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문화]새로운 ‘별들의 고향’ 스타 시스템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8.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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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SES 등 ‘만들어진’ 인기 연예인 즐비… “문화 상품의 불확실성에 기인한 상업적 메커니즘”
서태지와아이들 이래 10대의 최대 우상으로 떠오른 댄스 그룹 H.O.T. 10대 다섯 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가수 출신인 이수만씨가 설립한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낸 ‘상품’이었다.

95년 가을 이 회사는 10대를 겨냥한 스타 만들기에 나섰다. 첫 단계는 공개 오디션 등을 통한 사람 찾기. 선발 기준은 춤과 노래와 외모였다. 처음 문희준·강 타·이재원이 뽑혔고, 얼마 후 장우혁과 재미 교포 토니 안(안승희)을 넣어 5인조 그룹의 얼개를 갖추었다. 다음 단계는 훈련. 이른바 스타 제조 과정이다. 춤·노래·이미지 만들기 세 부문에서 각각 전문가가 따라붙었다. 파워레이서춤·망치춤·주사춤 같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춤이 개발되었다. 노래로는 학원 폭력 같은, 10대들이 피부로 느끼는 정서를 담은 <전사의 후예> <캔디> 등을 내세웠다. 또 다섯 사람에게는 각자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부여되었다. 남성(강 타) 미소년(이재원) 반항(장우혁) 지성(토니 안) 유머(문희준)라는 캐릭터가 그것이다.

마지막은 홍보. 6개월이 넘는 합숙 훈련 끝에 예비 스타로 키워 놓은 이들을 시장에 내놓고 알리는 단계였다. 대형 콘서트를 열어 대중과 만나게 하는 동시에 방송사 PD·연예 담당 기자와 접촉하는 등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H.O.T.는 이처럼 철저하게 만들어진 스타다. 이들을 만들어내는 데 든 비용은 비밀에 가려 있지만, 1억∼2억원은 들었으리라는 것이 가요계의 통설이다. ‘H.O.T.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SM엔터테인먼트는 이 여세를 몰아 SES·신화 같은 그룹을 창조했고, 여성 3인조 그룹 SES는 이미 스타 반열에 올랐다.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기성 가수 중에 상품성 있는 재목을 ‘찍어’음반을 만들었지만, 이수만씨나 라인음향의 김창환씨 같은 몇몇 기획자는 달랐다. 스타 제조라는 어려운 작업에 눈을 돌리고 성공 신화를 만들어낸 것인데, 신승훈·김건모·노이즈·박미경·클론 같은 스타는 김씨의 ‘작품’이다.
생산·관리·소비 전과정에서 시스템 작동

스타는 왜 문화산업에서 각광을 받는가.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스타에 탐닉하고 스타를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문화 상품의 특성을 알 필요가 있다. 문화 상품은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크다. 문화산업이 모험 산업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 정해익 대표는 “9년 동안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성공한 사례는 그야말로 한줌이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유능한 생산자라도 흥행을 예측하기 어려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화 상품이 사람의 미적·오락적, 혹은 표현 욕구와 관련된 ‘가치 상품’이라는 점이다.

불확실성이라는 요인 때문에 제작자나 기획자 들은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스타를 잡기 위해 애를 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휴종 수석연구원은 “생산자 처지에서 스타를 기용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일종의 안전 장치 구실을 한다”라고 지적했다. 스타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수요(팬)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한국 영화 스타의 스타 파워 분석〉에 따르면, 영화 스타의 영향력은 관객 6만여 명을 추가로 동원할 수 있다. 반면 감독의 영향력은 1만6천명 정도로 나타나 배우보다 적다.


방송 PD들도 스타 기용에 열심이다. 스타가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KBS 신호균 PD는 〈별은 내 가슴에〉라는 MBC 드라마로 스타덤에 오른 안재욱씨의 예를 든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그가 이전부터 출연해 온 〈짝〉이라는 드라마의 인기도 치솟았다. 이 드라마들이 별다른 변화를 꾀하지 않았는데도 시청률이 크게 올라간 것은 안재욱이라는 스타말고는 다른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고 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김지호가 출연한 광고 상품들이 한결같이 잘 팔려 ‘김지호 효과’라는 말이 회자된 것이나, 불황인데도 배용준이 선전에 나선 상품의 판매액이 급신장한 것은 스타의 위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타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할리우드이다. 80∼96년 할리우드의 최고 흥행작 25개를 보면, 〈인디펜던스데이〉 〈나 홀로 집에〉 등 네 편과 월트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몇 편을 빼면 스타를 쓰지 않고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없다.

물론 스타를 기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폐한 사례도 무수하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영화에서 스타를 기용해 성공할 가능성은 14%에 불과하다. 영화 제작 기획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이사는 “스타를 기용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지만, 영화의 소재나 장르 같은 요소와 스타의 이미지가 잘 맞지 않으면 실패한다. 충무로에서는 스타를 믿지 말라는 경구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가령 간판 스타인 박중훈이 기용된 영화의 경우 〈할렐루야〉는 성공했지만 〈현상 수배〉가 참패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타를 만들어내고 스타를 등장시키려는 시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실패한 경우가 성공한 경우보다 훨씬 많지만, 한 번 성공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 시장은 포커나 빙고 같은 도박판에서나 볼 수 있는 잭팟이 터지는 곳이다. 최근 〈스타 시스템〉이라는 책을 펴낸 김호석 박사(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는 “문화 상품에는 생산과 소비 전영역에 큰 불확실성이 깔려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각각 이익의 극대화와 효용의 극대화를 위한 전략적 행위를 하게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스타 시스템이 작동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스타 시스템은 미국 유니버설 영화사의 창립자인 칼 레믈이 1910년 플로렌스 로렌스라는 배우를 홍보하기 위해 쓴 마케팅 기법이자 사업 전략이었다. 스타 시스템은 우선 생산 과정에서 이용된다. 흥행을 노리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스타를 집중 기용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러한 스타 시스템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좁은 의미로 스타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다. 스타 시스템은 스타 기용에 그치지 않고 거래·관리·소비되는 모든 과정과 관련된 순환 메커니즘인 것이다. 따라서 문화 시장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직·간접으로 스타 시스템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꼽히는 것이 매니지먼트 회사·에이전시 회사·매니저 들이다. 스타에 대한 정보를 제작자나 기획사에 제공하고 섭외·캐스팅·계약·이미지 관리·팬클럽 관리 같은 일을 도맡아하는 회사(혹은 개인)들이다.

한국의 경우 이런 회사들은 90년 SBS가 생기면서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방송사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짐에 따라 방송사들은 그동안 ‘전속’으로 묶어 두었던 연예인들을 풀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른바 전속제에서 자유계약제로 옮아가게 되어 이들의 활동 공간이 새롭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94년을 전후해 스타를 생산·관리하는 스타서치·한맥 유니온·제이콤·세영멘트 같은 에이전시 회사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런 회사들의 활동이 아직 활발한 편은 아니다. 스타서치같이 초기에 생긴 회사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업체들도 대박기획·엑터랜드·EBM·IS201처럼 거의가 중소 규모이다. 그 이유에 대해 우노필름 차승재 대표는 무엇보다 시장이 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다 보니 일의 영역을 세분화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징후는 엿보인다. KBS 장기호 드라마 제작 주간은 “캐스팅하는 데 이들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스타 하나를 내주면서 신인 연기자를 끼워 팔기도 한다”라며 이들이 제작 질서를 흐트러뜨리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스타는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땅처럼 공급 탄력성이 0에 가까운 상품이다. 뜰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래서 사회에 위화감을 주고 이것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입증하고 있듯이, 문화에 산업이라는 측면이 강조될수록 오직 흥행을 위해 작동하는 스타 시스템의 체계는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돈을 벌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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