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구속영장 기각된 작가 장정일씨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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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확신한다”
지난 1월7일 저녁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는 ‘애매한 축하연’이 열렸다. 이 날 오전 검찰이 신청한 구속 영장이 기각되어 풀려난 작가 장정일씨를 위해 건배를 든 문인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박의상 배문성 이영준 장은수 함명춘 강상희 송경아 김연수 씨 등 그동안 장정일 사법처리 반대 운동을 펼쳐온 문인들은 검찰청에서 나온 장정일씨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 날 구속될 것에 대비해 성명서를 준비했던 문인들은 구속 영장이 기각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환호했지만, 문학이 실정법의 제재를 받고 있다는 현실 앞에서 착잡한 표정이었다. 장정일씨는 “작가가 검찰에 출두해야 하는 이같은 사태가 누추하다”라고 말했다. 중세와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띄엄띄엄 털어놓은 ‘검사와의 대화’는 실정법과 문학과의 양보 없는 대화였다. 12시간에 걸친 조사에서, 장씨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검찰은 작가의 의도를 알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결국에는 외설적인 표현, 즉 전체가 아니라 부분을 문제삼았다. “판사가 영장을 심사하는데 검사가 ‘문제의 부분’을 읽으며 구속 영장 발부를 요구할 때, 절망적이었다”라고 장씨는 말했다.

“묘사는 주제와의 관련성에서 판단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분인 묘사만 거론한다면 외설 아닌 것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장정일씨는 반문한다. 장씨는 변호사를 스스로 선임하지 않을 계획이다. “법정을 무시하거나 자극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내 작품에 대해서는 작가인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자기 작품이 음란물이 아니라는 확신에 대한 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장정일씨가 <시사저널> 제369호에서도 밝혔듯이, 장씨는 문학이 숙명으로 갖고 있는 원죄성을 강조했다. 문학이 사회 통념에 무릎 꿇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모든 문화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한국 사회의 ‘자신 없는 도덕성’을 안타까워한다. 청소년이 술·담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술·담배를 아예 없애려는 것과 같은 소아병적 태도라는 것이다.

‘장정일 사태’는 법정에서 곧 일단락되겠지만, 장정일 문학을 특집으로 기획한 계간 <작가세계>와 <상상> 봄호가 발간되는 것을 계기로 장정일 문학에 대한 문단 내부의 조명 작업은 새로운 차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장씨는 앞으로 고향 대구에 머무를 예정이다. “프랑스에는 다시 가지 않는다. 그곳 문화에서 배울 게 없었다. 내게는 작고 수다스런 문화였다. 파리에는 아내(소설가 신이현씨) 혼자 남아 판화를 공부하고 있다”라고 장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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