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억울한 건 못 참아”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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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의 1 발언부터 대선 자금 공개까지 ‘속 보여주기’ 잇달아
노무현 대통령을 카메라 앞으로 끌어내는 비책은? 정답은 부당하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팍팍 주는 것이다.

12월14일 ‘10분의 1’ 발언부터, 12월19일 ‘춘천 발언’이 나오기까지 노대통령은 네 번이나 언론 전면에 등장했다. 그것도 매번 큼지막한 뉴스를 선사하면서. 당초 노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얘기는 안하겠다”라고 공개적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 놓고도 대선 자금의 전체 규모까지 밝히게 된 데에는 억울함을 못 참는 노대통령의 성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0분의 1’ 발언이 나오기 며칠 전부터 청와대 참모들은 노대통령이 무척 억울해 한다고 말했다. 이광재의 1억원을 차떼기 100억원보다 크게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그렇고, ‘노후보도 우리의 절반은 받지 않았느냐’며 물귀신 작전을 펴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 “내가 받은 불법 대선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보다 많으면 아예 정계를 떠나겠다”라는 노대통령의 폭탄 발언이 터져 나왔다.

노대통령은 ‘10분의 1’ 발언을 한 지 이틀 만에 또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새로운 게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의가 왜곡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라는 것이 참모들의 설명이다. 지난 10월 재신임 선언 때도 노대통령은 여론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되자 바로 다음날 2차 기자회견을 감행한 적이 있다.

‘억울’ 호소하는 폭탄 발언, 혼란만 불러

기자회견을 한 날(12월16일) 밤 노대통령은 KBS 뉴스에 출연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앵커 대담‘ 형식으로 청와대와 뉴스룸을 연결해 10분의 1 발언의 의미를 다시 한번 설명하려 한 것이다. 비록 다른 방송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해 무산되었지만, 노대통령이 이번 대선 자금 정국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한 참모는 “노대통령 성격으로 보면 당장 다 털어놓고 시시비비를 따져보고 싶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2월18일 충북 언론과의 회견에서도 노대통령은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썬앤문 문병욱 회장과 노대통령과의 관계를 놓고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오래 전부터 잘 알던 사람이긴 하지만, 큰 도움을 받은 편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 본인은 ‘큰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밖에서는 오히려 ‘잘 알던 사람’이라는 대목에 주목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불법 합법 다 합해도 3백50억∼4백억 원’이라는 춘천 발언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청와대측은 ‘그래도 깨끗하게 선거를 치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대통령의 이런 발언 시리즈는 안 그래도 복잡한 대선 자금 정국에 혼란만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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