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의 덫을 치워야 한다
  • <시사저널>편집장 ()
  • 승인 1999.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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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위기는 그들의 삶의 마당인 법조 환경의 위기요, 이 땅의 권력 구조에서 법조계가 처해 있는 위상의 위기이다.”
몇해 전 방송가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다. 자기가 돌보는 초보 가수나 탤런트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연예인 매니저 몇몇이 방송 프로듀서들에게 광범위하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해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여론은 어떠했던가.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자괴감에 빠져 마땅히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죽어 지냈다. 그에 비해 일반인들은 사기 꺾인 그들을 부정과 야합의 화신인 양, 이 세상의 부패가 온통 연예판 비리에서 비롯된 것인 양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부패의 먹이 사슬이 드러나 졸경을 치르는 그들을 타산지석 삼아 자기가 사는 꼴과 자신이 밥벌이하는 동네의 청정성을 되돌아 보는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전 법조 비리 사건을 대하는 여론도 그러한 경로를 타고 들끓었다가 시들해지지 않을까 싶다. 판검사 몇 명의 옷을 벗기고 몇 사람을 인사 조처하는가에 지나치게 여론의 눈과 귀가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이종기 변호사로부터 수임 알선료를 받는 등 법조인의 직업 윤리에 어긋나는 거래를 했을 경우 응분의 처벌을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과성 처벌만으로 수습될 문제가 아닌 바에야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추궁하는 방향으로 여론의 힘이 모아져야 한다. 대전 법조 비리는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돌출 사건이 아니라, 우리 법조계 전체의 불건전성을 드러내는 심각한 징후라고 규정하고 타개책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사건으로 면직되거나 징계를 받은 판검사들로서는 평생 씻지 못할 울분과 회한을 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관행으로 여겨온 떡값과 전별금을 받았을 뿐이라는 그들의 항변이 터무니없이 들리지 않는다. 그런 정도를 문제 삼는다면 옷을 벗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느냐는 반문 앞에서 오히려 처연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우리의 법조 환경이 혼탁하여 판검사 개개인이 법조인으로서 직업 윤리를 지키기 어렵다는 고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구정물 속에서도 깃털 하나 더럽히지 않고 사는 백조가 없으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더러움의 늪을 헤쳐나와 올곧게 서기 때문에 더 빛이 나고 존경받는 법조인도 있을 것이다.정치 권력에 야합하는 검찰의 고질 고쳐지지 않아

그러나 법조인은 수도승이나 성직자처럼 세속과 격리된 영역에 있는 사람이 아니며, 그들은 신의 율법에 의해서 가동되는 존재도 아니다. 수만 가지 이해에 얽혀 사는 사람들의 한가운데서 인간의 율법으로 시비를 가리고 바름과 그릇됨을 판단하는 존재이다. 그들에게 성직자나 수도승의 윤리를 강요할 수도 없고,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로 하여금 부패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법 운용자로서 그들의 몫만큼 정당하고 정의롭게 살도록 입지를 만드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법조인의 위기는 그들의 삶의 마당인 법조 환경의 위기요, 이 땅의 권력 구조에서 법조계가 처해 있는 위상의 위기이다.

법조 환경의 위기는 일찍이 전관 예우·법조 브로커·유전 무죄 등 이 시대의 구린내 나는 유행어 속에 곰삭아 있다. 법의 운용자인 판검사나 법의 소비자인 일반인이나 이 유행어들이 부정한 돈놀음을 말하는 것임을 모를 리 없다. 사법 정의나 판결의 공정성이 부정한 돈에 무릎 꿇는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법조계 위상의 위기이다. 표적 사정·편파 수사·정치 사찰 등 정치 권력의 입맛에 야합하는 검찰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예나 지금이나 주저 없이 불러댈까.

법조 개혁은 참으로 지난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도 해답은 간단할 수 있다. 법조 개혁의 핵은 돈과 권력이라는 두 가지 덫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돈의 횡포,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법조계를 지키는 것이 법조 개혁의 본체이다. 국민 여론의 눈과 힘을 집중해야 할 곳도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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