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특전사 1개 여단 파병하라" 물밑 압력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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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겨울 전투에 적합"…
경제 지원 등 '당근' 내밀며 비공식 요청
미국은 한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1개 여단 규모 특전사 병력을 파병해 달라고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은 〈시사저널〉 취재진이 주한미군 관계자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측 외교 소식통을 연쇄 접촉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미국은 이미 한국 군당국과 정부 요로, 각계 사회 인사들(특히 보수층)에게 특전사 파병의 필요성과 미국이 내놓을 반대 급부에 대한 비공개적인 의사 타진 및 여론 조성에 들어갔다. 미국은 비공식 요청이 주효해 한국이 '자발적'으로 파병 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소식통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전쟁을 수행하는 부시 행정부는 우방국 특수부대 전력을 분석해 한국 공수특전단이 겨울철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영하 40℃를 오르내리는 아프가니스탄 산악 지역과 가장 비슷한 조건에서 전문 훈련을 받은 특수전 부대는 한국군뿐이다. 미군 특수전 부대는 그런 조건에 익숙하지 않아 겨울철 작전에 한국 특전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특전사 파병을 요청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전쟁과 관련해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공식으로 병력을 파견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9월 말 의료 및 수송 지원단 중심의 비전투 병력 4백여 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측 외교 소식통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미국은 한국에 이런 비전투 병력 대신 특전여단을 '자발적인 모양새'로 파견해 달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특수부대원 피해 최소화하겠다는 의도


미국은 한국군 특전여단 파병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반대 급부를 마련해 한국에 손짓하고 있다. 미국 외교 소식통들이 거론하는 반대 급부는 크게 세 가지이다. △한국 경제 회복 지원 △군전력 현대화 지원 △일본 군국화 견제 효과. 현재 한국이 가장 아쉬워하는 문제들을 당근으로 들이대며 특전사 파병을 채근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예로 들어 이번에도 전쟁 특수를 한국에 듬뿍 안겨 주겠다며 접근하고 있다. 전후에 파괴된 도로·전기·통신시설 등을 복구하는 대규모 공사권을 한국에 우선 배당한다는 조건이 그것이다.




군 무기 체계와 전투력 향상 지원이라는 달콤한 제안을 하고 있다는 것도 베트남 전쟁 때와 닮은꼴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전에 한국군의 주력 소총이 M1이었지만 파병 후 전군이 M16 소총으로 교체 무장한 예를 들어, 이번에 특전사를 파병해 주면 첨단 무기와 새로운 장비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 또 미국은 일본이 자위대 전투부대 파병을 추진하자 경계심이 높아진 한국 정부와 국민의 심리도 적절하게 활용하려고 한다. 한국이 특수부대를 파병할 예정이니 일본에 전투 병력을 파병하지 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한국이 중동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우려하는 점을 의식해 이른 시일 안에 팔레스타인을 독립시킨다는 목표로 이스라엘에 대한 고단위 설득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고 한다.


미국이 한국 특전사 1개 여단 파병을 요구하는 이면에는 자국 특수부대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9·11 테러 직후만 해도 미국은 첨단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습과 미군 특수부대 투입으로 간단하게 탈레반을 붕괴시키고 오사마를 체포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테러 사태 직후부터 델타포스(테러 진압 부대)·그린베레(특전단)·레인저 등 대표적인 특수부대를 아프가니스탄 접경 파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배치했다. 그러나 이들의 전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일부 선발 특수부대는 초전에 큰 피해를 보고 후퇴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가 11월12일자에서 폭로한 다음과 같은 내용은 미군 특수부대 작전이 얼마나 난관에 몰렸는지를 잘 보여준다. '10월20일 미군 특수부대가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탈레반군의 공격을 받아 재난에 가까운 참변을 당했다'. 이 보도에 대해 영국의 〈가디언〉과 〈인디펜던트〉도 영국군 소식통을 빌려 '당시 작전에서 미군의 피가 흥건할 정도였고, 이 작전 실패로 이미 계획된 특수부대의 추가 작전들이 취소되었다'라고 뒷받침했다. 이같은 보도는 당시 리처드 마이어스 미군 합참의장이 "델타포스의 임무는 성공적이었고, 단 2명만이 경상을 입었다"라고 발표한 내용을 뒤집은 것이다.


곤혹스런 정부, 파병에는 부정적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1개 여단 규모 특전사 병력을 파견해 달라는 미국의 강력한 메시지가 물밑으로 밀려들고 있는 셈이다. 한국 특전사 병력 파견 요구에 대해 국방연구원 서주석 박사는 "국내 사정과 중동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전투부대 파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말리아 내전에 파견된 미군 특수부대 요원 19명이 사망하면서 미국내 철군 여론이 거세져 철수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 특수부대가 큰 피해를 보면 전쟁 수행 자체가 곤란해질까 봐 한국 특전사가 대신 들어가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급해진 미국이 한국 특전사를 꼭 집어 아프가니스탄에서 특수 지상 작전을 수행하기를 바라고 있는 데 대해 정부는 무척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순전히 군사 전략적 관점에서 전투병 파병 의미를 따지는 합동참모본부를 제외하고 국방부는 물론 정부 안에서는 전투병 파병에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11월1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이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할 것으로 내다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새시대전략연구소 김종대 정책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부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여야를 떠나 초당적 차원의 대응 태세를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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