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돌아온 광수생각 표절 시비 '신고식'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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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유머 베끼기' 논란 휩싸여
소시민의 삶을 소재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만화 〈광수생각〉을 〈조선일보〉에 연재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광수씨(32)가 9개월 만에 지면에 복귀했다. 하지만 복귀하자마자 박씨는 네티즌들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조선일보〉 9월7일자에 실린 '21세기 나무꾼'편이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를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21세기 나무꾼'은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나무꾼이 700 음성정보 서비스를 이용해 산신령과 연락하려다 상담 전화가 폭주해 결국 연결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한겨레〉의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비롯해 여러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유머의 일부를 고스란히 차용한 것이다.


과거에도 표절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는 박씨는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있다. 이번 만화는 독자가 올린 글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출처가 분명한 경우 반드시 원작자를 밝혔는데 이번 글은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어서 명시하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김탁환의 소설 <나, 황진이>(푸른역사 펴냄)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태준에서 최인호에 이르기까지 숱한 작가가 황진이를 소설화했고, 그 결과 남성 편력이 화려하고 글 잘 쓰는 기생 정도로 그녀의 인물상이 굳어진 지 오래인데, 이제 새삼스레 ‘다시 황진이냐’는 반문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작가는 누구나 황진이를 안다고 여기지만 누구도 제대로 모른다고 말한다. 작가에 따르면, 황진이는 그녀를 사모하던 총각이 죽는 바람에 ‘자발적으로’ 기생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기생의 딸로서 기생이 될 수밖에 없는 팔자였다. 또한 그녀는 국문학사나 야사의 몇 페이지를 장식하는 에로틱한 여류 문사 정도가 아니라 퇴계·남명과 더불어 조선 중기의 대표적 지식인 그룹이었던 화담학파의 대모(代母)였다. 황진이가 살았던 송도 또한 성리학의 독주에 대항하는 당대의 문화적 거점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자신의 이같은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학술 논문에 필적하는 이론적 전거들을 들이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나, 황진이>는 여느 평범한 소설들과 갈린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공부해서’ 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상상력이 아니라 자료더미에서 건져올린 작품인 것이다. 1인칭 독백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황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문헌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후기에서 ‘인용문만으로 된 작품을 쓰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한 작가는 사료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우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어내기가 영 편치 않다. 문체까지 고풍스러워 작심하고 달려들지 않으면 거의 고역이다. 한시나 동양 고전에 대한 웬만한 교양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소설 읽기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작가의 이같은 글쓰기가 이른바 문학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물론 전문가들의 몫이다.

그러나 문학적 성취야 어떻든 쓰인 방식만큼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황진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눈길을 끌지만, 그같은 해석에 이르는 작가의 고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전혀 색다른 독후감을 선사한다. ‘재미있는’ 소설만 편식해온 독자라면 <나, 황진이>처럼 ‘골 때리는’ 소설에도 한번쯤은 도전해봄 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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