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매표보다 더 질긴
  • 문정우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일상화하면서 몇 년 전부터 청소년을 상대로 한 매매춘, 이른바 원조교제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어느 지방의 여고에서는 상습적으로 원조교제를 해온 여고생들을 조사하다가 무려 한 학년 학생 1백50여명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덮어버린 일도 있었다. 매춘한 청소년을 선도하거나 알선한 포주를 처벌하는 과거 방식으로는 도저히 불길을 잡을 수 없다고 여긴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극단의 처방을 내놓았다. 성을 산 어른을 처벌하는 것은 물론 그 신원까지 공개해버리는 것이었다.

신원이 공개된 피의자 중 상당수는 가정과 직장은 물론 그동안 쌓아온 여타 인간관계를 모두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살인이나 강도·강간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어른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뒤 약점을 잡고 돈을 뜯어내는 10대 조직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런 모든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매매춘 확산을 막겠다는 당초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의 신원을 공개한 뒤부터 원조교제는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매춘만큼이나 오래된 악습이 선거 때마다 벌어지던 매표이다. 후보가 돈 뿌리는 것만 감시하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총선 때부터 유권자에게도 받은 돈의 50배를 물리는 강수를 두었다. 신고하는 사람에게는 받은 액수의 50배를 포상하는 당근도 마련했다. 그러자 수십년간 애썼어도 뿌리 뽑히지 않았던 매표 행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개혁은 발상의 전환과 시스템 마련을 통해 완성된다. 성을 사는 어른과 돈을 받는 유권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발상의 전환을 하고 그것을 실현할 장치를 만들자 마술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검찰이 대선자금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공언하면서 또 다른 구악 중의 하나인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지길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경제 위기를 부른다는 전가의 보도를 내세워 언제나 법망을 피해온 재벌들이 이번에는 정말 곤경에 처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여야에 거액을 뿌린 재벌 기업 총수 중 누구도 기소조차 하지 못했고, 혹시나 하면서 해외에 도피했던 재벌 총수들은 유유히 고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검찰은 발상의 전환은 했으되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매춘이나 매표보다 더 질긴 게 있었을 줄이야.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