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주일 미군 감축설의 진실
  • 卞昌燮 기자 ()
  • 승인 199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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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헨 미국 국방장관 “亞太·유럽에 10만명씩 주둔”…2000년대엔 줄어들 듯
감축이냐 현상 유지냐. 그동안 동아시아의 미군 병력 규모를 놓고 벌여온 논란이 최근 윌리엄 코헨 미국 국방장관의 발언에 따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조짐이다. 그는 최근 진보적 두뇌 집단인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한 연설에서, 세계 핵심 지역에서 미군 주둔 규모를 강력하게 유지해야 한다면서, ‘아·태 지역과 유럽에 각각 10만명씩 미군을 주둔시켜야 한다’라고 천명했다. 그의 발언은 국방부가 4년마다 발표하는 중·장기 국방보고서(QDR) 발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나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그가 구체적인 숫자까지 적시하며 아·태와 유럽 두 곳을 핵심 안보 지역으로 명기함으로써 당분간 이 지역에 배치된 미군 규모에 큰 변화가 없으리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특히 코헨 장관의 발언에서 주목할 대목은 아·태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 규모이다. 사실 10만여 미군 병력 중 3분의 2가 집중되어 있는 한국과 일본은 냉전 후 미국 조야에서 강하게 일고 있는 동아시아 미군 감축론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따라서 그가 천명한 동아시아 미군 10만명 유지론은 미군 철수에 따른 안보 공백증을 우려하던 한국과 일본에 안도감을 안겨줄 것 같다.

중·장기 국방보고서 ‘윈윈 전략’ 고수

그동안 해외 주둔 미군 감축론은 미국 고위 관리들의 입을 통해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특히 21세기 미군의 병력 구조를 현재의 지상군 중심에서 해·공군 중심 첨단 무기 체제로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장기 국방보고서의 최종 발표가 임박하면서 지상군 감축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과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난무해 왔다.

지난 4년간 육·해·공 3군 합참 간부진에 의해 검토되어 오다 최종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장기 국방보고서의 핵심은 1백40만 미군 병력 가운데 6만명을 줄이는 일이다. 이와 함께 공군이 당초 계획했던 F 22 스텔스 전투기 4백38대를 3백39대로, 해군이 도입할 예정이던 신형 F/A 18 슈퍼 호넷 천대를 7백85대로 각각 줄이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해외 주둔 미군 병력 규모와 관련해서는 기존 ‘윈윈 (win-win)’전략이 그대로 채택됨으로써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93년에 세워진 윈윈 전략은 걸프 지역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양쪽에서 동시에 승리할 수 있는 준비 태세를 갖춘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와 유럽에 각각 10만명 선의 미군을 전진 배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케네스 베이컨 국방부 대변인이 5월1일‘현재 검토 중인 중·장기 국방보고서가 육군 병력 감축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유의할 대목이다.

하지만 현재 최종 마무리 단계에 있는 중·장기 국방보고서는 냉전 종식과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추어 작성되고 있기 때문에 미군의 전반적인 병력 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하리라는 관측이 근래 들어 끊임없이 나돌았다.

중·장기 국방보고서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지난 4월29일 발표된 연례 국방보고서는 아·태 지역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 보고서는 미군의 동아시아 주둔이 북한의 단기적인 위협을 저지하는 동시에, 이 지역의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 등 열강과의 대결 국면에서 장기적인 안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이 지역의 잠재적 위협 요인이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미군 감축이 이루어질 경우 결과적으로 힘의 공백 상태가 일어나 경쟁국 간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주일미군 4만7천명, 주한미군 3만7천명 및 하와이의 태평양함대 병력을 포함해 10만명 선으로 되어 있는 동아시아 주둔 미군 규모를 계속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명기하지 않아 관심을 끌었다. 이 때문에 곧 발표될 중·장기 보고서에서도 동아시아 주둔 미군, 특히 지상군의 병력 구조 변경에 관한 언급이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같은 추측에 불을 붙인 사람은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조셉 푸르어 제독이다. 그는 지난 2월 <디펜스 데일리>와 가진 회견에서 동아시아 주둔 미군이 감축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시 그는‘한반도에서 남북한이 화해할 경우 주한미군 또는 주일미군 감축까지를 포함한 여러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이런 시각은 지난 3월 초 일본의 <아시아 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또다시 드러났다. 비록‘한반도에 긴장이 완화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어도, 그는 남북한의 화해 상황을 보아 가며 4만7천 주일미군 감축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아시아 각국은 외교 경로를 통해 진위를 알아보느라 법석을 떨었지만, 미국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아직 미군 감축과 관련해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식 통보함으로써 일단 그에 따른 논란은 수그러든 상황이다.

푸르어 제독이 제기한 동아시아 미군 감축론의 배경도 관심거리다. 해마다 2천5백억달러나 되는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언제까지 지출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냉전이 끝난 뒤 의회에서 특히 논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현재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2000년 초까지 재정 적자를 해소한다는 목표로 국방비 삭감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푸르어 제독의 주장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 실익 위해 해외 주둔군 유지

<시사저널>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는 미국의 국방 전문가 리처드 할로란씨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지상군은 줄이되 첨단 무기를 도입해 해군과 공군을 강화하는 쪽으로 21세기 미군의 전략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편 방향 여하에 따라 동아시아 주둔 미군 규모도 다소 영향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테드 워너 국방 차관보는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 가진 회견에서‘다른 곳은 몰라도 아시아 쪽 미군을 감축하는 것은 시기 상조’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10만 미군 유지론을 적극 주창해 이를 정책으로 구현한 사람은 전 국방 차관보 조셉 나이였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이기도 한 그는 94년 이른바‘동아시아 전략 보고서’(EASR)를 통해 2000년대에도 아시아에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려면 미군이 최소 10만명 주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가 주장하는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은 명분이고, 실제로는 이 지역에 대외 교역의 3분의 1을 의존하는 미국이 미군을 주둔시켜 지속적인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자는 속셈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아무튼 클린턴 대통령 집권 1기 시절에 발표된 이같은 정책 기조는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아시아 안보 정책이 한국과 일본 등 역내 국가와의 쌍무적 안보동맹을 기초로 해 미군을 전진 배치한다는 전략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아시아 안보 환경이 나아질 경우 현재의 10만명 선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할로란씨는 기자와 가진 통화에서 “워싱턴에서는 어떤 의제고 탁상 위에 올려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변하는 정책이란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중·장기 국방보고서에 동아시아 미군 병력 감축에 관한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이것이 불변의 정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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