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판각 기행전' 여는 민중미술가 홍선웅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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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그윽한 먹맛 가슴으로 새겼다"/7년 공부한 목판화 선보여
홍선웅씨(41)가 직접 작성했다는 보도 자료를 받아 읽는데 훅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운 도둑질이라 했던가. 이태호 교수(전남대·미술사)의 말마따나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의 가장 큰 일꾼'으로 온갖 문건과 대자보 작성을 도맡았던 이의 솜씨답게, 보도 자료에는 이번 전시회의 핵심이 간명하게 요약·정리되어 있었다.


〈민중교육〉 필화 사건으로 교단에서 쫓겨난 뒤 사회운동에 투신해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을 맨 앞줄에서 이끌었던 이. 그가 다시 돌아왔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대변인을 마지막으로 인사동에서 모습을 감춘 지 꼭 7년 만이다. 돌아온 그의 손에는 먹으로 찍은 목판화(먹판화)가 들려 있었다. 지난 7년간 그는 강화도 보구곶리 마을회관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칼 쓰는 법을 새로 배우며' 먹판화에 매달려 살았다고 했다.


소설 〈태백산맥〉 표지화의 주인공




그가 목판화에 손을 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전공은 서양화지만, 대학 졸업 이후 그는 줄곧 목판의 투박한 멋에 이끌려 왔다. 그가 목판에 새긴 '깃발 들고 꽹과리 치는' 농민들의 모습은 1980년대 민중 미술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소설 〈태백산맥〉의 표지를 장식한 울퉁불퉁한 산맥도 그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에 들고 나온 그의 목판화에는 근원적인 변화가 생겨 있었다. 인조 한지 대신 천연 재료로 염색한 무명 천에, 유성 대신 먹을 이용해 찍어낸 판화. 더욱이 그가 재료로 쓴 나무판은 요즘 판화가들이 즐겨 쓰는 베니어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두툼한 전통 목판이었다.


변신의 시작은, 규장각본의 음기 서린 먹빛을 마주한 순간부터였다고 한다. 유성으로 찍어낸 판화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담박하고 그윽한 빛. 그 자연스런 '먹맛'에 심취하면서 전통 목판화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그 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며 병산서원·고산서원을 찾아다니며 선조들이 남긴 경판·목판을 눈으로, 가슴으로 새기는 공부에 들어갔다.


'판각 기행'이라 이름 붙인 답사를 거듭할수록 그는 판(板)·각(刻)·형(形) 3자를 모두 중시했던 옛 사람들의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판화[形]만 몇 점 찍어내고 나면 원판을 폐기해 버리는 요즘과 달리 선대 예술가들은 마구리(목판이 휘지 않도록 판 양옆에 원목을 세로로 덧대는 방식)를 해 가며 원판[板]을 소중하게 보존했다. 그 결과 수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는 목판에서는 투박하면서도 힘찬 각선[刻]이 날것 그대로 느껴진다.


11월28일∼12월11일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은 이같은 선조들의 정신과 작업 방식을 계승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몇백 년 뒤 내 작품도 판각 연구 자료로 쓰였으면 한다'는 바람으로 나무 원판 10여 점도 함께 진열한다.


본인의 고백처럼 아직은 학습 단계일 수도 있는 작품들. 그렇지만 신동엽 시인의 대서사시 〈금강〉을 편안한 먹의 질감으로 승화시킨 〈금강화곡〉 연작 시리즈에서는, 세월이 흘러도 굴절되지 않은 그의 진정성과 뚝심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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