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권 침해 소송 첫 승소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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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권 침해 소송 첫 판결 “9억원 배상하라”… 인천 산곡2동 아파트 주민, 시공회사에 승소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환경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했다. 이 조항은 또 '국가는 주택 개발 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행정 당국의 의무를 적시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판결한 일조권 침해 사건은 그동안 행정 당국이 쾌적한 생활 환경을 보장하는 데 얼마나 둔감했는지를 보여준다.

인천시 산곡2동에 자리잡은 경남아파트 단지. 90년 12월께 이 아파트 1단지 106·107 동에 입주한 주민들은 뜻밖에 응달이 져 당황했다. 아파트는 정남향이지만 베란다로부터 18m밖에 떨어지지 않은 ‘코 앞’에 15층짜리 고층 아파트 두 동이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아파트는 2단지 201·202 동이었는데, 이 건물 때문에 106·107 동의 10층 아래로는 한낮에도 햇볕이 들어오지 않았다. 주민들이 조사해 보니 시공 회사인 경남기업이 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났다. 건축법상 두 단지 간의 거리를 2.7m 가량 더 떨어뜨리든지, 아니면 201·202 동의 맨위 14·15 층을 짓지 말았어야 했다.

주민들은 분노했고 배상을 요구하며 기업측과 협상했으나 매번 결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남이 같은 해 7월 201·202 동 입주를 강행하려 해 106·107 동 주민들이 구청에 준공 검사를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 1단지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총 3백 세대 가운데 2백69세대 공동 명의로 91년 10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 일조권·조망권 및 사생활 등이 침해되었다며 54억원짜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처음에 주민들은 경남기업과 이들의 건축법 위반 사실을 묵인한 인천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소송이 길고 힘들어지자 인천시는 고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94년 2월의 1심 선고 및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올해 3월의 2심 선고에서 주민들은 모두 이겼다. 양측 모두 대법원에 상고를 포기해 재판은 종결되었다. 서울고법은 최종적으로 일조권을 침해 당한 1백54세대에 총 9억1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피고측에 명했다.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앞으로 일조권을 보장하는 데 몇 가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첫째, 일조권 침해의 구체적 기준을 정했다. 경인 지역에서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의 경우, 동지일을 기준으로 9시부터 15시까지 6시간 동안 일조 시간이 연속하여 2시간 이상 확보되어야 한다. 또는 동지일을 기준으로 8시부터 16시까지 8시간 동안 일조 시간이 통틀어 4시간 이상이어야 한다. 이 기준은 주로 일본의 건축기준법을 참고한 것이다. 이번 판결을 내린 서울고법 민사1부 김동건 부장판사는 “일본 건물들이 한국보다 더 고밀화·고층화해 있는데 그 정도이니까 우리 실정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라고 말했다.

법원이 기준을 정함에 따라 일조 시간이 이 기준에 못미치는 경인 지역의 공동 주택들은 앞으로 일조권 침해를 보상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송에서 원고측 변론을 맡았던 오세훈 변호사는, 이 기준이 점증하는 일조권 침해 소송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며 재판부가 설정한 기준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 감정원, 빼앗긴 햇볕값 산정

원래 일조권 침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93년 개정된 건축법시행령 제86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건축 조례로 정했어야 옳다. 그런데 서울특별시나 인천광역시는 지금까지 기준을 정하지 않은 채 방치해 왔다. 이는 건설업자의 로비 때문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대목이다.

이번 판례의 두 번째 의의는, 위법 사실이 없는 건축물에 대해서도 일조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재판부는 ‘건축물이 건축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수인한도(상자 기사 참조)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뿐이다. 법령에 위배되지 아니한 부분도 그로 인해 피해 원고들이 소유한 각 세대에 일조권 등의 침해를 주었다면 함께 고려하여 판단되어야 한다’라고 판시한 것이다.

이같은 판결은 중요한 변화를 예고한다. 오변호사는 “지금까지는 일조권 침해가 발생해 구청에 민원을 제기해도 구청이 합법적인 건물이라고 회신하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위법 사실이 없어도 소송이 가능해졌다. 건설업자들은 앞으로 이 점을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만한 의의는 일조권 침해로 말미암아 발생한 재산 손해를 한국감정원으로부터 감정을 받아 구체적 금액으로 환산한 사실이다. 환경 문제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 받으려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손해를 입증하는 것이어서, 피해자는 소송조차 걸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다. 이를테면 공장의 불빛으로 농작물이 해를 입었을 경우, 그 인과 관계를 입증하고 그에 따른 해액을 환산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빼앗긴 일조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는 데 성공한 이번 감정 결과는 의미가 깊다.

한편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일조권 침해로 인한 아파트 값 하락분인 직접 손해만 인정했을 뿐, 그같은 사실로 인해 아파트 소문이 나빠져 발생하는 하락분인 간접 손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민들의 불만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 하다. 주민 대표 여성석씨(39)는 “햇볕이 드는 집이나 안드는 집이나 같은 아파트 건물이다. 집값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는데 간접 손해가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재판부의 생각은 다르다. 김동건 부장판사는 “우선 피해자가 주장하는 간접 손해란 주관적이고 가변적이어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또 원고가 입었다는 손해를 다 인정하면 피고에게 억울한 점이 생길 수도 있다. 법원은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을 모두 고려해 ‘이해 조정’해야 할 임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땅값이 폭등하면서 아파트나 맨션, 다세대나 다가구 주택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환경권의 하나인 일조권을 둘러싼 분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기준을 정해야 할 행정 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었음이 이번 경남아파트 사건으로 드러났다. 언제까지 행정 당국이 해야 할 일을 법원이 떠맡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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