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고 만나면 안되나요?”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2.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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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누드 동호회 사진 유출 소동…“나체 모임도 취미 생활” 주장
젊은 남녀 3명이 벌거벗은 채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바닥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몸이다. 탁자 위에는 술병과 안주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서 벌어진 장면이 아니다. 젊은 남녀의 단체 여행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인터넷에서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말세의 징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지난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신의 누드 사진을 올려 논쟁을 일으켰던 김인규 교사 사건 이후에 또다시 젊은 남녀의 단체 누드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김교사 사건이 ‘외설이냐 예술이냐’ 문제였다면 이번 사건은 ‘나체 모임을 취미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이다.


문제가 된 사진은 다음넷의 인터넷카페 자연주의 모임(cafe.daum.net/naturist)에서 유출된 것이다. 이 사이트 운영자는 명문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직장인 강 아무개씨(27)였다. 사진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사이트 게시판은 비난 글로 쑥대밭이 되었고 운영자는 네티즌들로부터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우연히 외국의 나체주의 사이트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강씨는 지난해 1월 자연주의 모임인 ‘누드러브’를 만들었다. 주로 외국의 나체주의 모임 자료를 번역해서 올려놓았는데 누드 사진 때문인지 회원 수가 빠르게 증가했다. 카페의 성격은 문예사조로서의 자연주의를 탐구하기보다 단순한 취미 활동으로서 나체주의를 즐기는 쪽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강씨는 카페 이름을 자연주의 모임이라고 붙였다. 누드러브 외에도 자연주의 사이트는 수십 개가 더 있다.


사이트를 만들기는 했지만 강씨는 오프라인 누드 모임이 성사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우연히 다른 누드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하게 된 그는 나체 모임이 엄청난 해방감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나체주의도 인간의 본성이라고 확신한 그는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모임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모임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어렵게 모임이 성사되었지만 남자 회원밖에 오지 않아서 대중 목욕탕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9월까지 이런 식의 모임이 계속되었는데 류 아무개씨(38)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이전에 누드 모임을 해본 경험이 있었던 그가 부인을 모임에 데려왔던 것이다. 이후 안심한 여성 회원들이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하게 되면서 동호회는 활기를 띠었다. 강씨 자신도 여자 친구를 모임에 데려가기도 했다. 모임이 커지자 류씨는 부부 소모임을 만들어 따로 부부 모임을 이끌었다. 부부 모임에는 아이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누드러브’ 모임에는 지금까지 남성 40여 명과 여성 6명이 참여했다. 부부 모임에는 20대 후반∼40대 초반 부부 8쌍이 참여했다. 대부분 직장인이나 대학생이며 중산층에 속하는 이들이다. 강씨에 따르면 이들은 특별히 모험심이 있거나 외향적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다.




남녀 신체 접촉 못하고 따로 만남도 금물


이들은 누드 모임을 ‘유니폼 모임’이라고 부른다. 알몸이 이들의 유니폼이기 때문인데, 유니폼 모임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남녀가 신체 접촉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남녀가 따로 시간을 갖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이런 원칙을 세운 것은 모임이 자칫 성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나체 모임=퇴폐 모임’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부수기 위해 강씨는 일부러 모임 사진을 찍어 게시판에 올렸다.


모임은 교외에서 이루어졌다. 산이나 계곡처럼 주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인적 없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임은 대부분 실내에서 이루어졌다. 자연에 어울리며 해방감을 맛보기보다는 사람들과 진솔하게 만나는 것으로 위안을 얻어야 했다. 실내에서는 할 것이 마땅치 않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술자리 사진도 그런 과정에서 찍힌 것이었다.


유니폼 모임은 옷을 벗었을 뿐, 일반적인 사교 모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강씨의 설명이다. 회원들이 성적으로 흥분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나체 모임에 참가했던 남성 회원 40여 명 중 발기한 사람은 2명에 불과했다. 성적인 호기심 때문에 모임을 찾았던 사람은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사이트를 운영하며 강씨는 서버 관리자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법대 출신인 그는 세심하게 법률적인 검토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간통죄에 관한 법률, 성매매에 관한 법률, 청소년보호법 등을 두루 검토해 문제가 될 부분을 미리 방지했다는 것이다.


강씨는 이번 기회에 누드 동호회를 이슈화해서 정정당당하게 취미로 인정받겠다는 각오다. 성적인 것이 과도한 현대 사회에서 나체주의가 오히려 몸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연주의는 변태 성욕자의 모임도 환락의 파라다이스도 아니다. 그렇다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명상의 세계도 아니다. 단지 해방감을 맛보는 취미 동호회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자연주의 모임에 대해 김인규 교사는 “자연주의를 음란하게 보는 시각에 더 문제가 있다. 그런 시각은 나체를 성적인 기호로만 보기 때문이다. 나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일깨운다는 점에서 자연주의 모임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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