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형사 23부, 일복 터졌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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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방청석은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많다. 원고와 피고가 법정 밖 공방을 벌이기 일쑤인 민사 재판정에 비해 형사 재판정은 더 썰렁하다. 하지만 서울지법 309호 형사 법정은 예외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309호에서는 ‘불법 대선 자금 잔혹사’가 상영된다. 100석 규모의 방청석이 부족할 정도로 꽉 채워질 때가 많다. 주연급이 화려해 방청석은 대부분 기자들 차지다.

차떼기 주역 서정우 변호사,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 이광재·안희정 씨,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 최도술씨 등이 매주 이곳에서 재판을 받는다. 이들은 다 한 재판부에 배당되었다. 권력형 부패 전담 재판부로 지정된 서울지법 형사 합의23부(김병운 부장판사)다.

지난해 11월1일 대법원은 전국 9개 법원에 부패 전담 재판부를 신설했다. 양형의 통일성과 신속한 재판을 통한 엄격한 법 적용을 위해 재판부를 특화한 것이다. 서울지법에는 기존 선거 사범을 재판하던 형사23부가 부패 전담 재판부로 지정되었다. 형사23부는 부패 전담 재판부로 지정되자마자 일복이 터졌다. 11월3일부터 대검 중수부가 대선 자금 전면 수사로 확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는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까지 속도를 냈다. 관련자들이 잇달아 기소되면서 형사23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대통령의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썬앤문 문병욱 회장과 김성래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도 형사23부가 맡고 있다.
현재 형사 23부가 진행 중인 공판만도 80 건이 넘는다. 불법 대선 자금 수사나 측근 비리 수사 외에도 일반 부패 사범 재판까지 형사23부 몫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개가를 올린 군납 비리 사건과 서울지검 특수1부가 밝혀낸 한국 IBM 납품 비리 사건 재판도 부패 전담 재판부가 맡고 있다. 형사23부의 쉼 없는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김진흥 특검팀이 성과를 내게 되면 그 역시 형사23부에 배당된다.

형사23부 주임 판사는 김병운 부장판사(사법고시 22회). 형사 합의부 부장판사 가운데 가장 선임이다. 권력형 부패 사건의 비중을 감안해서 선임 판사에게 맡긴 것이다. 배석 판사는 박종국(사법고시 39회)·이주영(사법고시 39회) 판사. 변호사들 사이에 김판사는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법정에서 변론을 불성실하게 진행하는 변호사에게 따끔한 충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건이 몰리면서 23부 판사들의 퇴근 시간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하나같이 대형 사건이어서 사건 기록만 보기에도 벅찰 지경이다. 게다가 부패 재판은 신속 처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접수 2주 이내에 1차 공판을 시작하고, 이후 7일 이내에 2차 공판 기일을 정한다. 물량전에 속도전까지 더해진 셈이다.

오는 2월 법원 인사를 앞두고 형사23부는 판사들의 기피처가 되다시피 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형사 합의부가 원래 일이 많아 3D 부서로 통하는데, 그 중에 23부는 더 심하다”라고 말했다.

형사23부 김병운 부장판사는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런 김판사도 형사23부가 국민의 이목을 끄는 사건이 많아 부담스럽다고 했다.

부패 사범을 엄단하기 위해 법원이 마련한 고육책인 부패 전담 재판부. 특히 대형 부패 사건을 도맡은 서울지법 형사23부가 한가해질 때 ‘클린 코리아’는 가까워질 것이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백33개국 가운데 50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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