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외신기자클럽
  • 권은중 기자 (jungk@sisapress.com)
  • 승인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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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 구미계 '주도권 잡기' 5년째 ··· 갈등 불씨는 '영어 브리핑'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클럽)에는 사무국과 식당이 함께 있다. 이곳은 외신 기자들의 기자회견과 같은 취재 편의를 봐주고, 회원들에게 친목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1970년대 내자호텔에 있을 때 이 클럽은 국내 저명 인사들과 외신 기자가 어울리는 사교의 장으로 인기를 누렸다. 1956년 창립된 이후 ‘그들만의 클럽’으로 존재해온 클럽 식당이 올 12월13일 그 높은 문턱을 일반인에게도 낮춘다.

반 세기 만의 변화는 경영 적자 때문이다. 매년 1억원 가까이 생기는 적자는 클럽 회원들이 내는 연회비의 25% 수준이어서 그대로 두었다가는 회비 전부를 빚 갚는 데 써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임기 1년인 기자 출신 집행부는 경영 수완을 발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전문 업체인 탱크맨파워에 경영을 위탁했다. 클럽은 위탁 경영과 동시에 일반인에게도 음식을 팔아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맹활약’ 일본 언론, 클럽에선 ‘찬밥 신세’

외국 공관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누리며 면세주를 공급받아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할 것 같은 클럽 식당이 부실해진 이유는 우선 높은 임차료 때문이다. 클럽은 임차료를 한달에 1천3백만원씩 한국언론재단에 내고 있다. 한달 매출이 3천만원 정도이니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클럽은 늘 적자다. 1985년 프레스센터에 입주할 때 당시 전두환 정권이 클럽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 제안했지만 독재 정권의 지원은 받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면세주는 계속 받아 왔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회원들이 클럽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내분 때문이다. 이번에 위탁 경영을 결정한 총회도 의결정족수가 미달해 세 번이나 열린 끝에 간신히 뜻을 모을 수 있었다. 자신들의 사랑방이 홍수에 떠내려갈 판국인데도 많은 회원이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무관심의 한켠에는 외신 기자들 사이의 만만치 않은 갈등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올해 10월 현재 국정홍보처에 등록된 외신 기자는 세계 80여개 사 2백여 명이다. 국정홍보처는 법무부 취업 비자를 받고 본사 사령장이 있는 기자에 한해 외신기자증을 발급한다. 한국인 외신 기자의 경우 전과 조회까지 확실하게 한다. 과거 박정희 정권 때는 한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는 비자를 발급하지 않아 아예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현재 한국에는 일본 언론사 소속 기자가 20개사 75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미국 언론사 소속 기자로 15개사 45명이 다. 청와대 공동취재단에 구미 3대 통신사와 함께 일본 교도 통신사가 포함될 정도로 일본 언론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또 일본 언론은 인원에 걸맞게 남북 관계와 경제는 물론 사회 현상에도 세세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한국에서 펼치는 활약에 비해 클럽에서 찬밥이었다. 클럽은 최근 몇 년 을 제외하고는 줄곧 구미계가 장악해 왔다. 일본계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조소하며 불편한 심기를 표현해 왔다. 왜냐하면 프레스센터 18층에서 벌어지는 정부 각 부처와 대기업의 기자회견이 영어로만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영어가 비록 세계 공용어로 통용되지만, 세계 각국에 있는 외신기자클럽에서는 그 나라 언어로 브리핑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서울외신기자클럽의 유일한 언어는 영어였다.

또 외신 기자 사이에는 같은 한국인이면서 영어를 못하는 기자를 업신여기는 사대주의 풍토도 없지 않았다. 이런 풍토는 클럽을 조각 내 버렸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신 기자의 75%는 한국인인데, 이들은 영어를 하느냐 못하느냐로 갈렸다. 따라서 싸움은 일본계와 구미계 기자의 대립이 아니라 이들을 대표하는 한국인들끼리 회복하기 힘든 감정 대립으로 전개되었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대부분 한국말을 잘 하지만 영어를 잘 못한다. 그러나 구미계 가운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블룸버그 통신 이안 킹 기자나 얼마 전 미국으로 돌아간 ABC 마이클 웬거트 지국장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미국 특파원 가운데는 10년 이상 근무해 한국통이라고 자처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 문제로 통일부를 찾아오는 기자는 일본 기자가 대부분이다”라고 귀띔했다.

일본계의 누적된 불만은 클럽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1996년 클럽에서 한국어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다는 선거 공약을 낸 박한춘 당시 WTN 지국장이 내리 3년 동안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만큼 일본계를 비롯한 동양계 외신 기자들에게 영어 중심의 클럽 운영은 못마땅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회장에 대한 구미계의 반발은 매우 거셌다. 구미계 기자들은 박회장이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고 사진 기자 출신이라는 점을 비판했다. 그러자 박회장을 두둔하는 측은 사진 기자도 기자이며, 정식 기자가 아닌 프리랜서 기자보다 낫다고 맞받아쳤다.
“같은 배 탄 사람들끼리 자리 놓고 아웅다웅”

박회장은 일본계 기자와 사진 기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3년 동안 클럽 회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구미계 기자의 거센 반발로 클럽은 금세 파행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박회장을 견제하려는 바람에 힘입어 집행위원 5명을 모두 구미계가 차지하기도 했다.

싸움은 클럽의 법인 정관 개정으로 번졌다. 박회장측은 1997년 자신의 이름으로 쓰인 기사 또는 사진과 본사 사령장을 제출해야 회원 자격을 주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관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도쿄·워싱턴·홍콩 등에서 사용하는 클럽 정관을 참조했다지만, 이는 사실상 프리랜서나 계약직이 많은 구미계 회원을 겨냥한 것이었다. 당연히 구미계 회원이 반발해 정관 개정은 무산되었다. 구미계 기자들은 기명 기사를 쓰지 않는 프리랜서도 기자라고 주장한다.

프리랜서로서 오랫동안 한국을 취재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존 버튼 씨는 “프리랜서도 분명한 기자고, 기사 작성에서 특파원과의 차이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AP의 한 기자도 “외국 기자들은 대부분 계약직이거나 프리랜서여서 한국 잣대로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거꾸로 지난해에는 영국인이 회장으로 당선되자 정관을 바꾸어 박회장을 찍어주던 외국 특파원을 지낸 국내 기자의 투표권을 없애 버렸다. 이 정관 개정은 당시 부회장이던 지정남 현 회장(<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외신 기자들은 이런 명분 없는 싸움은 출입기자단이라는 배타적인 취재 관행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정력 낭비라고 비판한다. 2백명에 불과한 한식구끼리 치고 받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이라는 이야기다. 바빠서 클럽에 갈 시간도 없다는 AP의 한 기자는 “클럽이 취재 편의와 권익 보호를 할 생각은 안하고 한가한 사람들끼리 자리나 놓고 아웅다웅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지정남 클럽 회장은 “클럽 운영을 정상화하고 그간의 불신을 씻기 위해 양측이 만날 자리를 자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능하면 클럽 운영이 정상화하는 내년까지 회장 직을 수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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