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돕기 동포애 '활활'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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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차원의 식량 보내기 운동 활발
인간이 굶주린 상태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를 집단 시험하는 듯한 한쪽과, 동포가 굶어 죽는 것을 얼마나 오래 팔장 끼고 지켜볼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듯한 다른 한쪽의 비극적 대결 구도가 깨지기 시작했다. 극심한 식량난 속에 쓰러져가는 북한 동포들을 구하자는 민간 차원의 운동이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의 식량난과 관련해 이제 남은 뉴스는 얼마가 아사했느냐는 숫자뿐인 것처럼 보인다. 최근 미국 국무부는 앞으로 4개월 동안 북한 주민 10만명이 집단 아사할 것으로 분석했다. 유엔과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들도 오는 6월부터 9월 사이에 북한에서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지난 4월4일부터 3일 동안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토니 홀 미국 하원의원 같은 이는, 이대로 방치하면 북한에서 추수기까지 6백만~8백만 명이 아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임에도 우리는 그동안 이들이 예측하는 각기 다른 아사자 숫자 중 어느 것이 맞을지를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막 터지기 시작한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은 뒤늦은 감은 있으나 동포로서 저지를 뻔한 죄악을 간신히 면할 기회로 보인다.

정부의 방침 변화도 활성화에 한몫

그동안 북한의 식량난 현장을 둘러보고 그 실상을 외부 세계에 전달해온 유엔이나 미국 민간 지원기구 소속 관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을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해 왔다. 제 동포 혈육이 굶어 죽어 가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우리로서는 북한이 잠수함 침투 사건과 대만 핵 폐기물 반입을 기도함으로써 번번이 동포애의 싹을 잘라버렸다는 이유 있는 항변도 가능했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손가락질은 한국 민간 사회의 양심을 건드리는 측면이 컸다. 선진국 진입을 자부하는 한국 민간 사회가 자기네 동포의 굶주림 문제에 관해서만은 전제 국가 수준을 못벗어났다는 질타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최근 광범위하게 번지기 시작한 북한 동포 돕기운동은 그같은 국제적 비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도 담고 있다. 대만 핵 폐기물 북한 반입 저지에 앞장섰던 환경단체들이 식량 지원에 앞장서 나선 것도 그런 사태 인식 때문이다. 북한의 핵 폐기물 반입 의도가 식량 조달 자금 마련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만큼, 여기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로서는 다른 형태의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이다.

물론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 활성화에는 정부의 방침 변화도 한몫을 했다. 정부는 지난 4월4일 그동안 불허해 오던 민간 차원의 대북 쌀 지원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정부 발표에 대해 북한측도 4자 회담 설명회에 참석한 대표를 통해 사의를 표함으로써 동포애가 확산될 전망이 한층 밝아졌다.

이에 따라 불붙기 시작한 민간 차원의 북한 동포 돕기운동은 각계 각층으로 널리 번지고 있다(오른쪽 표 참조). 그 중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되는 운동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대표 서영훈)를 중심으로 6개 종교와 20여 시민·사회 단체가 공동으로 벌이는 ‘북한 동포 돕기 옥수수 보내기 범국민 캠페인’이다. 이 단체는 지난 3월 말부터 4월2일까지 옥수수 만t 보내기 운동을 벌여 17억원을 모금해 적십자사로 보낸 바있다. 이어 4월9일부터 2개월간 2차 캠페인에 들어갔는데, 모금 목표는 옥수수 10만t(약 1백70억원)이다. 현재 하루 평균 4천만원이 모금될 정도로 국민의 참여 열기가 높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재야·노동·여성·문화 단체들도 활발히 북한 동포 돕기 모금을 벌이고 있다. 전국연합 등 40여 재야단체로 구성된 민족회의는 4월10일 ‘겨레 사랑 북녘 동포 돕기 범국민운동’ 선포식을 갖고 5월 말까지 20억원 모금을 목표로 가두 캠페인에 들어갔다. 또 민주노총은 산하 45만 조합원을 상대로 10억원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전국 30여 회원단체들의 긴급 결의를 통해 ‘북한 여성과 밥 나누기, 사랑 나누기 운동’에 들어갔다.
금세기 최대 민족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모금 방식 외에 북한 동포들에게 직접 일거리를 주자는 운동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 결성된 북한주민일손주기운동추진본부(대표 박광식)는 그동안 청진시 주민 5만여 명이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컵받침 40만개를 들여와 이를 북한 주민 식량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

이 단체는 국민들로부터 헌 신문, 헌 책 등 폐지류를 모아 북한에 보내 제품을 만들도록 하고, 들여온 컵받침을 국내에 배포해 식량 지원 비용을 마련해 보낸다. 이 본부는 이런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해 청진 이외 지역의 북한 주민들에게 계속 일거리와 식량을 공급할 계획이다.

북한 동포 돕기운동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민간 단체들은 공통된 명분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운동을 1회성 지원 활동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고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금세기 최대 민족 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이 운동을 성공시키지 못하고서는 세계 양심 앞에 머리를 들 수 없고, 훗날 후손들 앞에 떳떳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국민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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