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원, 부도 딛고 부활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5.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달여 만에 정상 회복…“출판계에서 전무후무한 일”
지난 3월22일 부도가 났던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사 고려원이 최근 되살아났다. 지난 4월10일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한 화의 신청이 받아들여져 최근 정상적인 출판 업무를 재개한 것이다. 수년째 지속되는 출판 경기 불황 속에서 고려원 부도 사태를 맞았던 출판계는 ‘40일 만의 정상 회복은 출판계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고려원의 부활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부도 이후 출판계는 누가 고려원을 인수할 것인가, 또는 채권단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등을 놓고 매우 착잡한 표정이었다. 고려원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서적 총판 및 인쇄·제본·제지업 등 협력업계, 광고 분야, 그리고 단행본 및 외국어 교재 저작권자 등에게만 떨어진 ‘불똥’이 아니었다. 고려원 부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그 여파는 출판 및 관련 업계 전체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법원이 내린 화의 개시는 법원이 경영에 개입하는 법정 관리와는 다르다. 화의 개시는, 법원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를 중재해, 채무변제 협정을 맺게 해 파산을 막는 제도이다. 지난 4월10일 법원에 제출된 화의 신청에는 관련 협력 업체와 제2 금융권이 고려원을 추가 지원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고려원측이 앞으로 2년6개월 안에 채무를 전액 상환하겠다는 조건이 들어 있다. 그리하여 고려원의 경영권은 전 경영자였던 김낙천 사장에게 다시 돌아갔다.

고려원측은 언론과 저자, 그리고 출판계의 격려와 관심에 힘입은 바 크다고 밝혔다. 고려원측에 따르면, 법원은 화의 개시 결정을 내릴 때 기업의 사회적 비중도 고려하는데, 고려원은 10억원이라는 비교적 적은 액수로 부도를 냈고, 한보 및 삼미 그룹 부도에 따른 금융권의 몸사리기가 부도의 한 배경이라는 점도 법원을 움직였다. 언론의 관심도 큰 힘이 되었다. 그만큼 고려원 부도에는 문화적인 의미가 컸던 것이다.

저자 40여 명, 재고 1억원어치 팔아주기도

그동안 고려원 임직원은 단 한 사람의 국외자도 없이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저자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출판 계약을 파기해 판권을 빼내가기는커녕, 40여 명에 이르는 저자가 직접 찾아와 재고로 쌓여 있는 자신의 책들을 팔아주었다. 많게는 천만원에서 적게는 백만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소화해준 서적은 1억원에 이르렀다.

78년 설립된 고려원은 그동안 단행본 2천7백여 종을 발행했고 최근까지 연 매출액이 2백억원을 넘었으며 직원도 2백여 명에 달했다. 80년대 이후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 등 매년 베스트 셀러를 생산했으며, 90년대 들어 영어회화 교재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했으나, 그 이후 투자했던 새로운 외국어 교재 사업에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고려원은 부도 이전에 세웠던 기획을 변함없이 밀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상을 되찾은 고려원이 처음으로 펴낸 책은 오에 겐자부로 전집 제 11권 <동시대 게임>. 계몽사와 공동 판매망을 구축하면서 생산 자금을 마련하게 된 고려원은, 5월 안으로 단행본을 10여 권 펴내는 한편, 부도 이전에 개발을 끝낸 외국어 교재들을 곧 시장에 내놓을 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