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자 출신 소설가 김대호씨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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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변에 약산…> 펴낸 귀순자 김대호씨
그곳에도 진달래가 한창일 때다. 소월의 시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진 그곳 영변 약산은, 그가 84년부터 94년까지 근무했던 영변 핵단지(분강지구) 바로 앞산이다. 최초의 귀순자 소설가로 등록될 김대호씨(38)의 첫 소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전 2권·예음)은 마침, 남녘 화신(花信)이 거침없이 비무장 지대를 넘어 북한 전역을 물들일 때 나왔다. 이 소설은 통일을 기원하는 또 다른 ‘화신’인 것이다.

김씨의 자전 소설이 기왕의 귀순자들이 펴낸 책들과 가장 먼저 구별되는 지점은 북한에 대한 시각이다. 이 소설은 북한의 이념이나 체제를 직접 겨냥하지 않는다. 물론 분단 비극이 가져온 한 가족의 참담한 몰락을 따라가지만, 곳곳에 편싸움하는 아이들, 풋사랑에 빠져 어쩌지 못하는 사춘기 학생들, 연애와 결혼 앞에서 피를 말리는 젊은이들이 배치된다. 작가는 “북한 역시 사람이 사는 사회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김대호씨는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났지만 교사였던 부모를 따라 63년 북한으로 ‘귀국’했다. 함남 단천시 강천고등남자중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군에 입대해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웅변 원고를 쓰고 직접 웅변을 하는 선동원이었다. 사단과 군단 웅변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이후 시와 영화 문학(시나리오) 분야로 나아갔다. 84년 김정일 지시에 의해 창설된 핵개발부대에 선발된 그는 85년 제대와 함께 영변 핵단지(분강지구 4월기업소) 기동예술선전대장으로 부임했다. 기동예술선전대란 일종의 극단으로, 핵개발의 당위성과 역사성을 고무 찬양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핵개발단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특권층’이었다. 북한의 특권층이었던 그가 북한 체제를 회의하게 된 계기는 중국 체류였다.

94년 2월 중국 무역공사와 합영(합작)하기 위해 중국 연길에 머무르면서 김씨는 자신이 그동안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중국인들이 북한 사람은 거지 취급하는 반면, 남한 사람은 존경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 일어난 심경의 변화를 고백하면서 곧 가족을 데리고 나오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아내에게 보냈는데 이 편지가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편지가 국가보위부에서 검열을 받았고,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2개월 뒤에 남한 땅을 밟았다.

최근 북한 식량난과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는 두 어린 딸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북에 두고온 부모와 형제, 그리고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소설 쓰기이다. “남한의 풍족한 경제보다는 내가 선택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서 용기를 얻는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앞으로 시나리오 작업에도 뛰어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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