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렁술렁…조마조마, 공무원 사회가 흔들린다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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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태풍 전야 공무원 사회, ‘서바이벌 게임’ 흉흉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5층에는 공보처 공무원들이 내다버린 백 개 가까운 마대가 복도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쓰레기장 같은 15층 복도의 상황은 정부 조직이 개편되어 공중 분해된 공보처의 운명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였다. 공보처 공무원에게서는 극도의 불안감과 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전체 직원 5백78명 가운데 종합홍보실과 여론국 1백10명은 국무총리실로 가며, 폐지된 광고진흥국 직원을 뺀 나머지 4백50여 명은 문화관광부로 옮겨 가지만, 공보처 공무원들에게 배정된 자리는 총리실 21개와 문화관광부 31개밖에 없다. 5백여 명이 공중에 떠버린다. 게다가 두 군데 부처로 업무가 이관되었다고 해서 이 일을 하던 공무원들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업무가 가는 것과 사람이 가는 것은 별개 문제다. 누구를 선택할지는 순전히 총리 비서실장과 문화관광부장관의 마음이다.

분위기가 험악하기는 정무1장관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부처의 공무원 47명 가운데 총리 비서실로 갈 수 있는 사람은 13명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 이루어질 인사에서 보직을 얻지 못한 공보처나 정무1장관실 공무원이 민간 기업처럼 그대로 정리 해고되는 것은 아니다. 각각 총리실·문화관광부·행정자치부의 별도 정원으로 분류되어 1급과 별정직은 8월 말, 2급 이하 공무원은 99년 3월 말까지는 집에 있더라도 공무원 신분이 유지되어 봉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임명권자가 불러 주지 않으면 자동 면직될 수밖에 없다.

‘세 가지 퇴근 유형’ 뼈있는 농담 나돌아

2월 말 관가의 표정은 뒤숭숭 그 자체였다. 정부 조직 개편과 직제 조정에 따라 사상 최대의 인사 이동이 임박한 데다가, 사상 처음으로 공무원 사회에도 정리 해고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후 50년 동안 서슬 퍼런 국보위에서 정치적으로 공무원을 대량 숙청한 일을 빼면 공무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이들의 위기감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이 불안한 상황은 야당이 총리 인준을 거부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1주일여 더 계속되었다.

“그 쪽은 어때?” “아직은 모르지.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고. 인사할 사람도 없잖아. 이럴 때는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지.” 세종로 청사나 과천 청사에서는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 이런 류의 정보를 교환하는 공무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조직 개편과 직제 조정 세부 계획을 짜고 있는 총무처 조직국 공무원들은 다른 부처 공무원들의 전화 공세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공무원 사이에서는 세 가지 퇴근 유형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돌아다녔다. ‘내가 퇴근한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형과 ‘나는 퇴근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 집에 다녀올 뿐이다’라는 맥아더형, ‘나, 떨고 있냐?’는 박태수형(드라마 <모래 시계>의 주인공)이 그것이다.

공무원들은 2월 초까지만 해도 ‘설마 자르겠느냐’며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2월 중순 이후 ‘정말 잘릴 수 있다’는 분위기로 확 변했다.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정개위)가 각 부처 직제안에 ‘직제와 정원의 개폐 및 예산 감소 등에 의해 폐직·과원된 1급 이상과 별정직 공무원은 향후 6개월, 2급 이하 공무원은 1년까지만 초과 현원으로 본다’는 경과 규정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보직을 얻지 못하는 공무원은 자동 면직되도록 만든 것이다.

올해 계획된 인력 감축 규모는 7천7백48명(중앙 행정기관 전체 인원인 16만1천8백55명의 4.8%)이다. 정년 1년 단축, 정년 연장 불허, 자연 감소와 신규 인력 채용 자제, 명예 퇴직 등이 예정대로 추진되어도 2천2백여 명은 잉여 인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인력이 1년 후 고스란히 정리 해고될지는 의문이지만, 곧 있을 인사에서 ‘초과 현원’이 될 것은 틀림없다.

정리 해고 시대를 맞는 공무원들의 최대 관심은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우선 원론적 의문을 제기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 무슨 근거로 솎아낼 공무원들을 정하느냐는 것이다. 정개위는 △임용 형태 △근무 성적 △직무 수행 능력 △징계 여부라는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으나, 실제 인력 감축 과정에서 적잖은 파열음이 일 공산이 크다. 내무부의 한 과장은 근무평정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비리 연루 혐의가 있거나 사생활이 복잡한 직원이 우선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았다. 각 부처 고위직 공무원들은 감축 대상자 선정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중앙 부처의 한 1급 공무원은, 무리 없는 인력 감축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며 걱정했다.

이미 국·실간 살아 남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부처 내부의 민심도 흉흉하기 짝이 없다. 신임 장관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있는 공무원들을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을지 걱정하는 공무원이 많다. 업무 지원이나 협조 차원에서 다른 부처나 기관에 파견 나갔던 고위 간부들도 복귀할 길을 탐색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파견 근무가 1∼2년 후 1~2급으로 승진해 복귀하던 출세 코스였는데 이제 실직 위기로 모는 함정이 된 탓이다. 국회에 파견되었던 한 1급 공무원은 최근 2급으로 강등해 복귀하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며, 그것은 사실상 나가라는 얘기가 아니겠느냐고 우울해 했다.
“힘 없는 조직·직급만 희생되는 것 아니냐”

조직과 감축 규모에 관한 부처간 불협화음도 일고 있다. 공보처의 한 과장은 “환란의 주범인 재정경제원은 거의 그대로 두면서 몇몇 힘 없는 부처만 조직을 해체하거나 크게 축소한 것은 조직 개편의 의미를 반감시켰다”라고 주장했다. 과천 관가에 ‘유력무죄 무력유죄’라는 말이 떠돈 것도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조직 개편의 칼날이 힘 있는 경제 부처나 엘리트 경제 관료들을 피해 가고 힘 없는 부처 공무원들에게 몰아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1동(재경원 입주)이 져야 할 경제 실정에 대한 책임을 3동(농림부와 통상산업부)이 졌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도, 두 부처는 감축 폭이 큰 반면 재경원은 거의 다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6급 이하 하위직과 기능직 등 연줄을 동원하기 어려운 힘 없는 공무원들이 주로 희생될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보통신부는 3년간 감축 규모가 철도청 다음으로 크지만, 주로 우편집배원·계리원 같은 기능직 공무원이 희생되어 체신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농림부·교육부·건설교통부 등도 본부 공무원 30여 명이 잘리게 되는데 그 중 상당수가 기능직이나 산하 단체 사람들이다. 이에 대해 정개위의 한 관계자는 “5급 이하 공무원이 많은 것은 수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고, 감소율 자체는 4.8%로 낮은 편이다”라고 밝혔다.

공무원 조직은 올해 정무직 14명(14.4%), 1급 13명(9.4%), 국장급(2∼3급) 57명(8.0%), 과장급(3∼4급) 1백15명(4.1%)이 감축된다. 재정경제부의 한 국장은 “자리가 뻔한 고위직 공무원들은 이번에 보직을 받지 못하면 대개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하위직에 비해 불안감이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미 올해 들어 각 부처 고위직 공무원들이 장관이 누가 될 것인가를 탐문하며 줄대기 로비에 나섰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속사정을 말해 준다. 총무처의 한 과장도 “중앙 부처의 과장이 되려면 20년 걸린다. 전직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굳은 데다가 민간 기업 사정도 최악이 아닌가.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라고 털어놓았다.

부처별 사정도 많이 다르다. 우선 사정이 가장 좋은 곳은 총리실과, 재정경제부로 이름이 바뀐 재경원. 총리실 공무원들은 인원 조정 과정에서 자리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지만, 한결 느긋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국무조정실 20명, 비서실 13명, 공보실 30명이 늘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총리실의 한 서기관은, 없어지는 부처도 있는 판이니 자기는 행복한 편에 속한다며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재경부도 오히려 1명이 증원되었다. 물론 재경부는 파견 인력인 이른바 ‘인공 위성’(97년 9월 말 현재 1백33명)이 많아 이 인력을 껴안고 가야 하지만, 혼란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조직 개편에서 통상교섭권을 쥐게 된 외교통상부 역시 특1·2급 12명, 1급 2명, 2∼3급 21명 등 모두 1백50명을 줄여야 하지만, 계급 정년이 1년씩 단축됨에 따라 직권 면직을 하지 않더라도 3년 안에 자연스럽게 인원 감축이 될 수 있어 행복한 편에 속한다.

반면 산업자원부로 이름이 바뀐 통상산업부는 전체 인력의 13.5%인 1백27명을 외교통상부와 중소기업청에 보내거나 사퇴시켜야 할 판이어서 불만이 크다. 이 부처 공무원들은 이번 인사에서 잔류와 다른 부처 전출, 퇴직 등의 진로가 결정될 것이어서 크게 술렁거리는 분위기였다.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부로 위상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감축 폭이 19.9%인 1백2명에 이르러 주요 부처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정원 4백12명으로 살림을 꾸려가야 할 판이다. 특히 국장급이 4명 줄어든 것을 안타까워했다. 통일부로 위상이 격하한 통일원은 모두 45명(민주평통 제외)이 감축되자, 해도 너무 한다는 분위기이다.

유일하게 통합되는 부처인 총무처와 행정자치부는 신경전이 대단하다. 우선 두 부처에 다 있는 조직을 처리하는 일이 문제다. 기획관리실·총무과·공보실·비상계획관·감사관 같은 조직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사권자가 어떤 인사 원칙을 견지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유동적이다. 두 부처 직원을 섞어 백지 상태에서 재배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부처의 인사 담당 관계자들은 50 대 50으로 자리를 배분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내다보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원만히 타결될지는 알 수 없다.

인사 태풍 전야의 관가 표정은 한마디로 흉흉했다. 자리 보전 자체가 급한 공무원에서부터 자기 부처 사람을 챙기려는 텃세와 지분 경쟁에 이르기까지 동료를 밟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배했다. 로비를 치열하게 한 흔적도 없지 않았다. 임명권자인 장관이 옥석을 잘 가려내지 않으면 유능한 공무원이 희생되어 국가적 손실로 남을 것이다. 올 8월 말이면 처음으로 정리 해고된 공무원이 출현할 것이며, 내년 3월 말에는 본격적인 감원 바람이 관가를 덮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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