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벌인 미술 실험 열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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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화랑의 스튜디오 지원 프로그램 ‘졸업’한 ‘아뜰리에 사람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2월15일까지 열리는 ‘아뜰리에 사람들’전(02-720-1020)은 조금 ‘특별한’ 전시회다. 30대 후반∼50대 중반 중견 작가들이 공동 작품전을 연다는 모양새가 그렇고, 이들의 작품 세계가 동·서양화에서 예술 사진, 민중미술에서 팝아트까지 다양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특별한 전시회의 주인공은 모두 8명. 임옥상씨가 지은 별명을 붙여서 소개하자면, ‘점잖은 신사 고영훈, 재기발랄 전병현, 착한 막내 이동기, 반질 상큼 반미령, 그림귀신 사석원, 불덩어리 임옥상, 풍경사진가 배병우, 떠도는 삶 유선태’가 그들이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나름의 작가 세계를 구축한 이들은 2년 전 처음 모였다. 가나화랑이 작가들의 창작 지원을 위해, 서울 평창동에 연건평 3백평짜리 현대식 건물의 3개 층을 임차해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스튜디오를 제공하면서부터다. 이름하여 ‘가나 아틀리에’. 이들은 이곳의 첫 입주자들이었다.

처음에 이들은 서로 너무 달랐다. ‘점잖은 신사’라는 별명처럼, 서양화가 고영훈씨는 말을 아끼면서 내면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모더니즘 이론을 바탕으로 동양의 노장 사상을 접목한 극사실주의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반면 서양화가 임옥상씨는 예술의 사회성과 공공성을 소리 높여 외쳐온 민중미술가 출신. 1980년대 그는 ‘십이월’전, ‘현실과 발언’전 등을 통해 민중미술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관심사는 현재까지 변함이 없다. “점점 더 사유화하고 자본화해 가는 미술에 공공성과 사회성을 불어넣고 싶다”라고 그는 말한다.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 한지 위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쳐내 전시회에 출품한 서양화가 전병현씨는 1982년 고졸 학력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해 화단을 놀라게 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후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유학했고, 현지에서 ‘망명 화가’ 이응노씨를 만나 그에게서 배웠다.

그런가 하면 8명 중 막내 격인 이동기씨는 순수 미술과 대중 문화의 결합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팝아트 작가다. 그는 인디 록 밴드들의 공동 음반 <도시락 특공대> 2집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고, 황신혜 밴드의 노래 <말>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지난해 철거된 서울 을지로 3가 지하철역의 벽화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의 공동 생활이 2년째. 그 동안 이들은 함께 등산도 하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정기적인 소식지도 내면서 서로를 살찌웠다. 그 사이 가나화랑은 한 차례의 공동 작품전과 두 차례의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통해 이들이 미술 애호가나 컬렉터들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다. 또한 이들 중 몇몇은 화랑의 지원으로 ‘에콜 드 가나’를 개원해서 젊은 작가들을 길러내고 있다.

배병우씨에 따르면, 이번 전시회는 이들의 ‘아틀리에 졸업전’이다. 이들은 졸업전을 끝으로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독일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2001년에야 귀국한 탓에 ‘떠도는 삶’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유선태씨는 “다시 서른여섯 번째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이들에게 지난 2년 간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전병현씨는 “다른 작가의 작업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집에 먼저 가기를 주저했을 만큼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격려하며 2년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유일한 여성인 서양화가 반미령씨는 “2년 전 아틀리에 열쇠를 건네받고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창을 통해 쏟아지던 햇살을 잊을 수 없다”라면서, 아틀리에 경험이 앞으로 창작 활동을 해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화가 사석원씨는 “2년 동안 평창동의 동네 모습과 사람들 얼굴이 가슴에 문신으로 새겨졌다.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훈장처럼 힘을 뿜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쉬움도 남았다. 임옥상씨는 “아틀리에 생활을 통해 일종의 예술공동체를 실험해보고 싶었지만 잘 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첫 번째 공동전시회 때 8명이 함께 완성한 병풍을 선보였던 이들은 이번에는 공동 창작을 포기했다. 이들은 이미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쌓은 중견 작가들이었다. 상대방과 예술적 벽을 허물고 소통하기에는 2년이 너무 짧았다.

하지만 이들의 공동 생활이 ‘서로 다름’을 확인하는 데만 그쳤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 귀국한 뒤 10 년 넘도록 전업 작가로만 살아온 전병현씨는 얼마 전 인터넷 홈페이지(www.arttnt.com)를 개설했다. 8천명이 넘는 회원들과 함께 ‘알기 쉬운 미술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아틀리에 생활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웠다”고 말했다. 임옥상씨는 사단법인 문화우리를 설립해 새로운 미술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고영훈·사석원·전병헌 씨는 에콜 드 가나에서 강의를 계속한다.

가나화랑은 이번 전시를 끝으로 당분간 아틀리에의 문을 닫는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대폭 올린 데다가, 미술 시장 침체가 계속되는 바람에 여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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