 때 손청장은 ‘윗선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이 따랐다’고 내비친 적이 있다. 국세청장을 간단하게 움직일 만한 거물의 힘이 작용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썬앤문 특별세무조사 보고서에 추징세액 1백71억원이라고 적힌 숫자 밑에 한글로 ‘노’라고 표기된 것도 의혹덩어리다. 구속된 보고서 작성자 홍선근씨는 이에 대해 영어로 ‘NO’라는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국민은 믿지 않는 눈치다. 한 수사 관계자는 “대통령 후보가 기업을 위해 직접 감세 청탁 전화를 했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특검에서 감세 청탁에 대한 수사가 더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공은 특검으로 넘어갔다. 김진흥 특검팀은 지난 1월5일 현판식을 한 뒤, 6일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특검 정국에서도 썬앤문은 밤낮으로 노대통령을 물고늘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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