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풀린 NASA ‘예고된 인재’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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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력·예산 부족+안전 불감증’이 컬럼비아호 참사 불러
미국 우주 진출의 총본산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 비행을 시작한 지 42년 만인 올해 최대의 시련에 봉착했다. 1967년 아폴로호, 1986년 챌린저호에 이어 지난 2월1일 또다시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폭발 사고를 일으켜 지상 착륙 6분을 남겨 놓고 산산조각 나는 참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의 여파로 아틀란티스를 포함해 미국이 보유한 우주왕복선 3기의 운항이 전면 중단되었다. 또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항공우주국은 물론 미국 의회와 외부 독립 기관이 저마다 조사단을 구성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정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태의 본질은 과거 챌린저호 사고 때처럼 또다시 ‘안전 사고’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 공군이 촬영한 사진에 따르면, 컬럼비아호는 발사될 때 이미 왼쪽 날개가 구조적으로 손상된 상태였다. 이것이 지구 궤도 재진입 때 고열을 이겨내지 못하고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 현재까지 사고 원인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이다.






지금 비판자들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번처럼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사태 진화에 나서는 항공우주국의 고질적인 ‘뒷북 대처’ 관행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1990년대 초 탈냉전의 여파로 시작된 항공우주국의 예산 삭감 행진과 그에 따른 전문 인력 급감, 나아가 항공우주국측의 안전 불감증이 한데 어우러져 이번의 참사를 낳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항공우주국은 1960∼1970년대의 ‘좋았던 시절’과 대조적으로, 1990년대 이후 심한 예산 부족에 허덕여왔다. 연방 의회 산하 기관인 일반회계국(GAO)이 2년 전 만든 우주왕복선 안전에 관한 보고서는 이같은 점이 안전상의 허점으로 이어진 것을 잘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1995년부터 1999년 사이 항공우주국이 직원 3천명을 1천8백명으로 줄이는 바람에 최첨단 기술의 총집합체라 할 우주왕복선 안전 점검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우주왕복선은 발사 직전까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안전 사항이 1백20만 개에 이른다. 이 중 하나라도 점검을 소홀히 할 경우, 언제든 대형 사고가 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일반회계국의 보고서가 나온 이후 2년간 항공우주국이 보고서에서 지적된 사항에 크게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1986년 챌린저호 사건 이후 15년 동안 우주왕복선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이런 ‘무사고’가 항공우주국으로 하여금 우주왕복선의 안전성을 과신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항공 우주 전문가인 존 파이크 씨는 사고 직후 “항공우주국이 만성적인 예산 부족에 시달린 나머지 안전 점검을 소홀히 한 채 우주왕복선을 너무 신뢰한 게 화근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오랜 무사고 기록 행진이 항공우주국 최고 책임자들의 안전 불감증을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다. 한 예로 이번 컬럼비아호 참사 원인의 하나로 꼽히는 우주왕복선 날개 부분의 단열 타일 파손 문제만 해도, 1990년부터 그 위험성이 끈질기게 제기되어 왔지만 항공우주국 최고 책임자들은 이를 등한히 했다. 지난해에는 안전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항공우주국 산하 항공안전자문위원회(ASAP) 위원 5명이 무더기로 해임되는 일도 발생했다. 그 중 한사람인 존 스튜어트 박사는 우주왕복선 안전의 가장 큰 문제로 전문 인력 부족을 꼽았다.



설상가상으로 항공우주국이 노후한 우주왕복선을 폐기 처분하지 않고 핵심 기술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기존 우주왕복선의 비행 수명을 최고 25년까지 더 연장하려 한 것도 안전 불감증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존 브로 상원의원은 CNN 방송에 출연해 “낡은 우주왕복선을 폐기하고 대신 최첨단 안전 장치를 갖춘 차세대 우주왕복선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번에 참사를 당한 컬럼비아호도 1981년 첫 비행에 나선 뒤 그간 여러 차례 기술 향상을 거치며 사고 때까지 통산 스물여덟 번째 우주 비행에 나섰던, 가장 노후한 기종이었다.



우주왕복선 예산 20%가 안전 점검 비용



대다수 비판자들은 항공우주국의 불충분한 예산 탓에 값비싼 안전 점검이 생략되기 일쑤였으며,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 한 우주 비행사들은 앞으로도 늘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항공우주국의 연간 예산은 1백50억 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40% 깎인 상태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 출범 후 취임한 시언 오키프 현 항공우주국장은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 예산처 등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예산 관료 출신으로서, 취임 전부터 항공우주국의 방만한 운영을 맹렬히 비판해온 인물이다. 그가 항공우주국의 예산 증액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예산을 쥐어짜는 데 만족했다는 것이다. 그는 항공우주국장에 지명된 뒤 “나는 로켓 발사가가 아닌 예산 전문가이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해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항공우주국 예산 가운데 우주왕복선 예산으로 나가는 돈은 32억 달러로서 전체 예산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나마 상당액이 안전 점검 비용으로 나가고 있다. 통상 우주왕복선을 한 번 발사할 때 드는 비용은 최소 4억5천만 달러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상당액이 안전 점검 비용으로 충당된다. 이를테면 1997년 항공우주국이 우주왕복선 예산으로 집행한 31억 달러 가운데 20%는 안전 점검에 쓰였다. 그 해 우주왕복선이 모두 여덟 차례 발사되었으니 1회 발사당 약 7천9백만 달러가 안전 점검 비용으로 충당된 셈이다.



이런 비용은 해가 바뀔수록 늘어나기 마련이다. 항공우주국이 1999년에 안전 점검 비용으로 사용한 돈은 무려 5억7천1백만 달러. 그 해 우주왕복선 비행이 세 번이었으니 안전점검비로 1회당 1억9천만 달러가 나갔다는 얘기다. 지난해 미국의 국방 관련 민간 연구기관 랜드 연구소가 작성한 보고서는 올해부터 2007년까지 우주왕복선 안전 점검 향상에 소요될 금액이 1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해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항공우주국은 예산 부족과 천문학적인 안전 점검 비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일부 용역을 보잉과 록히드마틴 등 민간 항공업체에 넘겨왔다. 또 2년 전에는 아예 우주왕복선을 1기당 25억 달러에 민간 부문에 팔 것을 신중히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공우주국의 우주선 매각 계획은 우주선을 헐값으로 민간에 넘기지 않을 경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랜드 연구소의 보고서가 나오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실제로 우주 비행에 1인당 약 2천만 달러가 드는 상황에서 수요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한 번 발사할 때마다 4억 달러가 넘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할 때, 민간 업체들이 비싼 돈을 들여 우주선까지 사들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컬럼비아호 참사 직후 항공우주국 예산을 올해 대비 3% 올린 1백55억 달러로 책정했다. 이 가운데 우주왕복선 운행 예산은 지난해보다 7억6천만 달러가 늘어난 39억 달러이다. 백악관은 의회에 제출한 예산안 배경 설명에서 ‘항공우주국이 우주왕복선 비행과 관련해 충분치 못한 계획과 저렴한 운영 비용에 의존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백악관이 앞장서서 우주선 운행 비용을 무려 8억 달러나 깎겠다고 나섰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키프 항공우주국장도 컬럼비아호 참사 직후 의회 지도자들과 만나 “앞으로는 쓸 수 있는 예산을 모두 동원해 우주왕복선 안전 점검비로 충당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주 비행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 없이 단순히 안전 점검을 위한 예산을 보충하는 것만으로 제2의 컬럼비아호 참사를 막을 수 있을지, 미국에서는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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