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나는 고발한다>로 영어 남용 ''고발''한 김영명 교수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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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에는 문외한인 한 사회과학자가 동료 지식인들의 ‘영어 숭배’ 현상을 질타하고 나섰다. 한림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영명 교수가 최근 〈나는 고발한다〉(한겨레신문사)라는 책을 펴내고서 세계화 시대 도래 이후, 특히 지식 사회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영어 사대주의’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김교수는 이제까지 한글 사랑 운동이 ‘한자(漢字)와의 투쟁’이었다면, 이제 운동의 주적(主敵) 개념을 영어로 바꾸어야 할 때라고 목청을 높인다. 영어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와 신뢰는, 한자가 조선을 지배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한글의 주체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교수가 국제어라는 영어의 위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국제어인 영어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 말에 함몰되어 미국식 가치관과 문화에 넋을 잃고,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에 유인되어 이를 정당화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김교수의 한글 사랑은 내력이 깊다. 그는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유학파’였지만, 지난 15년간 국내에서 논문과 저서를 쓸 때 한글 표기를 원칙으로 삼아 왔다. 그는 지난해 봄 대학원 강의 때 지식 사회가 영어를 너무 심하게 섞어 쓰는 데 대해 새삼 충격을 받고서, 지난 6월 동료 학자·방송인과 함께 한글문화연대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김교수에게 한글은, 단지 ‘우리 것’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언어 생활은 궁극적으로 정치 생활과 결부되어 있으며, 따라서 언어는 ‘정치 도구’이다. 한글 경시와 영어 숭배는 종국적으로 정치·사회·문화적 예속을 초래한다고 그는 믿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영어 열풍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세계화를 앞세운 영어 제국주의 세력과 이같은 흐름에 편승하여 기득권 확대를 꾀하는 영어 사대주의자들의 합작물이다’라고 그는 분석했다.

김교수가 특히 지식인들의 영어 선호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우리 말에 영어를 함부로 섞어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같은 단순한 사실도 구분하지 못하고서 과연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김교수는 되물었다. ‘쓸데 없는 허영과 말놀음을 줄일 것’. 김교수가 동료들에게 제안하는 한글 사랑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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