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금 상태로는 지탱 못한다”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7.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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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의 정권 연장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주민이 굶지 않도록 하면서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그런 방법이 없다.”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워싱턴 포스트>의 외교 전문 기자로 명성을 날린 돈 오버도퍼(65·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외교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씨가 70년대 이후 남북 관계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아 냈다. 93년 봄, 17년 동안 몸 담았던 <워싱턴 포스트>에서 은퇴한 뒤 4년 만의 결실이다.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남북공동성명서가 나온 72년부터 황장엽 비서의 망명에 이르기까지 남북 현대사를 기자적 감각과 광범위한 취재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집필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는 70년대 초 <워싱턴 포스트>의 도쿄 특파원을 지내면서 한국의 정치 상황을 직접 취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집필을 위해 그는 남북한은 물론 일본·중국·러시아·독일, 나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까지 두루 다니며 취재했다.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지난 7일 출판 기념회를 가진 직후 그를 만나 북한 핵 문제와 변화하는 한·미 관계에 관해 들어 보았다.

한·미 양국은 공조 체제를 강조하면서도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여전히 인식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미국과 한국은 동맹 관계를 맺고 있지만 모든 문제를 똑같은 시각에서 보지는 않는다. 핵 문제만 해도 그렇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지역 안정과 세계적인 핵확산 방지 차원에서 다루어 왔다. 한국은 미국처럼 핵강국이 아니기에 세계적인 핵 확산 문제에 책임질 필요가 없지만 미국은 다르다.

당신의 책을 보면 95년 한국 정부가 미국측에 ‘2+2’회담안을 제시한 배경이 김영삼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이 있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그렇다. 95년 7월 당시 김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열릴 한국전 참전 미군 용사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한국측은 김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실질적인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정상회담이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처가 실무선에서 미리 합의돼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에 따라 한국 외무부측은 남북한이 평화 협상에 참여하고 미국과 중국이 보장자 역할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한 ‘2+2’안을 미국측에 전달했고 미국 국무부도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당시 김대통령은 귀국한 뒤 보수 여론에 밀려 미국 정부와 사전 상의 없이 이런 합의안을 철회했다. 물론 이 제안은 96년 4월 제주도에서 ‘4자 회담’제안으로 되살아나긴 했지만, 95년 7월 당시의 미국 관리들은 한국 정부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게 사실이다.

전·현직 미국 관리들을 만나면서 한국 정부의 잦은 대북 정책 변경과 관련해 불평을 들은 적이 있나?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막바지 협상을 벌이던 94년 10월 초, 한국은 북한에 제공할 경수로 사업의 중심적 역할을 맡는 것은 물론 비용의 상당 부분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10월 중순 <뉴욕 타임스>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북한 핵타결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협상에 임했던 미국 관리들이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근래 한·미 관계가 가장 긴장됐던 시점은 언제였다고 보는가?

아마도 지난해 9월 잠수함 사건이 터진 뒤 벌어진 한·미 간의 외교적 마찰이었던 것 같다. 그 해 10월 중순 한국의 한 일간지에 유사시 한국군이 북한내 12개 전략 지점에 대한 공격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보도가 나가자 주한미군 사령부는 발칵 뒤집혔다. 한국 정부가 즉각 보도 내용을 부인하기는 했어도, 이 문제는 클린턴 대통령이 11월24일 마닐라에서 열린 에이펙(APEC) 정상회담 뒤 따로 김대통령을 만나 미군 당국의 허락 없이 북한에 군사 공격을 하지 말라고 요구할 정도로 한·미 간에 외교 마찰을 일으켰다.
북한과 핵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어 불만이 쌓였는데….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협상하는 동안 방관자로 머물러 있어야 했던 한국의 처지를 이해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익이다. 어쨌든 과격한 방식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 핵 위기를 해소한 것은 한국의 국익과도 부합한다고 본다. 북한을 4자 회담에 끌어들인 것 역시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미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를 마치 동맹이라도 맺을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미국은 북한과 공통적인 이해를 추구할 만한 것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현재 미국 정부의 북한 정세 판단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클린턴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앤서니 레이크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가 있다. 클린턴 대통령도 북한 핵 문제가 고조될 때 중앙정보국과 국무부로부터 상충하는 보고서를 받았다고 한다. 클린턴 행정부 1기 때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도 나에게 사석에서 북한을 가리켜 ‘블랙홀이자 세계에서 정보를 획득하기가 가장 힘든 나라’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만큼 북한에 관해선 지금도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 판독하기가 힘들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95년 김일성과 회담해 결과적으로 북한 핵 위기를 타개하는 데 기여했다. 앞으로도 남북 문제 해결에 카터 식의 외교가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분명 카터는 북한 핵 위기를 해결하는 데 역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역할이 그처럼 돋보였던 것은 상대적으로 미국 정부가 김일성을 직접 상대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내가 듣기로 카터는 91년 이후 세 차례나 방북 초청장을 받았지만 미국 정부가 만류해 안 갔다고 한다. 그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그는 95년 북한에 가기 전 미국 정부로부터 상세한 브리핑을 받은 뒤 북한을 찾았다. 카터는 현재 남북 문제에 관한 한 선의를 가지고 임하고 있다.

4자 회담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중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는가?

중국은 수년 동안 북한에 대해 현상 유지 정책을 취해 왔다. 즉 북한이 붕괴하는 것도 원치 않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군사 활동을 고조시킴으로써 한반도에 위기를 조성하는 일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4자 회담에 대해 처음에는 미온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4자 회담에 적극 참여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는 것이 분명하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연착륙 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안정을 이룩한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 북한의 장래를 어떻게 보는가?

내 판단을 넘어서는 질문이다. 확실한 것은 북한이 현재와 같은 상태로는 지탱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수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이너스 성장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의 경제 규모가 아직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만일 경제 규모가 크다면 외부의 지원 규모도 그만큼 커져야 할 것이다.

연착륙 정책이 북한 정권의 연장을 도와주는 생명줄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어떻게 보는가?

바로 그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지금 큰 고민에 빠져 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북한 정권 지도자들을 자극해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는 것도 원치 않고 있다. 북한 주민을 굶지 않게 하면서 북한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방법이 제일 좋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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