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 문화 / 프랑스
  • 스트라스부르·류재화 통신원 ()
  • 승인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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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셋 중 하나는 ‘개’
“여긴 정말 살 데가 못되는군. 아, 고국으로 돌아가고파, 왈왈!” 영국을 여행하는 프랑스 개는 이렇게 푸념할지 모른다. 영국도 개 천국이지만 프랑스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슈퍼마켓·식당 등 어디고 못 다니는 데가 없는 프랑스 견공들은 영국에서 답답증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 개들은 카페·식당은 물론 몇몇 공원에도 ‘입장 불가’다. 프랑스에는 흡연자를 사절하는 식당은 있어도 개를 사절하는 식당은 없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개는 몇 마리나 될까. 한 애완견 전문 잡지의 통계에 따르면 9백만 마리. 프랑스인 6명 가운데 1명이 개를 키우는 꼴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식 둘에 개가 하나 있으면 자식 셋 키운다는 말을 흔히 한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식’은 데리고 다리기 편한 푸들 종이다. 그러나 검은 사냥개처럼 생긴 라브라도르도 좋아한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하루 일과처럼 애완견을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애완견을 위한 각종 의료 및 상해보험도 정착되어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 애완견 용품 센터도 따로 필요 없을 정도이다. 슈퍼마켓에만 가면 바로 사료·간식·놀이 도구·미용 도구 등 애견 용품을 살 수 있다. 개 전문 잡지만 해도 10 종이 넘는다. <개 잘 교육시키는 법> <개의 심리를 파악하는 법> <개를 위한 100가지 건강식 요리> <개 다이어트 법> 등 실용서도 각양각색이다.

2백여 년 전 이미 군주제를 청산한 프랑스인들이지만 개에 관한 한 ‘명가’를 선호한다. 프랑스인들이 애완견 순종 혈통을 지키기 위해 들이는 공은 대단하다. 프랑스에서는 개가 태어나면 정부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출생증명서는 개를 사고 팔 때 없어서는 안될 서류다. 강아지들은 태어난 지 12~15개월이 되면 주인을 따라 심사관 앞에 출두해 순종인지 아닌지를 검사받아야 한다. 심사에 합격한 개는 농업장관이 주무하는 LOF(프랑스 태생 등기부)에 등록된다. LOF에 이름이 오르면 혈통을 인정받는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잡종견은 18% 수준이다.

개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극성을 들여다보면, 프랑스 극우 정치가 장 마리 르펜의 친구 브리지드 바르도가 이민 물결을 비난하며 “개들도 잡종을 만들지 않는데, 우리 프랑스 민족을 잡종으로 만들어서야 되는가!”라고 개탄하는 것도 괜한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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