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등 터뜨린 ‘고래 싸움’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2.06.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일본 ‘포경’ 힘겨루기…생계형 고래잡이 길 막힌 소수 민족만 피해



일본과 미국, 포경 용인국과 포경 반대국이 고래잡이를 둘러싸고 벌이는 ‘고래 싸움’에 베링 해와 알래스카 등지에서 고래잡이로 전통 문화와 생계를 이어가던 소수 민족의 새우 등이 터지게 생겼다.



지난 5월20∼24일 시모노세키에서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제54회 연차 총회가 열렸다. 이번 총회는 이미 개회 전부터 국제 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멸종 위기에 몰린 고래를 인간의 남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986년 이후 17년째 금지해 온 상업 포경을 재개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포경 허용국과 포경 반대국 사이에 건곤일척의 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상업 포경 재개를 주장하는 이른바 ‘포경 용인파’의 간판 주자는 다름 아닌 총회 개최국 일본. 상업 포경 전면 금지 조처 이후에도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는 포경을 할 수 있다’는 국제 규약의 빈 구멍을 교묘하게 이용해 상업 목적 포경을 일삼아 온 일본은, 총회 투표에서 국제포경위원회의 ‘포경 반대’ 분위기를 누르기 위해 일부 회원국을 상대로 매수 작업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져 다른 회원국들의 빈축을 샀다. 이를테면 일본은 ‘정부개발원조(ODA)’라는 명목으로 고래잡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내륙 국가인 몽골, 아프리카의 가봉, 그리고 카리브 해의 몇몇 섬나라를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일본·노르웨이 등 포경 용인파에 맞선 포경 반대파의 대응도 간단치는 않았다.포경 반대 국가들은 자칫 표결에서 밀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역시 포경과는 상관없는 나라인 산마리노를 국제포경위원회의 회원국으로 가입시켰다.



‘토착 방식 포경 허용안’ 일본 반대로 부결



회의 전부터 치열한 전초전을 벌인 양측의 승부는 지난 5월21일, 일본이 제안했던 사실상의 상업 포경 허용안인 ‘일본 연안에서의 포경 허용’ 안건이 부결되면서 일단 포경 반대파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태가 터졌다. 총회 마지막 날인 5월24일 미국과 러시아가 구체적인 어획량과 함께 제안한 ‘토착 방식 포경 허용안’이 회원국 4분의 3 찬성 규정에서 한 표가 부족해 부결된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에스키모·추크치족 등 몇몇 소수 원주민이 재래 방식으로 고래잡이를 해왔다. 국제포경위원회는 이들 원주민들의 고래잡이에 대해서는 ‘생계형’이며 ‘문화적 전통’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걸지 않아 왔다. 그런데 이번 총회에서 결국 ‘17년 전통’이 깨진 것이다.



토착적 포경을 부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쪽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다. 표면적인 반대 이유는, 미국 인디언 마카족·이누이트족이 잡는 귀신고래와 참고래 종류야말로 고래 가운데에서 가장 보호가 시급한 멸종 위기 종이라는 것이다.



토착형 고래잡이에 대한 부결 결정이 내려지면서 포경 용인파와 포경 반대파의 갈등은 본격적인 감정 싸움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미국 등 피해 당사국은 일본 등 포경 용인국의 분풀이 색채가 짙은 이번 결정을 재검토하자며 ‘특별 총회’를 소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반대파인 일본이 호락호락 이에 응할 리 만무하다. ‘고래 싸움’의 장소는 갈수록 원래 무대를 벗어나 점점 강대국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