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천에 빠져 ‘살다 죽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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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천’. 이름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사업에 관여한 이들이 잇달아 사법 처리 되면서 장수천은 ‘단명천’이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우광재(이광재) 좌희정(안희정)’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단명천에 빠졌다. 지난 12월29일 대검 중수부(안대희 중수부장)는 측근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장수천 채무 변제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괄적인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1995년 설립된 장수천은 노대통령이 1996년 말 인수해 직접 경영했다. 그러나 한국리스여신에서 빌린 부채 26억원이 34억4천만원까지 불어났다. 이 빚 때문에 연대 보증을 선 노건평, 선봉술(노대통령 친구, 장수천 전 대표), 이기명(노대통령 후원회장), 오 아무개씨 등이 재산을 날렸다. 2001년 4월 선봉술씨와 오 아무개씨가 담보로 제공한 진영상가가 경매되었다.

노무현 후보가 정치 자금 유용 지시?

검찰에 따르면, 노무현 후보는 2002년 5월과 7월 최도술·안희정 씨에게 선봉술·오 아무개 씨 손해를 보상해 주라고 지시했다. 특히 2002년 8월 노후보는 최도술씨(당시 민주당 부산지부 회계책임자)에게 지방자치단체 선거 때 쓰다 남은 2억5천만원을, 손실 보장 명목으로 선봉술씨에게 제공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노후보는 정치 자금 유용을 지시한 셈이 된다.

노대통령은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이 이기명씨의 용인 땅을 매매하는 형식으로 장수천 빚을 변제하겠다는 계획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노대통령과 강금원·이기명 씨 등은 모두 호의적인 거래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강씨가 매매 대금으로 이씨에게 준 19억원이 무상 대여에 해당하는 정치 자금이라고 보았다. 검찰은 강금원씨 등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이 보기에 가장 매매(실거래가 아닌 서류상 매매)로 이득을 취할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수천 관련 의혹 외에도 노대통령은 여택수씨가 썬앤문 문병욱 회장에게 3천만원을 받을 때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썬앤문 문병욱 회장은 2002년 12월7일 김해관광호텔에서 조찬 모임을 하던 노후보를 직접 찾아갔다. 문회장은 노후보를 잠깐 면담하자고 한 뒤, 여택수 비서에게 현금 3천만원이 든 쇼핑 백을 전달했다. 이 돈은 영수증 처리가 되지 않았다. 검찰은 노후보가 보는 자리에서 문회장이 여택수씨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02년 11월 문병욱 회장이 이광재씨에게 수표 1억원을 전달한 조찬 모임에도 노후보가 직접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광재씨는 노후보가 먼저 자리를 뜨고 난 뒤 1억원을 받아, 노후보는 돈을 받은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고 해명했다.

썬앤문 문병욱 회장은 2003년 1월4일 당선자 신분인 노대통령을 만났고, 청와대에도 한 차례 초청되었다(<시사저널 제712호 참조>). 그러나 검찰은 썬앤문 의혹의 핵심인 70여억원의 세금이 20여억원으로 줄어든 감세 청탁과 관련해 현재까지 정치인이 직접 개입한 물증을 찾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대중 정부 실세였던 ㅂ씨나 민주당 ㅂ의원 모두 손영래 전 국세청장에게 전화한 사실은 있지만 시점이 불명확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청탁 전화를 한 단서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검찰 발표에 대해 청와대는 이광재씨가 받은 1억원과 여택수씨가 받은 3천만원 모두 노후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전달되었고, 노대통령은 영수증 처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부산 선대위 잔금을 유용했다는 검찰 발표에 대해서도, 추상적으로 지시했지 선대위 자금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노대통령을 조사할지에 대해 안대희 중수부장은 “관계자 조사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대통령까지 직접 조사할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중수부장은 ‘지금은’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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