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 때맞춰 나온 북핵 해결 ‘로드 맵’
  • 박성준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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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오핸론·마이크 모치츠키 지음 <한반도 위기>
마침내 8월27~29일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이 열린다. 워낙 사안이 중대한 데다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회담이어서 회담장에 쏠리는 안팎의 관심과 기대는 쇠라도 녹일 듯이 뜨겁다.

마침 6자 회담의 향방을 짚어보는 데 상당 부분 참고가 될 만한 책이 미국에서 출판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에서 알아주는 군사·안보 전문가 2명이 기존 대북 협상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방향·제안까지를 담아낸 것으로, 제목은 <한반도 위기(Crisis on the Korean Peninsula)>(맥그로힐 펴냄).

이 책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우선 시의가 적절함에 있다. 회담 개최 시기와 회담 성사 가능성을 미리부터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지은이들은 ‘절묘한 타이밍’에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로드 맵’(단계별 이행 방안)을 선보였다.

이 책은 지은이들의 범상치 않은 이력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족하다. 마이클 오핸론은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서, 군사·안보 문제에 관한 한 1급으로 인정받는 중량급 연구자이자 각종 언론 매체가 다투어 모시는 인기 논평자이다. 랜드 연구소에서 일하는 마이크 모치츠키 또한 동북아 문제의 권위자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들이 제시하는 북한 핵 해법의 구체적 내용이다. 이 책은 제1장 ‘은둔의 왕국’을 비롯해 본문 여섯 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핵심은 본문 앞의 20여 쪽짜리 짧은 글(제목 ‘위기 분산하기 Deffusing the Crisis’)에 담겼다.

지은이들의 주장은 ‘낯익은’ 강경파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강경 일변도로 흘러온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북한을 질식시켜 무너지게 만든다거나, 수 틀리면 북한 핵 시설에 선제 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식은, 사태 해결에 득이 되지 않으며 성공할 확률도 희박하다고 공박한 것이다.지은이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강제하기 앞서, 북한이 제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신이 들도록 외교력을 동원하라고 제안했다. 또 그렇게 해야만, 외교 노력이 실패해 미국이 강제 수단을 고려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명분이 서는 것은 물론, 한국·일본 등 동맹국의 지지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변화의 확신이 들게 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은이들은 ‘큰 흥정(Grand Bargain)’을 제안한다. 6자 회담을 겨냥해 집필한 것이 분명한 이 글에서 지은이들은 기존 핵과 미사일 문제는 물론 북한의 재래식 무기 감축 문제와 인권(여기에는 북한에 억류된 일본인 문제도 들어 있다)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을 주문했다. 동시에 이들은 미국에 북한 체제 보장과 북한의 경제 회생을 위해 각종 지원을 제공할 것도 제안했다. 서로의 패를 한번에 내놓고 치는, 이른바 포괄 협상안이다.

이 책의 각종 제안을 대북 강경파가 득세한 미국 정부가 받아들이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일부 강경파는 지난 7월 말~8월 초 다자 회담 성사가 확정되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제2의 한국전 불사’(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장의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기고문) ‘폭압적인 깡패 국가 지도자 김정일’(존 볼턴 국무 차관의 한 연설문) 등을 외친 상황이다.

<한반도 위기>는 이처럼 호전적인 강경파에게는 이도 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유화책 참고서에 불과할 수 있지만, 미국의 식견 있는 전문가들에게는 북한 핵 해결을 위한 ‘사려 깊은 제안’으로 호평받고 있다. 정파를 초월해 두루 존경받는 클린턴 정부 시절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는 이 책을 ‘정부가 꼭 참고해야 할 책’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의 일부 보수 언론은 현재 주도권을 쥔 미국 강경파 주장만 치켜세우고 다른 대안은 매도하기 바빴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이라크 사태가 꼬여가면서 강경파의 실적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같은 현상은 한반도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 이 때를 대비해서라도 <한반도 위기>가 제시하는 ‘대안’은 꼼꼼히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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