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대형 불사' 바로 세워야 '부처님' 바로 선다
  • 이문재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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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불 건립 논란, 한국 불교 거듭나는 전환점 될 수도


오는 2003년 3월, 해인사에 건립될 예정인 세계 최대 규모 청동 좌불(높이 43m)이 첫 삽을 뜬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좌불안석'이다. 지난 6월4일 해인사에서 기공식이 열린 뒤로, 불교계 내부는 물론이고 네티즌, 시민·환경 단체들 사이에서 거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대형화 추세, 이대로 좋은가 : 해인사 세계 최대 청동 좌불(왼쪽)을 조성한다고 발표하자 교계 안팎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맨 왼쪽은 동화사 대불을 공사할 때의 모습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교계 안팎의 시선에는 위기감이 서려 있다. 먼저, 해인사와 성철 스님이 갖고 있던 '권위와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위기감은, 한국 불교의 근본으로 여겨져온 선방 스님들의 폭력 행위에 대한 실망에서 말미암는다. '정치 승려'들 사이에서 폭력이 야기될 때마다 '그래도 선방에서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있다'며 신심을 다져온 신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동 좌불 논란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불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으므로, 한국 불교가 거듭나는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종단과 사찰 운영, 스님들의 수행 풍토는 물론이고 기복 신앙에 비중을 두고 있는 재가 불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만, 시대와 호흡하는 진정한 불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형 불사를 바로 세워야 한국 불교가 바로 선다는 주장은 종단이나 사찰 내부보다는 신도(회)와 재가 단체들 쪽에서 훨씬 크게 들려온다. 그동안 종단이나 대형 사찰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었던 재가 신자와 단체 들의 목소리가 분명해진 것이다. 신자들은 조계종이나 해인사 혹은 교계 언론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사이버 공간이 사찰의 높은 문턱을 무너뜨리며 여론을 형성하는 열린 마당으로 떠오른 것이다. 주목할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청동 좌불 건립, 반대 의견이 우세


재가 단체들은 대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오는 7월11일, 대형 불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불사 문화를 도출하는 공개 토론회를 연다. 오는 7월18일, 참여불교재가연대를 비롯한 16개 재가 단체도 세미나를 열어, 해인사 성역화 사업 전체를 검토하며 청동 좌불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아낼 참이다.


7월2일 현재, 청동 좌불 건립 논란은 찬성하는 쪽보다는 반대하는 입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최 열 사무총장은 최근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물질로 남긴 것이라고는 수십 번 기운 솜누비 장삼과 검정 고무신이 전부'인 성철 스님의 검약 정신으로 대표되는 불교 사상이 환경운동의 젖줄이라면서, '가야산 해인사의 청동 대불 건립 계획은 흰 종이에 다시 그려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 매체 〈붓다뉴스〉가 최근 교계 지도자 50인에게 전화로 설문 조사한 결과도 최 열 총장의 칼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수덕사 주지 법장 스님 등 스님 24명과 동국대 문명대 교수 등 재가 불자 26명을 상대로 '세계 최대 청동 대불 건립' 조성에 대한 견해를 물은 결과 38명(76%)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고,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는 6명(12%), '찬반은 의미가 없다' 중립적 견해가 6명(12%)이었다.


특히 바람직한 불사의 방향에 대해서는 응답자 대부분이 인재 양성과 복지 불사, 즉 시대에 어울리는 불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일부 거액을 시주하는 신도나 영향력을 가진 스님들이 추진하는 불사가 아니라, 대중이 요구하는 불사를 일구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불사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바로잡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근 〈불교 미술을 보는 눈〉을 펴낸 김영재씨(미술사상·서울대 강사)는, 대불이나 거대한 법당을 신축하는 것이 주지 스님의 역량으로 평가되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영재씨는 '부처님의 법(진리)을 펼치는 불사 본래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진홍 교수(서울대·종교학)는 "불교는 기본적으로 거대 지향적이 아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 본래 가르침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더 근본적이고, 더 시급한 불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두레생태기행 김재일 회장도 같은 견해다. 무욕과 무위로 건사해야 참된 불사라는 것이다.


물량주의에 휘둘리는 스님들도 문제지만 신도들의 의식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평래 교수(충북대·철학)는 이번 청동 좌불 건립 논란이 해인사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신자들이 무엇이 진정한 불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평래 교수는 "예를 들어, 대불을 조성하는 데는 3만∼4만 원을 보시하지만, 장애자 자활 사업에 보시하라면 만원을 내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불사는 생명 해방 운동"


윤원철 교수(서울대·종교학)는 신도들의 잘못은 곧 스님들이 주어진 임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윤교수는 "신도가 60억원 안팎의 시주를 내놓은 것이 사실이라면 스님이 나서서 그 시주자를 설득했어야 했다. 대불 건립이 진정한 불사가 아니고, 불우한 이웃을 돕거나 박물관·수련관 등을 짓는 일 또한 훌륭한 불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교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불사는 대형 불사나 물고기 방생이 아니라 인간 방생, 즉 생명 해방 운동이다"라고 강조했다.


대형 불사가 그릇된 방향으로 접어든 배경에는 정치권과 결탁한 것이 큰 요인이라는 지적도 자주 나왔다. 김종찬씨(전 〈불교신문〉 편집국장)는 정치 권력이 종교를 견제하는 대신, 선거를 의식해 교계를 키워주었다고 지적했다. 대형 불사를 둘러싸고 불거지는 부패 의혹에는 정치권의 '아첨'도 한몫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진홍 교수에 따르면, 대형 불사는 역사적으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종교가 힘을 가질 때 대형 사업을 통해 대단한 문화재를 남기지만, 동시에 정치력·경제력과 야합해야 하기 때문에 당대에는 덕을 발휘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대형 불사에 대한 논의는 미래 세대에 넘겨줄 만한 예술 작품으로서의 불사가 과연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강찬석 위원장(건축가)에 따르면, 불교 건축은 옛 원형을 복원하지도 못하고, 현대적인 불교 건축을 창조하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불교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새로운 조형 언어를 제시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위 상자 기사 참조).


미술사상가 김영재씨는, 1960년대 후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앞으로 기독교 도상이나 성상을 제작할 때 예술가의 자율에 맡긴다"라고 선언한 것에서 배울 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카톨릭은 그 이후 뛰어난 종교 예술을 남겼다는 것이다. 김씨는 "한국 불교도 종단을 대표하는 위치에서 '우리 시대에 맞는 예술 작품을 만들라'고 천명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불교는 그것이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불사를 통해 당대 현실과 만난다. 불교가 현실을 읽는 깊이와 넓이가 불사에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신도들의 의식 수준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러니까 해인사 청동 좌불이 새로 '앉을 자리'를 모색하는 일은 곧 한국 불교의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을 내다보는 '대형 불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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