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상고 ‘권불일년’의 비애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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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술씨 등 ‘대선 공신’ 구속…주요 동문 수사 대상에 올라 ‘초상집’
김진흥 특검팀이 청와대 공식 계좌를 압수 수색했다. 청와대 계좌가 압수수색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믿었던 고교 1년 후배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청와대 공식 계좌를 통해 불법 자금을 관리한 것이 화근이었다. 청와대 계좌까지 들여다본 특검은 본격적인 소환 조사에 들어갔다. 특검에 불려가는 소환자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백양인’들이다.

부산상고 동문들은 자기들을 백양인이라고 부른다. 백양은 부산상고 교목이다. 부산상고 53회 노무현 동문이 대통령에 당선하자 백양인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권불일년’, 최도술 동문을 필두로 백양인들이 측근 비리에 연루되면서 울상이 되었다. 백양인의 추락은 최도술씨 구속에서 시작되었다. 동문들은 최씨 개인 문제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 구속은 추락하는 부산상고의 날개를 없앤 격이었다.

문병욱 회장이 구속되면서 백양인들이 잇달아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내렸다. 동창회 얼굴 신상우 총동창회장이 곧바로 검찰에 소환되었다. 신회장은 문병욱 회장에게서 2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신상우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수수 사실을 깨끗이 시인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신회장은 측근에게 “57회 동문들이 만들어준 돈으로 알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회장은 1천만원을 동문회비로 냈다고 해명했다. 신회장의 한 측근은 “문회장과 신회장은 인연이 있다. 1995년 문병욱씨가 미성년자를 고용해 불법으로 룸살롱 영업을 하다 구속되었을 때 신회장이 힘을 써주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신상우 회장은 민자당 소속 여권 중진 의원이었다.

“김정민씨 등 금융계 동문들, 대선 때 맹활약”

신회장은 현재 11대 동창회장이다. 2002년 4월부터 동창회를 이끌고 있다. 그가 11대 동창회장에 오른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10대 동창회장이 45회(박안식)였는데, 거꾸로 43회인 신회장이 당선된 것이다. 노무현 후원회장을 맡은 그를 동창회장에 앉힌 것 자체가 백양인들의 꿈을 드러낸 것이었다.

지난 대선 때 부산상고 동창회는 노무현 후원회를 꾸렸다. 동창회 내 후원회 사무국장은 홍 아무개씨(61회)가 맡았다. 그 역시 특검 소환 대상자로 집을 압수 수색당했다. 부산상고 야구부 출신인 그는 1994년 자치경영연구소 시절부터 노대통령을 보좌했고 장수천 사업에도 개입했다. ‘우광재 좌희정’과 함께 그림자 보좌를 했다. 동창회장과 후원회 살림을 맡은 사람이 모두 검찰과 특검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부산상고 동창회는 초상집이 되다시피 했다.

재경동문회 역시 바짝 엎드린 형국이다. 측근 비리가 불거지자 송년회와 신년회를 모두 접었다. 재경 동문 중 특검이나 정치권이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국민은행 김정민 팀장이다. 김씨는 썬앤문 문병욱 회장과 동기다(57회). 이광재씨와 문병욱 회장·김성래 부회장을 연결한 사람이 김정민씨다. 김씨는 김성래씨가 이광재씨에게 5백만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자리와, 문병욱씨가 여택수 보좌관에게 3천만원을 전달한 자리에 동석한 인물이다.일부 언론이 김정민씨를 대선 때 수십 억원을 동원한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보도하자, 김씨는 법정 소송을 냈다. 김씨는 해당 기자 월급 가압류 신청을 할 만큼 강하게 반발했다. 그와 동기인 한 57회 동문은 “특검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큰 돈을 모을 능력은 못된다. 노무현이 좋아서 개인 차원에서 발로 뛰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정민씨는 국민참여운동본부(국참) 운영위원으로 활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참은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 운동을 벌인 노무현 당선의 일등 공신이다. 국참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부산상고 출신 인사는 “2002년 9월 국참이 발족할 때부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정민은 주로 퇴근 후에 국참에 들렸고 주말에 전국을 누비며 부산상고 동문을 만났다”라고 말했다.

당시 국참에는 김정민 팀장 외에도 부산상고 출신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정동영·추미애 본부장 바로 아래 부본부장을 재경동창회 이양한 회장(48회)이 맡았다. 이씨는 원래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 의원이었다. 그는 의원 직을 그만두고 후배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씨는 “국참에 재경 동문 80여 명이 활동했다. 주로 53회에서 58회까지 금융계 동문들이 적극 나섰다”라고 말했다. 하루 만에 오발탄으로 판명된 ‘저격수’ 홍준표 의원의 1천3백억원설이 그럴듯하게 퍼진 배경에는, 금융계 백양인들의 활약도 한 가지 이유로 작용했다.

국참의 부산상고 대부로 활약한 이양한씨는 53회부터 58회까지 금융계 동문들이 노대통령 당선을 위해 결사대처럼 행동한 이유를 개인적인 여건에서 찾았다. 이들은 대부분 고졸 출신으로 금융계에서 오를 만큼 올랐고, 이제는 물러나야 하는 ‘오륙도’에 도달해, 노무현 당선을 자신의 구명줄로 삼았다는 것이다. 56회 한 동문은 “김정민도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았다면 올해 승진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락하는 백양인들과 달리 구명줄을 잡은 백양인도 있다. 노대통령의 동기(53회)인 ㅈ은행 이 아무개씨는 중역으로 승진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국참에서 살다시피 했다. 출퇴근을 아예 국참으로 했다는 것이 국참 관계자의 증언이다. 그는 주로 인터넷 홍보를 담당했다고 한다. 동문들 사이에 노무현 당선에 그가 ‘올인’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지난해 3월 그를 비롯한 53회 동기생들이 청와대로 초청되어 부부 동반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은행에 다니는 한 동문은 “은행에서 알아서 승진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굴러들어온 연줄을 은행에서 마다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배출한 동창회에서 측근 비리 본산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지도 모르는 부산상고 동창회. 사시나무라고도 불리는 교목을 본 따 백양인이라 불리는 그들 가운데 일부는 사시나무 떨 듯 특검 소환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백양인 대부분에게 내년은 희망의 해이다. 모교가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바뀌는 숙원이 해결되고 학교 이름도 달라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부산상고를 따라 비리도 함께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 백양인들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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