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명작 감상으로 즐기는“고품격”피서
  • 박성준 기자(snypeoo@e-sisa.co.kr) ()
  • 승인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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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김기창 작품 등 ‘고품격’ 전시 잇달아 열려
몇년 전부터 한국에서 유행한 새로운 여행 상품이 있다. ‘예술 테마 기행’. 음악 축전·미술관 순례 등 주제 하나를 두고 이루어지는 기행으로, 여름 휴가철이 성수기이다. 이 여행의 장점은 특정 예술 장르를 단기간에 집중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선뜻 떠나지 못하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국내 유적 답사를 제외하고는 주로 외국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여름, 최소한 미술 장르에서만은 사정이 달라졌다. 미술 선진국에서도 동시에 접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전시회가 서울의 여름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들의 공통점을 더 꼽아 보자면, 근래에 보기 드문 대규모인 데다 기간도 여름 끝자락까지 걸쳐 있다는 점이다. 일정을 스스로 정해 하루 이틀 가족과 더불어 도심에서 미술 테마 기행을 하는 데 손색이 없는 전시회들이다.

<백남준의 세계>는 미국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열린 전시회. 구겐하임 미술관이 ‘전자 예술의 미켈란젤로’를 앞세워 새로운 세기의 문을 여는 ‘작품’으로 내놓은 이벤트이다. 이 전시는 2월11일~4월26일 뉴욕 전시 기간에 구겐하임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25만8천여 명)을 불러모았다.호암미술관과 로댕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리는 <백남준의 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백남준 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전자 예술의 거장인 백씨가 내놓은 신작은 일명 ‘레이저 아트’가 빚는 환상적인 쇼이다. 전시장 바닥에는 세상의 다양한 이미지를 담은 텔레비전 수상기 50대가 놓여 있고, 그 사이에서 쏘아올린 레이저가 천장의 둥근 캔버스에 갖가지 아름다운 도형을 그린다. <감미로움과 숭고함>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조형물은 물과 레이저가 한몸이 된 <야곱의 사다리>. 하늘은 지상으로 물을 떨어뜨리고 지상은 하늘에 화려한 색채로 감사를 올리는, 신과 인간의 소통을 구현한 작품이다. 레이저와 물을 떨어뜨리는 기술 등 첨단 테크놀로지가 동원되었으나, 물·빛·소리가 ‘인공’보다는 ‘자연’을 먼저 떠올리게 하리만큼 아름답게 결합해 있다.

<동시 변조>라는 이름으로 묶인 두 작품은, 구겐하임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로댕갤러리의 구조에 맞추어 새로 설치되었다. 7층 높이인 구겐하임에서 ‘거대한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었다면, 8m 높이인 로댕갤러리에서는 레이저와 물줄기가 이루는 세계를 좀더 가까이에서 선명하게 즐길 수 있다.작품으로 보는 거장들의 이력

이 전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한국 출신 젊은 음악도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된 1960년대부터 걸어온 예술의 궤적이다. 두 전시장에 나온 대표작 100점은, 백남준씨가 20세기라는 환경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했는가를 한눈에 읽게 해준다. 텔레비전·비디오 따위가 만든 새로운 세계와 기존의 자연을 적절하게 결합해 ‘우리가 처한 구체적인 환경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점을 금방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백남준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바보예술 88년>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1930년대부터 쌓아온 예술가로서의 이력을 그의 4천여 작품 가운데 가려 뽑은 대표작 80여 점으로 보여주는 전시회이다. 올해 미수(米壽·88세)를 맞은 운보는, 한국 현대 미술에 한 획을 그은 20세기 한국 대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암각화에서 포경선이 발견되다

전시의 출발점은 12세기에 그려진 벽화. 비잔틴 전통을 이어받은 이 벽화는, 러시아 특유의 소박함과 더불어 러시아 사람의 삶을 지배한 그리스 정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토우·귀면와·잡상·석관·민불·상여·돌장승·솟대 등 그동안 한국 미술사가 빠뜨렸던 조형물 1백50여 점이 나와 있다. 그 중에서도 전시의 첫 장을 여는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그 모습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0년 전에 발견된 가로 15m 세로 3.5m 암각화는 신석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동물·물고기 형상을 바위에 새김으로써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거대한 조형물이다. 실물 크기 그대로 옮겨놓은 예술의전당 전시품은 새로운 기법을 동원해 암각화의 전모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암각화를 주로 읽던 방법은 탁본이었으나,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암각화를 공부하고 온 장석호씨(계명대 강사)가 비닐을 덧씌워 그림을 그대로 옮기는 방법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형상이 여럿 나타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래잡이를 하는 포경선이다. 울산 근처의 장생포와 태화강이, 고대 문명의 꽃을 피운 주요 거점임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이다. 자료로서의 가치말고도 암각화는 호랑이·사슴 같은 동물뿐 아니라, 펭귄 형상을 한 그림까지 그려져 있어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예술의전당에 나온 울산 대곡리 암각화는 세계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못지 않게, 인류의 귀중한 문화 자산임을 잘 보여준다. 알타미라 벽화와 마찬가지로, 암각화는 고래를 바위에 새기면 현실에서 고래가 그대로 잡힌다는 고대 사람들의 믿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북한 문물보존총국이 실물 그대로 그려 보존용으로 제작한 고구려 강서대묘의 <사신도>도 빼놓지 않고 보아야 할 명품이다.

대형 전시장은 작품 보존을 위해 20℃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올 여름 전시장에 가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더위까지 씻는 일거양득 효과를 거둘 수 있다.
30년 전에 발견된 가로 15m 세로 3.5m 암각화는 신석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동물·물고기 형상을 바위에 새김으로써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거대한 조형물이다. 실물 크기 그대로 옮겨놓은 예술의전당 전시품은 새로운 기법을 동원해 암각화의 전모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암각화를 주로 읽던 방법은 탁본이었으나, 이번에는 러시아에서 암각화를 공부하고 온 장석호씨(계명대 강사)가 비닐을 덧씌워 그림을 그대로 옮기는 방법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형상이 여럿 나타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래잡이를 하는 포경선이다. 울산 근처의 장생포와 태화강이, 고대 문명의 꽃을 피운 주요 거점임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이다. 자료로서의 가치말고도 암각화는 호랑이·사슴 같은 동물뿐 아니라, 펭귄 형상을 한 그림까지 그려져 있어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예술의전당에 나온 울산 대곡리 암각화는 세계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못지 않게, 인류의 귀중한 문화 자산임을 잘 보여준다. 알타미라 벽화와 마찬가지로, 암각화는 고래를 바위에 새기면 현실에서 고래가 그대로 잡힌다는 고대 사람들의 믿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북한 문물보존총국이 실물 그대로 그려 보존용으로 제작한 고구려 강서대묘의 <사신도>도 빼놓지 않고 보아야 할 명품이다.

대형 전시장은 작품 보존을 위해 20℃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올 여름 전시장에 가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더위까지 씻는 일거양득 효과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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