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람회장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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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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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스타일로 녹여낸 한국의 이미지 삼중주
최근 동양화단에는 퓨전 화풍이라 할 만한 그림이 늘고 있다. 과거의 수묵·문인화 전통 일색에서 벗어나 점차 다양한 매체와 내용으로 동양화 변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양화 파라디소전(포스코미술관, 5월9일~6월5일, 02-3457-1665)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이런 한국화의 신경향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서양의 시각과 형식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보려는 젊은 작가들이 서양화·동양화라는 구분 없이 매체나 형식을 뛰어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단순히 장르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영역 파괴인지, 아니면 말뜻 그대로 ‘혼융·합성’을 의미하는 ‘퓨전’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뒤섞임 시대에 지필묵이라는 전통 매체의 심오함과 서양적 평면성의 감각을 절충해 새로운 미감 형식을 실험하고 있는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서양화 같은 동양화와 동양화 같은 서양화가 혼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퓨전 스타일의 그림들이 새로운 소통 관계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동양화에서 서양적 시각 형식 도입, 추상적 조형 요소 나열이 진정 현대화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질적 요소를 물리적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화학적인 결합이 일어날 때 진정한 의미의 해체와 퓨전이 가능해질 것이다. 바로 그럴 때 한국화의 자생성, 새로운 수묵의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모든 시대가 퓨전 시대였고, 다국적 혼성주의 시대였다. 우리가 그런 패러다임의 주체로 서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퓨전 감각을 어떻게 수용하고 자생시켜 독창적이고 빛나는 성취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치열함만 남게 된다. 동양화의 미학을 설파했던 스타오(石濤·1641∼1720?)의 말처럼 ‘필묵은 시대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전통을 현대화한다는 미명 아래 그동안 수많은 오류가 발생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젊은 화가들의 작품 가운데는 매체나 재료만 전통적인 것일 뿐 그것을 담아내는 기법은 영상 세대에 걸맞는 카메라 앵글을 직접적으로 모방한 작품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 작품들이 전통적인 화법이나 시점을 혁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것은 카메라의 눈에 담긴 경영위치(經營位置)의 모사물, 한지 위에 먹물로 남겨진 사진 복사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영상 매체의 시점을 화면 속에 끌어들여서 결국 한 장의 종이 작품으로 남게 하는 것보다는, 거꾸로 전통 화면을 영상 매체에 실어 확산해 보겠다는 전통화의 반격은 어떨까. 그래서 수많은 작품으로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는 형식은 어떨까. 어쩌면 이런 것이 진정한 이 시대의 중체서용(中體西用)·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닐까. 우리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선보인 플로우 모(flow-mo) 기법이나, <와호장룡> <영웅> 등에 나오는 고공 검술 장면에서 동양적 시공간 개념이 서양의 테크놀로지와 혼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영화 <영웅>의 장면들은 바로 이런 작가적 정체성과 소통 시스템이 퓨전 시대에 들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구조적인 틀 속에서 <영웅>은 검법과 서예의 일치를 보여주며, 그것을 영화라는 대중적 메커니즘에 올려놓는다. 영화 속에서 검과 붓은 직설적 은유의 장치로 여겨진다. 붓글씨를 쓰다가 검술을 개발한 파천(량차오웨이)과 검객 무명(리롄제)의 공중 결투 중, 칼을 물에 담갔다가 빼는 행위는 마치 붓을 먹물에 담갔다가 빼는 행위와 유사하다. 또 그들의 비행은 화선지 위를 유영하는 붓질(필획)이나 다름없다(동양화의 선의 근원은 전각(篆刻)의 선에서 왔다. 붓의 길은 칼의 길과 일치한다. 스케이트를 타듯 스키를 타듯, 붓과 칼은 미끄러지듯이, 그리고 힘의 균배 속에서 흘러가야 한다).

그들의 결투 중에 튕겨 나가는 물방울, 그러다 결국 누워 있는 비설(장만위)의 얼굴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아름답게 그려 가던 산수화에 한 방울 오점이 튀는 것이며, 파천은 그 오점으로 인해 가슴 아파 한다. 이처럼 첨단 기술을 통해 예(藝)와 무(武), 동과 서의 소프트웨어가 엄밀한 하드웨어의 도(道)에 하나로 섞인다.

나는 서양 우월주의자도 절대주의적 관념론자도 아니지만, 누가 나에게 동양화의 길을 물어본다면 솔직하게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하겠다. 체계화하고 보편화한 서양의 메커니즘과 네트워킹 시스템에 동양의 정신을 담는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질료나 매체의 경계만 허물라는 얘기가 아니다. 어찌 보면 가장 실패한 작가는 첨단 매체를 다루면서도 작품 속에 진부함을 담고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가장 성공한 작가는 오래된 매체를 다루면서도 그 속에 영원한 새로움을 새기고 있는 작가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성적 캐릭터를 잃지 않는 작가 말이다.

김덕용 김선두 박병춘 박종갑 사석원 유근택 이기영 이종목 이주원 임만혁 정종미 조순호 허 진 등 동양화 파라디소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한국화의 신경향을 대표하는 리더들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이들은 1970∼1980년대에 이르는, 민중미술이라는 현실의 외침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교육받았다. 그후 이른바 ‘거대담론’에서 ‘소담론’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있었고, 고민했던 작가들이다. 관념적이고 계파적인 아카데미즘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세대이며, 동양화의 엄숙주의와 금기에 대해 조심스레 내밀한 변모를 일으킨 동양화의 신세대이다. 그들의 의미 있는 행보를 주목해 보자.

한지의 속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낸 기법으로 마치 부조와 같은 느낌의 동양화를 만드는 작가 원문자의 근작이 소개되는 개인전이 열린다. 작가는 한지의 질감과 이미지의 조화를 통해 동양화가 또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900호짜리 초대형 작품을 비롯해, 400∼500호에 이르는 대작들이 출품된다.

한국의 이미지를 주제로 사진가와 디자이너가 2인 1조가 되어 제작한 포스터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가장 현실적이고 현장감 있는 한국의 모습을 강력한 시각 형식인 포스터를 통해 표현해 낸다는 취지다. 이번 전시는 정형화한 우리의 모습이 아닌 역동적인 한국 사회를 반영함으로써 우리의 전통을 재해석해 본다. 한국적 이미지를 재정립하는 시도를 보여줌으로써 이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튼다. 어린이를 위한 워크숍도 열릴 예정이다.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은 태극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월드컵 1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전시회이다. 5월18일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태극기를 주제로 한 그림 그리기’ 대회도 열린다.

<원문자전>
금호미술관(5월21∼31일) 02-720-5114
<이미지 코리아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5월2∼25일) 02-580-1612
<대∼한민국, 태극기전>
제비울미술관(5월10일∼6월30일, 02-3679-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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